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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시청률 역전하기

2010/08/11

어제(2010년 8월 10일)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가 MBC의 사극 <동이>를 근소한 차로 앞질렀습니다. 먼저 자리 잡은 드라마, 그것도 시청자의 충성도가 강한 사극을 후발주자가 역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입니다. 대장금의 이병훈 감독에게는 아마 그의 연출 이력에서 잊히지 않는 일이 될 것이고, 그동안 재능보다 빛을 보지 못했던 SBS 유인식 감독에게는 잊지 못한 성과가 될 것입니다.


마케팅에서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두 주자를 후발 주자가 따라잡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일로는 라면 업계의 1위 삼양라면이 공업용 쇠기름을 식자재로 썼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농심에 따라 잡힌 일이 유명합니다. 동양맥주(OB)와 조선맥주(크라운)의 대결에서 1위인 OB를 조선맥주가 '하이트'를 개발하면서 역전하는 일은 업계의 신화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맥주는 두산 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의 영향으로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 또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조선맥주'라는 상호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는 모험을 했습니다. '150미터 천연 암반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성공적으로 작용해 운과 기가 따른 경우였습니다. 이 사건들이 이렇게 신화가 된 것은 이처럼 1, 2위가 바뀌는 일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시아나가 열심히 해도 우리나라 항공업계의 1위는 대한항공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사의 드라마가 이미 그 시간대에 자리를 잡고 1위를 달리고 있다면 그 자리를 빼앗기는 아주 힘듭니다. 우리 시청자들은 극 초반에는 까다롭지만 한 번 정을 붙이면 습관적으로 그 드라마를 계속 봅니다. 재미가 없으면 욕을 하면서도 마지막 결말을 알기 위해 자리를 지킵니다. 후발 주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드라마의 방송시간을 길게 하거나, 아예 방송기간을 길게 해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려고 합니다. KBS의 대하 사극들이 그렇습니다. 워낙 방송기간이 길기에 경쟁사의 1위가 종영하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영예를 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1위가 빨리 막을 내리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드라마 중반에 역전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 경우는 워낙 급박히 편성이 되어 이야기를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했고, 게다가 계속 러닝타임이 십분 가량 짧게 나가다 경쟁 방송사의 짱짱한 두 드라마에 앞뒤로 치이면서 꼴찌로 추락한 적이 있습니다.


<자이언트>가 <동이>를 앞으로도 계속 누를지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역에서 출발해서 대업을 이루는 이병훈식 사극의 이야기 전개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점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70년대 건설현장의 이야기라고 해서 '신용비어천가'라고 네티즌의 뭇매를 맞으며 힘겨운 출발을 했던 <자이언트> 제작진의 시원한 설욕에 기분이 좋습니다.  낙동강 페놀 사건처럼 <동이>의 한 연기자가 연루된 최근 사건이 반사 이익을 주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자이언트>가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10여 년 전 윗글에서 말한 '재능보다 빛을 보지 못한' 연출자 유인식 감독이, 지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입니다. 빛을 봤습니다.(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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