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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의도한 이야기, 어쩔 수 없는 이야기

2010/01/30

드라마를 제작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이야기의 물줄기가 바뀌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처음부터 이야기의 얼개를 단단하게 설계한 제작진에게는 말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그 배경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알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로 인해 흥미로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같은 경우입니다.


미국 드라마 [X 파일]은 원래는 초 과학적인 일을 일회성으로 다루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더와 스컬리 요원이 외계인의 존재와 그 존재를 은폐하려는 거대한 음모와 대결하는 이야기로 물줄기를 틀어갑니다. 그 와중에 스컬리 요원이 외계인들에게 납치가 되는 이야기가 한 시즌의 막을 내리며 시청자를 몸 달게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천재적인 발상에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스컬리 역의 질리안 앤더슨이 임신을 하게 되어 출산 휴가를 주기 위해 이야기의 물줄기를 바꾼 것이었습니다. 이런 예는 제니퍼 가너가 화려하게 변신하는 비밀 요원으로 출연한 [Alias]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제작하는 드라마에서 배우에게 사고가 생겨 출연을 못하면서 이야기가 바뀌는 수도 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주인공 막시무스를 검투사로 조련하던 프록시모 역의 올리버 리드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작가와 연출을 고민에 빠지게 한 일화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존에 찍은 장면과 일부의 대역 기용, 그리고 극본의 수정을 통해 올리버 리드의 공백을 매웠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의 죽음이 영화에 미친 영향을 알지 못하고 [글래디에이터]를 만났습니다.


우리 드라마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 일어나 제작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지만 'Show must go on'이란 대 명제 앞에서 작가는 비명을 지르며 이야기를 수정하곤 합니다. 저의 경우도 촬영하던 중견 배우가 세상을 떠난 적도 있었고, 배우가 다른 드라마에서 사고가 나 갑자기 깁스를 하고 나타난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그 배우는 깁스를 하고 촬영을 계속했습니다. 방송 코앞에서 제작을 마치는 우리의 관행이 미국 드라마처럼 이야기의 물줄기를 멋지게 틀지는 못하나 봅니다.

결국 드라마는 항상 제작진이 '의도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경험이 쌓인 제작진은 이런 현상을 '드라마가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하며 여유 있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삼는 진취적인 기상(?)이 필요한 게, 우리 제작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최근 [아내가 돌아왔다]에도 불의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김 무열 군이 덕분에 2주 정도 결장했습니다. 조만간 돌아옵니다. 덕분에 작가 선생과 다른 배우들이 덩달아 고생했습니다. '한강수'는 곧 돌아옵니다.


p.s: 김 무열 씨가 임신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무열군의 군문제로 인해 갑작스럽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의 선처로 잠시 입대를 미루고 복귀해서 드라마에서는 2주간만 빠졌습니다. 


이로부터 8년 뒤 <해치>라는 드라마를 연출할 때는 여주인공이 발목을 겹질려 걷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본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어찌어찌 해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배우가 다치는 일이 제 주변에 꽤 많이 발생했군요.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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