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선의 고전수목원

글심기 000. INTRODUCTION

by 용신선


수목원을 시작하며


냉장고를 열고, 서랍을 연다.

배고픔에, 궁금증에, 열고 또 열어 본다.

무엇이 들어있을까? 벌컥!

그곳에 발효된 음식과 오래된 사물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쌓이고 휘발되며 그렇게

변해 간다.


나는 가만히 냉장고를 닫고, 서랍을 닫는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문턱을 밟아 넘고는,

집문을 벌컥! 열고 문 밖을 나선다.


신발이 이끄는 곳은 어디일까? 분홍신처럼

춤추며 영원히 걸음을 멈추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신발이 멈칫거렸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놀이터 같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 어딘가에는 길 잃은 아홉 꼬리 여우가

있을지도 모르고, 집을 뛰쳐나간 소년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지 모른다. 땅 바깥으로 뛰어 올라온

황금빛 돼지가 눈을 흘길지도 모르고, 얼굴 없는

괴물이 날갯짓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사란 본디 신이하고 기이한 것이니

이런 존재들이 '뜻 밖'일 것도 없다.


신선의 얼굴을 한 사내는 바로 이곳 공터에

이야기를 심어 보기로 하였다.

하여, 공간은 장소가 되고 시간조차 멈춘

이곳을 <고전수목원>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동양의 고전이거나, 서양의 고전이거나,

겁나 먼 옛날이거나, 조금 먼 옛날이거나,

구분 짓지 말고 이야기의 씨앗들을 모아 보기로 한다.


우연히 손님이 찾아오신다면

얼굴 없는 괴물이 반갑게 맞이할지라도

부디 놀라지는 마시기를.


이들은 모두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옛 친구들'이므로.


2023.9. 30. 수목원의 농부, 용신선 삼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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