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운전〉
오늘 우리의 발 아래에는 무엇이 지나고 있는가? 지하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커먼 터널을 달리거나 지하차도에서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것이 오늘날의 지하세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선인들은 땅 속에 지하철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우리가 그 괴물의 후손이라고도 하였으니 그 사연을 들여다 보자.
신라의 조기유학생 최치원과 땅 속에서 온 아이 최고운
知爾新從海外來,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 불어와,
曉窓吟坐思難裁.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堪憐時復撼書幌,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似報故園花欲開.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김수영, <최치원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 돌베개, 2008, 26쪽의 원문과 번역을 따랐다.)
위 칠언시는 당나라 시절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었다고 알려진 「봄바람[東風]」이다. 시 속 화자의 처지처럼 그는 멀리 떨어진 존재였으며 이름만큼 멀리 보내진 존재였다. 그는 그의 호 ‘고운(孤雲)’ 그대로 외로운 사내이자, 은자(隱者)였다. 역사 속 그는 화려한 동시에 흐릿한 존재이다. 조기 유학생으로 당나라에 유학한지 7년 만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수재이자, <격황소서(檄黃巢書)>의 문장가,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의 정책가,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의 시인으로 알려진 점에서는 선명하고 화려하지만 당대 현실에 절망하고 방랑끝에 사라졌다는 그의 끝이 ‘알 수 없음[不知所終]’으로 남았다는 점에서는 흐릿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역사는 그를 온전한 모습으로 기억해 내지 못한 셈이다. 도리어 그 덕분에 최치원은 서사의 주연이 될 수 있었다. 그것도 글과 말로 모두 전해진다. 작자와 창작 연대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고소설 <최고운전>과 역시 작자와 형성 연대를 알 수 없는 구전설화 <금돼지 자손>에서 그는 어엿한 주인공이 되었다. 역사에서는 ‘주변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서사에서는 ‘주인공’이 된 셈이다. 여기에서는 <최고운전>의 주인공 ‘최치원’의 탄생 후 그의 처지에 주목하되, 서사 속 최치원의 ‘부모’에 무게를 두고 고찰해보고자 한다. 최치원은 실존인물이자 ‘전기’문학에 속한 인물로 입전(立傳)되어 있다.
글말로 전하는 고소설 <최고운전> 속 땅 아래의 세계
고소설 <최고운전(崔孤雲傳)>은 신라왕이 고운의 아버지 충(沖)에게 문창 수령을 배수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주인공의 내력이 담긴 가문 정보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옛소설 문법에서 다소 벗어난 시작점이다. 최치원(崔致遠)을 명문거족(名門巨族)의 후예로 소개하는 것으
로 보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치원의 가문은 서사적으로도 결코 화려찬란하지 않다. 충이 가솔을 거느리고 문창에 이르러 그곳의 부로를 불러 물었다. “예전에 들으니 이 읍에는 아내를 잃어버리는 변이 있다고 하던데 과연 이같은 변이 있었소?” 부로가 대답하기를, “예, 있었습니다.” 하니, 충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매일 많은 여종들로 하여금 함께 자기 아내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밖에 나가 직무를 보았다.
<최고운전>은 아버지 충이 벼슬하게 된 사연을 생략한다. 그는 다만 벼슬을 받은 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하는 수동적 인물로 묘사된다. 충이 기뻐해야 할 일에 슬픔과 두려움을 갖게 된 까닭은 ‘소문’ 때문이다. 위 예문처럼 탈처(奪妻)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을 가득안은 충은 ‘붉은 실[紅絲]’ 하나에 아내에게 벌어질 위기를 모두 의지한 채 공무보러 바깥으로 나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다. 충이 없는 내부는 아내에게 ‘빈 공간’과도 다르지 않다. 충이 많은 여종들로 아내를 지키게 하였음에도 검은 구름이 들어와 아내를 앗아간다. 여기에는 다분히 야래자(夜來者) 설화의 흔적이 있다. 국가의 공적 기관인 관아에 바람과 우레를 동반하며 들어온 검은 구름은 지배질서를 위협하는 ‘무질서’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최충은 붉은 실을 아내의 손에 묶어 놓고 밖에 나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내가 없어지자 현리 이적과 함께 붉은 실을 따라 일악령의 바위 골짜기 아래로 가니, 붉은 실이 바위 틈을 따라 들어가 있었다. 이것을 본 충이 아내를 부르며 통곡하니 이적이 위로하며 말했다. “이미 공의 아내를 잃어버렸는데 통곡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옛 노인에게 들으니 이 바위 틈은 밤이 되면 저절로 열린다고 합니다. 공께서는 일단 읍으로 돌아갔다가 밤이 된 이후에 다시 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충의 부하인 이적(李績)의 명명 적(績)으로 말미암아 적은 ‘실⋅길쌈’ 과 연관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바위 틈’으로 들어간 실을 보고 쉬이 절망한 충과 달리 적은 침착하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충은 어떤 위기에서도 쉬이 무력함을 보인다. 현자로 추정되는 노옹에게 들은 말대로
바위는 특정 시간에 이르자 저절로 열린다. 여기에는 별도의 ‘금기’나 ‘주문’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때’가 제시되며 그 때까지 대기하는 것으로 관문은 열리고 충의 무리는 비로소 이계(異界)로의 탐험을 시작한다.
“세상에 어찌 이같은 땅이 있겠느냐? 이는 필시 신선의 땅일 것이다.” 마침내 동쪽으로 행하여 50보 쯤 되는 곳에 이르니, 한 채의 큰 집이 있는데 매우 장대하고 아름다워 마치 하늘나라의 궁전과 같았다. 이때 충은 즐겁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꽃 사이로 들어가 창에 기대어 바라보니, 금색으로 된 누런 돼지가 자기 아내의 무릎을 베고 용무늬를 한 돗자리에 누워 졸고 있었고, 또 아름다운 여인들 십여 명이 쭉 둘러앉아 있었다. 충이 차고 있던 약주머니를 열고 약을 꺼내어 바람에 후 불어 날려보냈다. 그러자 아내가 향취를 맡고 남편이 온 것을 마음 속으로 알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넓고 기름진 땅과 기이한 새, 빽빽한 꽃과 나무 등 지하세계는 또 하나의 세상이자 별개의 작은 나라로 설정된 듯 하다. 이곳 풍경에 충은 압도되어 이를 ‘신선의 땅(神仙之地)’이라 표현한다. 지하대적(地下大賊)의 공간은 국가의 최고권위를 상징하는 ‘궁’에 맞먹는다. 이는 지하국(地下國)의 위상이 지상국(地上國)의 그것과 대등할 만한 것임을 뜻한다. 납치된 존재들은 ‘즐겁게 떠든다’ 이곳은 결코 비통한 공간이거나 음침하고 어두운 곳이 아니다. 흔히 실재할 만한 동굴과는 다른 것이다. 충이 차고온 약낭(藥囊)은 다만 충이 지하국(地下國)으로 왔음을 아내에게 알리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선행 연구자들의 지적대로 지하대적이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졸고있음은 ‘성행위의 은유’일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는 ‘이물교구’의 일부로 파악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확장된 ‘이물교혼’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금돼지[金猪]는 ‘지하국의 대적’이다. 이 지하공간에서 그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는 없다. 이 이계에서의 규범과 규칙은 모두 그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특별한’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존재는 오직 금돼지 뿐인 것이다. 약낭에서 나온 향취는 주인공의 ‘침입’을 상징한다. 피랍자(被拉者)만이 침입자의 흔적을 반기나 남편의 힘과 금돼지의 힘을 비교하였을 때에 이것이 결코 동등하거나 대등할 만한 것이 아님을 판단한 아내는 그만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만다. 주인공 세력의 침입을 눈치챈 금돼지는 ‘사람 냄새’를 맡고 까닭을 최충의 아내에게 묻는다. 이에 아내는 꽃향기일 뿐이라며 거짓으로 답한다. 아내의 절망을 뜻하는 눈물은 도리어 서사 흐름상 이 절대적인 위기를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준다. 금돼지가 충의 아내가 우는 까닭을 묻기 때문이다.
금돼지가 말하길, “이곳에 사는 사람은 죽는 법이 없소. 바라건대 슬퍼하지 마시오.” 하니, 충의 아내가 인하여 물었다. “제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들으니 선계 사람들은 호랑이 가죽을 보면 죽는다고 하던데, 과연 이같은 이치가 있습니까?” 금돼지가 대답하길, “나는 잘 모르오. 다만 사슴가죽을 따뜻한 물에 적셔 목 뒤에 붙이면 나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죽게 되오.” 지혜로운 아내는 인간계와 다른 이계의 특성을 이르며 ‘이곳에서의 오랜 즐거움이 유한할까’를 두려워하여 운다고 금돼지를 기만한다. 위의 예문은 그에 대한 지하대적의 답변이다. 지하대적의 대답은 아내의 거짓 우려에 대한 해결책인 동시에 대적 스스로의 약점 노출이 된다. 데릴라의 꾐에 빠져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삼손처럼 금돼지는 자신의 유일한 공포를 어처구니 없게 쉬이 밝히고 만다. 여기에서 ‘사슴가죽’은 일종의 ‘벽사부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고운전>은 ‘지하국대적퇴치설화’가 완전히 부정되는 구조가 결코 아니다. 서사는 분명 ‘지하국대적퇴치설화’의 원형적 흔적을 지닌다. 다만 고스란히 설화의 구조를 이식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변이형’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지하국대적퇴치설화’의 원형 설화가 갖는 설정과 달리 여기에서는 위기해결이 주인공인 남성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구출 대상자인 여성에 의해 해결되고 있음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하국 세력의 소거(消去)는 서사의 출발점에서부터 지혜를 보인 아내에 의해 이루어진다. 충의 아내가 나은 아이는 그녀가 집에 있을 적에 잉태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접때 갑자기 금돼지의 변을 당한 것으로 인해 충은 그 아이가 금돼지의 자식이라고 칭하고 해변 가에 버렸다.
지하대적이 불러온 첫 번째 위기 ‘아내 약탈’을 해소한 충 부부는 약탈의 위기해소 이후에도 지속되는 지하대적이 남긴 두 번째 위기 ‘의심스러운 임신’ 때문에 ‘부부위기’를 겪게 된다. 이는 ‘금돼지의 변(金猪之變)’을 아내의 ‘일탈’로 받아들인 충의 심리 때문인데, 출산한 아이를 ‘금돼지의 아이(金猪之子)’로 인식하는 충은 아이를 자신의 규범이 적용되는 공간인 가정에서 방출(放出)한다. 최고운은 최충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부정한’ 존재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문헌서사 <최고운전>은 고운과 금돼지의 거리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킨다.
입말로 전하는 구전민담 <금돼지 자손> 속 땅 아래의 세계
이번에는 구전서사로 전승되는 최치원의 이야기인 <금돼지 자손>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이야기는 「원님 마누라를 잡아가는 금돼지」라는 전설이다. 순창지역의 명산으로 알려진 체계산[冊如山](361m)과 연관된 전설에는 최고운 서사에서 흔히 나오는 금돼지가 등장한다.
옛적에는 순창읍내(淳昌邑內)가 남원군(南原郡) 체게산(山) 밑 적성강(赤城江)가이 가까이 있었다넌디 그때 순창으 원님이 내레오면 그날 밤 체게산 금돼지가 내레와서 워님 마누래를 업어가고 업어가고 허드랴. 그리서 순창골 원으로 온 사람은 모다 마누래를 뺏겼지. 그런디 어떤 원이 새로 내려와각고 그 금돼지가 어디 사는가 알아볼라고 워님 마누래 몸이다 멩지실 꾸리를 한끝을 쩜매놓고 한쪽은 방이다 두고 실이 풀려나가게 히놨다. 한밤중찜 됭개 금돼지가 내레와서 원님 마누래를 업고 달아났단 말이지. 이쪽이서는 멩지실 꾸리를 풀어주었어. 그리고나서 이튿날 아침에 원님은 사령(使令)들헌티 총이랑 칼이랑 창이랑 군물을 들려각고 그 멩지실 간 디를 졸졸 따러갔어. 강게 실은 체게산 우그 있는 굴(窟) 속으로 들어가 있드라지 뭐여. 그리서 그리 들어가 볼라고 허넌디 그 들어댕기는 문은 큰 독으로 딱 막어놔서 들어갈 수가 없드랴. 그런디 어텋게어텋게 히서 제우 그 독을 치고 굴 안으로 들어가 봉개 금돼지는 어디 가고 없고 원님 마누래허고 다른 여자가 아홉이나 있드래여. 군수(郡守)는 저그 마누래랑 여러 여자를 모두다 구히각고 나왔다. 그 굴은 지금도 체게산에 있어. 거그는 무서운 데 조메로 사람들이 안 가지. 여럿이 뫼여서 가 보면 그 굴안에서 흐으건 영감이 내다보고 있다넌 거여. 이것은 금(金)이 둔갑헌 거라는디 금이란 또 영감도 됐다 금돼지도 됐다 헌다는 거여. – 「원님 마누라를 잡아가는 금돼지」
(1940년 10월 순창군(淳昌郡) 순창면(淳昌面) 남계리(南溪里) 나씨(羅氏) 구술 채록 전문, 임석재, 임석재전집8, 평민사, 160~161쪽)
명주실과 원님의 화소는 해당 설화가 <최고운전> 서사와 연관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여기에서 금돼지는 ‘새하얀 영감’으로 둔갑할 수 있는 영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지하대적과의 대치에서 승리로 이끄는 주체가 남성 주인공인 원님으로 되어 있음을 보면 해당 설화는 전형적인 ‘지하국대적퇴치설화’의 한 종임을 알게 한다. 동시에 문헌서사와 달리 구전서사가 원형 설화 구조에 보다 충실함을 확인할 수 있다.
민담이면서도 전설의 성격을 갖는 <금돼지 자손> 설화의 경우 현실적인 감각이 동원될 수 있는 ‘동굴’이라는 실공간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음에도 정작 이계에 대한 묘사는 정밀하고 세밀한 고소설의 그것과 달리 전혀 드러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고소설에 그려진 지하대적의 공간
이 철저히 지상공간과 다른 곳임을 뚜렷이 표출하는 데 반하여 민담 속 지하국은 공간에 대한 묘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어떤 면에서 금돼지의 공간이 주인공 원님의 공간과 큰 이질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구전설화의 특징에는 민담학자 뤼티가 지적한 바 ‘일차원성’과 ‘평면성’이 있다. 문헌서사 속 이계가 특수하고 특별하며 이질적인 공간으로 상세히 묘사되어 주인공은 물론 독자에게 ‘다름’ 에 관한 감각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반면, 구전서사 속 이계는 분명 다르면서도 동일한 감각을 지니게 하는 평면적인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 구전민담의 법칙이다. <금돼지 자손>은 구전설화만의 민담 법칙에 충실한 것이다. 이물에 관한 묘사 역시 실세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돼지, 멧돼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구전서사 속 이계와 이물이 문헌서사와 달리 일정한 ‘친근성’을 갖는 것이라 할 만하다. 민층은 문헌으로 전해지는 지식 계층의 서사 속 이계와 이물에 친근성을 부여했다. 분명 금돼지가 ‘지하대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금돼지를 남편의 아내가 ‘은장도’를 동원하여 ‘살해’하는 구전설화 「멧돼지 자식 최치원의 천재성」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에서는 이계를 ‘바다 건너 편 절벽’으로 설정하여 배로 주인공 세력이 이동하게 하는 것으로 현계와 일정 거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문헌설화에 가까운 구전설화인 까닭으로 보인다. 설화 속 금돼지는 괴물이면서도 ‘신성함’을 거의 내비치지 않는다. 동시에 부부위기 역시 생략되어 있다. 고소설과 달리 서사 속 사건의 결과물인 ‘최고운’에 관하여 설화 전승자들은 금돼지의 후손임을 단순하게 긍정한다. 이는 민담이 갖는 완결형 서사에 대한 ‘강박’이 작동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전민담은 부정적 존재라 할지라도 쉽게 긍정적 존재로 받아들이려는 속성이 있다. 주인공이 갖는 어떠한 결함이나 결핍도 얼마든지 긍정되거나 보완될 수 있는 것이다. 최고운이 갖는 신이함과 그의 성격적 왜소함, 은둔자로의 속성을 긍정하기 위해 설화 전승자들은 반드시 최고운이 이물의 자손임을 긍정하게 된다. 고소설 <최고운전> 에서 부부위기가 금돼지의 탈처로 출발하여 출산 이후의 의심으로 연결되며 지속되는 반면, 구전민담 <금돼지 자손>에서 부부위기는 ‘지하국대적퇴치’ 구조 안에서 봉합된다. 분명 아내가 출산한 아이 최고운이 이물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민담 전승자들은 이를 서사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 부부위기의 해소가 오직 남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문헌서사와 다른 점이다. 구전서사 속에서는 ‘우부현녀’가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소설에서 지하국은 ‘바위’와 연결되어 있다. 그와 달리 설화에서 지하국은 대체로 ‘산’과 연결되어 있다. 전형적인 ‘지하대적퇴치설화’의 유형이 유지되는 것은 역시 설화로 옮겨진 최고운 서사이다. 다만, 설화에서 금돼지는 사람으로 둔갑이 가능한 존재이다. 이는 고소설의 이계가 철저히 현계와 분리된 공간으로만 설계된 것임에 반하여 설화의 이계는 얼마든 현실에 존재하는 이공간, 즉 ‘철저한 헤테로토피아’ 로의 공간으로 설계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고소설 <최고운전>과 구전민담 <금돼지 자손>은 두 서사 모두 ‘지하국’이라는 이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만 설화 원형으로의 ‘지하국대적퇴치’의 구조를 활용하는 점에서 둘은 차이를 갖는다. 고소설이 구전민담에 선행한다는 점을 존중하여 살피더라도 차이는 두드러지는데 이는 서사 장르가 갖는 문법적 차이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고소설 <최고운전>은 한문본이 선행본으로 문자를 활용하는 지식계층에 의해 주로 유통되는 서사였다. 지식 사대부계층에 있어 지하국대적은 서사에 호기심을 불어넣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질서를 유린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고소설 <최고운전>의 작자는 반드시 이계와 최고운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켜야 했다. 떼문에 문헌서사 속에서 지하국 대적에 의해 발생한 부부위기는 차용된 원형 설화대로 지하국 안에서 봉합되는 것일 수 없다. 지하국대적의 탈처로 인한 ‘부정한 상황’은 반드시 지상에서 일종의 ‘심사절차’ 를 이행해야 할 것이 되었다. 이물에 의한 부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의심과 이에 대한 해소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고소설은 봉합의 방편으로 ‘우부현녀(愚夫賢女: “남편보다 지혜로운 아내가 등장하는 설화 유형. 남자보다 더 지혜로운 여자가 등장하는 설화 유형이다. 이는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에 눌려 살았던 여성들의 보상심리가 만들어 낸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당 개념에 대한 설명은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2, 2012, 564~565쪽을 참조했다)’ 구조를 활용한다는 데에서 설화와 차이를 갖는 것이다.
고소설 <최고운전>과 구전설화 <금돼지 자손>에 나란히 등장하는
땅 아래의 세계와 땅 속에서 나온 금돼지의 아들
고소설 <최고운전>과 구전설화 <금돼지 자손>은 서로 동일한 서사 유전자(遺傳子)를 공유한다. 설화가 고소설에 선행한다고 이해되기 보다 고소설이 도리어 설화에 영향을 준 관계로 파악된다. 두 서사는 첫째, 부모의 부부관계가 서사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 둘째, 지하국대적의 아내 납치가 아들 출생의 원인이 된다는 점. 셋째, 지하국대적 퇴치에 ‘부적’이 활용되며 위기해결이 도리어 부부위기의 근원이 된다는 점 등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두 서사는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장르가 주는 형식적 차이는 물론 서사 전개 방식에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금돼지는 부부위기의 제공자이며, ‘의심스런 출생’을 안고 있는 최고운은 그 자체로 부부위기의 핵심이다. 이는 자녀와 부부의 역학(力學)관계를 예의주시하게 만든다. 고소설 <최고운전>에서 남편은 언제나 위기에 봉착할 뿐 위기를 타개(打開)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결핍 상태로 위치한다. 남편의 결핍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보완적 존재는 어디까지나 아내이자 최고운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붉은 실’로 자신의 위기를 예방하게 해주며, ‘사슴가죽’으로 지하대적을 당당히 퇴치한 주체가 되지만 서사 속에서는 어디까지나 ‘배경’의 일부로 남을 뿐이다. 고소설에서 부부위기는 뒤에 이어질 ‘부자갈등’의 서사적 전제로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소설의 작자는 부부위기를 서사 전반부에서 종결 짓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 해소방안은 어디까지나 ‘우부현녀(愚夫賢女)’라는 서사적 구성방식이다. ‘우부현녀’라는 화소는 다분히 ‘설화적’이다. 분명 서사 얼개는 고소설이 설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되지만 고소설 화소는 대개 설화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근대 서사에서 대체로 약자로 파악되는 ‘여성’을 서사 중심에 놓는 성질을 갖는 설화특성상 ‘우부현녀’는 민담이 갖는 대표적 구성방식의 하나이다. 고소설의 작자는 이러한 설화적 화소를 차용하여 서사에서 지속되어 버린 부부위기를 봉합하고자 노력했다. 반면, 구전설화에서 부부위기는 대체로 생략되어 있다. 이는 서사 방향이 고소설의 그것과 다른 까닭이다. 고소설은 서사문법 상 아버지의 역할을 중시하기에 부부위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봉합에 이르러야 했다. 그러나 설화는 다만 주인공에게 모든 서사적 조명을 집중한다. 때문에 설화 <금돼지 자손>은 주인공으로 설정된 ‘금돼지 자손’ 즉 최고운을 위해 모든 서사 구조를 헌신한다. 때문에 지하국대적퇴치 화소도 고소설에 비해 엄격하게 적용하되 축약되어 있으며 다만 그 결과로 잉태된 존재 최고운을 지하대적의 후손인 것으로 판정함으로써 최고운이 갖는 고유성을 모두 설명하고자 한다. 고소설은 부부위기를 ‘우부현녀’로 해소하려 했던 것이며, 설화는 부부위기를 최대한 생략하며 부부위기의 근원일 수 있는 최고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금돼지’로 긍정하는 것으로 부부위기를 봉합한다. 지식계층의 서사와 민층계층의 서사가 갖는 차이를 알 수 있는 일면으로 이해된다.
고소설과 구전서사에 담긴 이야기는 '지하국'과 '지하대적' 그리고 '지하대적의 후손'이 뒤섞여 겪는 사연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 담긴 사연의 내막을 좀더 들여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결국 땅 속에서 나온 존재이기에 끝내 땅으로 귀결하게 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 우리는 모두 땅 속에서 온 것이 아닌가? 우리의 고향은 시커먼 땅 아래 어딘가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