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들풀 003. 이 쪽과 저 쪽의 여행자,

<당태종전>

by 용신선



나는 이 쪽에 있는가?

나는 저 쪽에 있는가?


"Game Over / Continue? 10...9...8... "


전자 게임을 해본 분들이라면 위 문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를 잘못(?) 조종하여 게임 안에서 '사망각'에 이르게 되면 게임프로그램은 '이어하기'와 '게임오버' 중 하나를 택하도록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제안한다. 이어하기를 택한다면 게임 속 캐릭터는 다시 스테이지로 복귀하고, 게임오버를 택한다면 메인타이틀 화면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 속'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은 이와 달리 이 쪽과 저 쪽이 너무도 선명히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밤, 당군의 일부는 야음을 타서 안시성을 떠났다. 태종은 그 제일차 회군부대에 섞이어 도망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그 밤에 무서운 일이 생기고, 무서운 일이 전개되었다. 사십 리 기럭지를 뻗치고 있던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이, 사진을 날리며 이 도피하는 당군에게 엄살해 온 것이었다. 당군은 포위되었다. 그물 안에 들었다. 놀랍고 무서운 일은 전개되었다. 몇 백만인지 모르는 많은 사람이 안시성 근교에서 죽이며 죽이우며, 무서운 참극은 전개되었다. 이 근처 일대는 시산혈해로 화하였다. 당군은 거진 전멸하였다. 어떻게 해서 이 살육의 곳에서는 빠져나온 자도, 곳곳이 지키는 고구려의 유격군에게 붙들리어, 본국 당나라까지 돌아간 자는 겨우 수천 명에 지나지 못하였다. 하늘이 내린 사람인 태종-. 간신히 목숨은 유지하여 그야말로 말도 못 타고 정강말로 귀국하였다. 말은 잡아 먹은 것이었다. 시장하여."

(<김동인전집 15 朝鮮史温古 外 수록 개소문(蓋蘇文)과 당태종(唐太宗)>, 조선일보사, 1988, 303쪽.)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펜 끝에서 호흡을 얻은 당고조의 둘째 아들 이세민 당태종과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의 대결. 정말로 양만춘의 화살촉이 당태종의 눈을 꿰뚫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금동의 상상력 속에서 간신히 당으로 귀국한 당태종은 울긋불긋한 딱지본 고소설 속에서는 이 쪽과 저 쪽을 오간 존재로 그려진다.



이곳과 저곳을 여행한 왕의 서사

〈당태종전〉


"화설. 당(唐) 나라 황제의 성은 이(李)요 이름은 세민(世民)이니, 벼슬이 없는 선비로서 수(隋)나라가 어지러움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취하여 아주 잘 다스려서 나라가 태평하고 사면팔방의 오랑캐가 두루 항복하니 천하가 태평하고 어느 집 사람이나 의식에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며,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거리에서는 남이 흘린 물건을 줍는 일이 없으며 국내가 편안하였다."

(박용식 역주, <연강학술도서 한국고전문학전집(16) 당태종전>,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95, 271쪽.)


627년부터 649년까지 당태종이 다스리던 시절을 정관지치(貞觀之治)라 부를 만큼 중국 역사상 빛나던 시절의 하나로 기록된 시간들은 소설 <당태종전>에서도 짤막하게나마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가 왕권을 잡기까지는 '현무문의 변'이라 하는 형제들과의 난을 겪어야 했고, 중원 땅의 혼란을 고요하게 한 만큼이나 피의 대가를 치른 군주이기도 했다. 이것이 이세민, 곧 제세안민(濟世安民)의 그림자인 것이다. 그림자가 너무도 짙었던 탓일까, 역사 속에서 50대 초반에 명을 달리 한 그의 운명은 허구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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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 태종 황제께서 가라사대, "짐이 명부에서 나올 제 십전 명왕이 수박을 청하기로 아무쪼록 얻어 들여보내마 하였는데, 수박은 지금 있는 때니 구하기 쉽거니와 수박을 들여보낼 사람이 없으니 어찌하리오? 하시고 개탄하셨다. 여러 신하들이 또한 계교가 없어 어찌할 줄 모르고 의논이 분분하였는데, 반열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아뢰기를, "이제 저승에 수박을 보내려 하시면 사람이 죽어야 저승에 갈 것이오니, 두루 방을 붙여서 스스로 죽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하여 구하면 필경 있사올 것이오니 그렇게 하여 보사이다." 상이 그 말을 옳게 여겨 사방의 문에 방문을 붙여 "자원하여 죽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나타나라. 그 가족은 소원대로 보호하여 월음을 후하게 주고 우선 천금을 상으로 주리라."

(박용식 역주, 같은 책, 319쪽.)


당태종은 굳어진 송장이 되어 그의 혼과 백은 그만 흩어지게 된다. 그 넋이 다다른 곳은 저승이니 염라국에서 그는 주인 아닌 손님이 되고 만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어 되돌아올 즈음 십전 명왕은 그에게 저승땅에서 나지 않는 열매, 수박을 배송해 달라고 기이한 택배 주문을 한다. 당태종을 대신하여 저승에 수박을 옮기는 존재는 경성 30리 밖에 거주하고 있던 이춘영이었다. 병을 얻은 아내는 이미 앞서 저승에 갔고, 어린 자식은 밤낮으로 어미를 그리며 울 뿐이다. 춘영의 삶은 죽음과 다르지 않은 것, 그는 당태종이 내린 독약을 먹고 육신의 감옥을 떠나 명계로 편지와 수박을 가져간다. 이세민의 부활보다 신이한 것은 염라왕이 원하는 과일에 있다. <서유기>에서는 '호박'인데, <당태종전>에서는 '수박'이다.

설화학자 최운식에 의하면 학계에서는 죽어서 저승에 간 존재가 타인의 저승 곳간 재물을 꾸어 명계에서 인정을 쓰고 이계로 돌아와 재물을 갚는 구조를 갖는 설화를 '저승 재물 차용 설화'라 명명한다. 6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국어과 6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에 <저승에 있는 곳간>으로 실리기도 했다는 해당 서사구조는 무가 <세민황제본풀이>와 고소설 <당태종전>에 나란히 보인다. 이곳에 있는 곳간이 저곳에도 있다는 상상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태종전〉과 〈서유기〉 속의

‘이계(異界)’ 그리고 ‘명계(冥界)’를 그리는 선인들의 상상



어느덧 오륙일이 지났다. 조정의 신하들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궁문 안에 들어가 황제를 뵙고 문안을 올리려고 하는데 태후로부터 또다시 전갈이 내렸다. 전의가 들어와서 지금 진맥을 하고 있는 중이니 백관들은 궁문 앞에서 전갈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중략)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는데 다시 태후로부터 "폐하께서 서무공과 호국공과 위자공 세 분을 부르십니다"하는 전갈이 왔다. 세 사람이 황급히 별전으로 달려가니 태종은 얼굴빛을 고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경들은 들으시오. 과인은 19세 때부터 병마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의 정벌에 나갔지만 지금까지 사귀라고는 그림자조차 본 일이 없소. 그러나 요즘은 사뭇 귀신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소." 위지공이 아뢰었다. "국가 창업 때는 무수히 살인도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그까짓 귀신 따위가 무엇이겠습니까?" "경은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밤이 되면 침전 밖에서 귀신들이 울부짖고 기왓장을 던지오. 대낮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밤이면 견딜 수가 없소." 숙보가 아뢰었다. "폐하! 부디 안심하시옵소서. 오늘 밤에 경덕과 함께 신이 궁문을 굳게 지켜 어떠한 사귀가 나타나는가를 알아보겠사옵니다." 태종이 윤허하므로 그들은 인사를 올리고 어전에서 물러났다. 해가 지자 호국공과 위지공 두 사람은 갑주로 몸을 싼 뒤에 철퇴와 큰 도끼, 작은 도끼를 쥐고 궁문 밖에 나가 지켰다. 두 장군이 궁문 곁에 서자 밤이 되어도 사귀는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밤에는 태종도 별고 없이 침전에서 잘 수가 있었다.

(오승은저, 연변인민출판사 번역조 역, <서유기>1, 올재, 2015, 182~183쪽.)


'아마도' 오승은이 엮었을 것이라는 루쉰의 한 마디로 100 회본 <서유기>의 편자는 오승은이 되었다. 정말 그가 엮었는지 알 길이 없는 <서유기> 속에는 위와 같은 당태종의 삽화가 실려 있다. 해지고 어둠이 깔리면 당태종의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된다. 전장에서 당 군주 이세민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존재들은 사귀가 되어 당태종의 침전 바깥에서 울부짖을 뿐 아니라 기왓장을 내던지기까지 한다. 이 삽화의 모티프로 인해 조선 궁궐의 기와장식 잡상은 중국의 선인주수와 달리 <서유기> 속 캐릭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등에서 잡상의 실물을 보다 가까이 접한다면 대체 어디가 이들이 삼장법사이고, 손오공이고, 저팔계이며, 사오정인가 싶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에게 붙여진 명칭은 '대당사부', '손행자' 등 <서유기>의 그것이다. 프랑스 노트르담의 성소를 가고일이 지킨다면, 조선 고궁의 성소는 잡상이 지킨다. 어딘가 기괴한 몰골을 한 채로.

<서유기> 속에 오공, 오능, 오정 세 요괴와 삼장법사가 거닐어야 하는 십만 팔천 리의 이계가 펼쳐진다면 <당태종전> 속에는 아득하고 섬뜩한 명계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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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궁한 후 태종 황제께서 홍인대사의 공을 잊지 못하여 이름을 고쳐 삼장법사라 하고 서역국에 보내어 "팔만대장경을 내오라!" 하시니, 삼장법사가 황명을 받자와 행장을 수습하여 발행하였다. 삼장법사는 본디 금선자이니 열두 번 환생하여 부처의 도를 깨우쳤다. 홀로 길을 나서니 가야 할 길이 10만 8천여 리였다. (중략) 제자들을 데리고 서천을 향하여 가니, 10만 8천 리 사이에 숱한 요괴를 제어하고 81 난을 겪고 서역에 도달하여 팔만대장경을 구하여 가지고 중국에 나왔으니, 황제의 명령이 지극히 중함과 부처의 도술이 신통함을 알 수 있었다.

(박용식 역주, 같은 책, 339~345쪽.)


<당태종전>에는 <서유기>의 81 난이 단 몇 개의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 <당태종전>에서 중요한 것은 10만 8천 리의 취경길이 아니라 아득한 저승길이다. 저승에 있는 스토리지에는 망자가 숨이 붙어 있던 시절에 쌓거나 쌓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다. 마치 클라우드 웹하드처럼 이곳의 데이터가 저곳의 데이터로 이관되어 있는 것이다. 망자가 염라국에 입국심사를 받게 되면 절차에 따라 길이 갈린다. 이승길의 길이 나뉘듯 저승길의 길도 나뉘어 있는 것이다. 당태종이 염라국에서 목격한 것은 선비 박생이 염마와 함께 거닐던 남쪽의 염부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김시습이 지은 <남염부주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괴미로 가득한 저승의 형장이 <당태종전>에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나오는 기계부품처럼 즐비하다. <당태종전>을 접하는 독자들은 명계의 사법부가 관장하는 끔찍한 형장을 비켜갈 수 없다. 당태종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선인들은 이계와 명계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상했다. 선인들의 상상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상과 어떤 차이가 있던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의 생존자들


염라대왕이 최 판관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이춘영의 처는 육신이 이미 썩어 혼을 붙일 길이 없으니 당 나라 공주를 잡아오고 그 혼을 공주의 육신에 붙여 이춘영으로 하여금 남은 연분을 이어 맺게 함이 어떠하뇨?" 최판관이 말하기를, "이 일이 가장 올바르오니 시행하옵소서." 염라대왕이 사자에게 분부하기를, "빨리 인간 세상에 나가 당 나라 궁전에 가서 공주를 잡아오고 이춘영의 처 한씨의 넋을 공주의 시신에 붙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춘영 부부를 불러 분부하기를, "너희 정경이 참혹하기로 불쌍히 여겨 세상에 도로 내보내나니 너희 부부가 서로 화목하게 살고, 복록을 많이 점지하였나니 바삐 나가라." 하였다. 이춘영의 부부가 백배사례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물러나와 사자를 따라 인간 세계로 나가는 길을 향하여 호호탕탕하게 나왔다.

(박용식 역주, 같은 책, 325쪽.)


이세민을 대신하여 수박을 무사히 배송한 이춘영은 그의 처와 함께 이승에서 다시 한번 생을 부여받는다. 지상의 육신으로 무사히 돌아온 이춘영의 넋. 그는 열일곱 창원공주의 몸으로 돌아온 처와 재회한다. 피안(pāra)의 세계에서 이곳 차안으로 돌아온 이들은 '생존자'이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요다는 제다이 수련 중인 제자 루크에게 어둠을 맞이하는 어려움을 강조하며 숨을 거둔다. 스필버그 감독의 <E.T.>에서 이티는 주인공 소년 엘리엇에게 'Be good.'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무지개와 함께 너머로 떠난다. 디즈니의 <라이온킹>에서 아빠 사자 무파사는 외아들 심바 왕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 그만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춘영 부부와 당태종 이세민은 돌아온 생존자들이다.

<당태종전> 서사 속에서 이세민의 역사적 정보나 종교적 색채를 거두어 낸다면 여기에는 생과 사라는 두 가지 과업만이 남는다. 차안과 피안 사이의 생존자들. 당태종과 이춘영 부부는 나와 독자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차안에 두 번 다시 태어날 수 없고, 피안으로 떠난 이상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아직 생존해 있는 것이다. 땅의 곳간도 하늘의 곳간도 그 주인은 결코 우리들 자신이 아니다. 우리가 이 곳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허상'이며, 착각에 지남 아닌 것이다. 이계의 땅만큼이나 명계의 땅은 지상의 땅과 다르다. 그럼에도 지상에 뿌리고 거둔 것이 저곳에도 뿌려져 있고 거두어져 있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당태종처럼 우리는 생과 사 사이에서 간신히 맥박을 유지한다. 생존자로 살아남은 우리는 여전히 궁금증을 갖는다. '수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땅이 다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집착하는 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집착하는 열매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허상의 땅과 허상의 열매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죽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을까? 이미 죽었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다시 태어날 수 없듯이. 우리는 잠시 생존해 있을 뿐이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우리에게 '땅'은 어디이며, '열매'는 무엇인지 <당태종전>은 다시금 생각해 보라고 하는 듯하다. 섬뜩한 염라국의 형장을 죽음의 눈으로 보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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