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심기 001. '살아간다'는 도술
〈도술이 뛰어난 서화담〉
배고픔으로 시작되어 허기를 달래는 이야기 먹방
한 밤중에도 우리는 허기를 느낀다. 냉장고를 뒤적이고, 부엌 서랍에 작은 컵라면이라도 있다면 냉큼 끓여 먹는다. 후-후- 뽀얀 면발에 입 바람 불며 후루룩 후루룩 김치를 곁들여 먹는 라면 정도면 일정 정도 배고픔은 달래지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낙엽도 떨어지고 나뭇가지들이 뼈를 드러낼 겨울 한 밤중에 한 사내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북풍이 매우 사납게 몰아치더니 찬 구름이 엉켜들며 눈발이 날려서 떨어지는 배꽃 같고 나부끼는 버들강아지와도 같다. 그 눈발이 점점 세게 몰아쳐서 사면이 자욱하고 눈앞이 희미하게 짙어지더니 하룻밤 동안에 온 세계가 은 바다를 이뤘다.
(중략)
경성 부동촌 밑에 있는 몇 칸의 초가집에서는 방에 불을 지피지 못하였으니, 밥을 지어먹지 못한 줄을 짐작할 만하다. 추운 방에 꿇어앉은 주인은 혼잣말로 ‘어떤 사람은 매우 크고 좋은 집에서 푸짐하게 잘 차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생을 지내는데, 어떤 사람은 석 자밖에 안 되는 좁고 차가운 온돌방에서 하루 한 끼조차 분명히 얻어먹지 못하니,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심이 어찌 이처럼 고르지 못하신가?’ 하며 탄식하고 있다.
이때, 마침 이웃에 사는 한 친구가 찾아와서 주인이 곤란함을 보고 조끼를 뒤적거리더니 지폐 몇 장을 꺼내어 나무와 쌀을 변통하여 밥을 지으라 하고, 술 한 병을 사다가 깍두기로 안주 삼아 먹으면서 세상일을 의논하더니 그 친구는 지금 일을 좋아하지 않았던지 다시 옛말로 시작하여 서화담의 사건과 자취를 이야기한다.
(無名 著 · 송진한 譯解,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4, 3~4쪽)
작품 속에서 화자는 시커먼 묵(墨)으로 그린 ‘먹방’을 보여준다.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 속에서 친구가 들려주는 인물 서화담은 ‘도술’로 유명하단다. 그렇다면 대체 도술은 무엇일까?
도술이란 무엇인가?
만물의 존재
(一)
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다시 오네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이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로부터 왔는가?
(二)
존재하는 만물은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다 돌아가지 못하니
다 돌아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다 돌아가지 않았네.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끝까지 해도 돌아감은 끝나지 않는 것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갈 건가?
〈有物〉 一 有物來來不盡來, 來纔盡處又從來, 來來本自來無始, 爲問君初何所來. 二 有物歸歸不盡歸, 歸纔盡處未會歸, 歸歸到底歸無了, 爲問君從何所歸.
(金學主 譯, <徐花潭文集>, 明文堂, 2003, 83쪽의 원문과 번역을 따랐다.)
위 시는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 선생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여전히 우리의 세계는 질병과 전쟁으로 어지럽다. 무명의 존재들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경제 위기와 정치 상황 나아가 기후 위기 등 여러 제반 여건으로 우리의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하고 불확실해진 실정이다. ‘우리’라는 ‘만물’의 귀결점은 화담의 시처럼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여건 속에서 필자의 시선은 근래 유독 ‘딱지본’ 고소설에 머문다. 하나, 둘 딱지본을 수집하며 학문의 실마리를 여기에서 탐색하고 있다. 그러던 중 눈길에 들어온 작품이 있다. 일제 치하 망국의 조선인 이종정(李鍾楨)이 펴낸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젼〉(1926)이다. 편자(編者)의 시절만큼 근래 세간(世間)이 어지러운 탓에 연구자는 ‘도술’로 울적함과 답답함을 벗어내보고자 하는 감상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현대어본으로 먼저 마주한 작품은 작품 속 화자의 문투가 워낙 ‘강담사’를 연상케 하여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석연(釋然)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김일렬 선생이 현대 한국어로 옮기고 엮은 〈서화담전〉도, 송진한 선생이 풀어 엮은 〈서화담전〉도 모두 현존하는 〈서화담젼〉에 결루(缺漏)가 있어 낙장(落張)이 있다고 하였다.
1996년과 2014년, 열여덟 해의 시차를 둔 현대어본 〈서화담젼〉이 나란히 원전에 2, 3장이 빠져 있다고 기술한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결락(缺落)의 상황은 빠진 이처럼 아쉬운 데다 허망한 감이 있었다. 하여 온라인 웹으로 해당 작품을 찾던 중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완질본(完帙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화담젼〉에 대한 관심은 더욱 짙어졌다. 서경덕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은둔으로 생애 전반을 일관하며 학문을 궁리한 은사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화담에 대한 기록은 그의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초라할 만큼 적다. 대체로 문헌과 구전으로 전승되는 야사 혹은 설화로 단편 삽화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전해질뿐이다. 화담은 성종 20년(1489)에 태어나 명종 2년(1546) 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경덕은 10세 때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16세 때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31세 때에는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과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가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서화담은 빈한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큰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여러 기록을 토대로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초야에 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아니한 은사로 일생을 보냈고, 세속적인 명리와는 무관"하였고, 다만 "정치의 잘못이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개탄을 금치 못하였고 스스로 깨치고 여구하여 여러 편의 독창적인 글을" 지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서화담 서사 계보의 근대적 도약이라 할 활자본에 주목한다. 활자본은 ‘딱지본’으로 흔히 더 알려져 있는데, 이는 출판사(出版史)적으로 혁명적인 매체라 할 것이다. 최근 딱지본에 대한 연구는 미술계에서도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딱지본의 ‘표지’이다. 현존하는 딱지본 〈서화담젼〉 역시 ‘울긋불긋’한 색상의 삽화를 표지로 삼고 있다. 필사본과 딱지본의 차이는 표지 외에도 서책 끝자락에 붙는 광고면과 인지(印紙)를 통해 알 수 있는 정확한 발행과 인쇄 정보이다.
〈서화담젼〉의 작가는 다분히 목적론적 철학 내지 운명론적 세계관을 그린다. 저자는 주인공을 ‘화담’으로 불리는 연유를 서사 속에서 소개한다. 화담이 원근의 풍경이 눈에 맺히는 이치를 터득하거나 새의 비행 원리를 깨치는 부분은 서경덕의 천부적 능력과 연관을 짓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는 전혀 도술적 재능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절 삽화 안에서 그는 어디까지나 ‘관찰자’에 지나지 않다. 그가 터득하게 되는 원리는 모두 관찰에 의한 합리적 분석에 의한 것이다. 딱지본 〈서화담젼〉이 근대에 형성된 서화담 서사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과학적 일면도 엿보인다. 이중 「하늘이 멀리 가까이 보이는 이치와 종달새가 위아래로 나는 원리를 터득하다」의 삽화의 경우 이는 야사(野史)에서 전승되는 일화를 채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글을 읽을 적에 묵독(默讀)을 하였다거나 오랜 관찰 끝에 사물의 원리를 파악하는 등 문리를 깨치는 과정은 다분히 근대 합리적 지식인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서화담을 근대 지식인의 모델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가 도술을 펼치게 되는 계기는 다분히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탓인데, 그는 전생에 연을 맺은 신선과의 조우를 통해 천서를 얻어 도술을 터득하게 된다. 이 화소를 살피면 화담은 천상계에서 죄를 지어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난 적강의 존재인데, 해당 내용은 결락되었다는 두 장에서 소개되고 있으니 해당 장에서 살펴보겠다. 〈서화담젼〉에서 주목되는 부분의 하나는 ‘가난’ 화소이다. 화담 부부에게 가난은 서사 초반부터 종장까지 전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화담은 그의 도술을 통해 아내에게 부의 덧없음을 깨우쳐 주고 나아가 도술을 통해 천지자연의 도를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 부부의 관계라고 하지만 서사 내부에서 그려지는 둘의 모습은 사제의 그것과 닮아 있다. 화담은 〈서화담젼〉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남편의 도술을 눈으로 확인하고픈 아내에게 동정호(洞庭湖)로 만든 바다와 연잎으로 만든 배, 연 줄기로 만든 동자를 작은 방에 재현하여 보여준다. 매크로의 공간을 미크로의 장소 안에 압축하여 보여주는 이 장면에는 화담이라는 인물을 통해 저자가 ‘허무’의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 화담은 마치 서양의 점성가처럼 현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서화담젼〉은 도술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간접적인 ‘오컬트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오컬트 요소가 독자로 하여금 서사에 눈을 뗄 수 없는 매력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컬트 요소가 극대화된 장면은 화담이 본인의 혼인 첫날밤 처녀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삽화이다. 작품은 삽화를 통해 ‘원한을 품은 귀신’인 원귀를 소재로 삼고 있다. 원귀는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발생되고 이 부조리의 피해자인 원귀는 이승에서 자신의 한을 해원 하려고 한다.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원한이 쌓여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면서” 해원의 기회를 포착하려는 존재가 원귀이다. 성리학적인 분위기라면 귀신은 퇴치해야 마땅할 대상에 지남 아니다. 그러나 작품 속 ‘귀녀(鬼女)’는 원귀이면서 여귀의 요소를 지닌 복합적 ‘귀(鬼)’의 존재이다. 귀녀의 등장이 작가가 피지배층이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원귀 서사의 주인공이 여성이라 할지라도 서사의 작가는 남성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작가가 약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서사로 나마 대신하려고 하기보다는 사회에 저항하려는 진보적 의식을 드러낼 때에 여귀를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동양 철학의 영향권에 있던 독일의 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했다. 〈서화담젼〉의 서사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전반적인 종교적 색채는 어디까지나 도교적 세계관이다. 허엽의 아들 허균(許筠, 1569~1618)은 그의 저작 《사부고(四部稿)》를 통해 조선의 도인 6인을 소개하는 가운데 화담을 언급한다. 이는 아버지의 영향 탓으로 보인다. 〈서화담젼〉에 등장하는 제자 허운(許雲) 역시 이러한 기록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작품은 서양의 시각에서 보자면 어디까지나 마력(魔力)의 주술자인 샤먼으로서 주인공이 묘사된다는 점에서 ‘오컬트’의 요소로 가득하다. 더구나 작품에서 화담은 인물들의 ‘기’를 어떻게 활용할지 늘 경계한다. 이는 서경덕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작품은 시종일관 구제적 종교인 도교의 가치를 전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서화담젼〉 속 화담은 샤먼과 다르지 않으며 그의 행위는 샤머니즘의 그것과 유사하다. 여성 원귀의 해원을 시도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서화담젼〉에는 조직적 도교의 일면이 묘사된다. 여기에는 작자가 지닌 ‘원시심성’의 요소도 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서사라는 점도 파악해야 할 정보이다. 당시 ‘도교’는 정식 종교로 인정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잠시 떨어져 나갔다는 낙장(落張)의 원본을 옮겨오면 아래와 같다.
[A] 낙장(落張) 2쪽 원본 전사(傳寫)
일하는데 해가다가고 밤이다 새도록 말을긋치지안이한다 이약이를듯는주인도 잠이나가서 잠자
기를이저버리고 그친구가 그이약이를긋칠념려하다가 다행이이약이를다듯고 생각하여본즉 화
담선생은 그러케유명한도술을가젓스되 먹고이븐일에는 간함을격것는대 나갓치무재무능한위인
으로 배곱흐고 몸치움을 엇지한탄하며 는화담선생은 배곱흐고 몸치움을당하여서도 태연이견
듸여 조곰도걱정하는빗한히업섯는대 나는배곱흐고 몸치움을 참못하여 한탄함을마지안엿스니
나의자격이부족함을 가히알거시로다 스사로붓그려하여 이제로붓허는 쓸데업는걱셩을 그만두고
지내여보자는마음을가젓스니 참으로그리하엿스면 화담선생의이약이를드른보람이잇겟지만은 강
경치못한마음이라 사흘이나참을넌지 대저화담선생의사적을 그친구에게드른대로번역하여 나의
마음경계하는자료로 되게하고 보시는여러분의자미도 도읍고저하노라 조선중종대왕에 송도선
배서화담선생의일흠은경덕(敬德)이오 자는가구(可久)니 천지를손바닥우에놋코듸미려보며 귀신
을무릅알애리고호령하는 도술을가진 이인이라 그사실의시말을 자세이긔록하자하면 선생의모
친이 선생을잉태할에 일몽을엇으니 한낫선동이 오색구름을타고 한울로좃처내려 2쪽.
[B] 낙장(落張) 3쪽 원본 전사(傳寫)
와 앞헤서서 옥면을숙이고 단구를열어 하소연한다 소자가 무망중 상제 죄를엇어 겁운이무수
하고 사변이다단하온 이세계에내치심을당하온바 갈바를아지못하와 부인슬하에 이르럿사 오니
바라옵건대부인은 어엿비녁이십시오 하며 부인의품의헷치고들어오는지라 부인은을여 의아
하더니 그달붓터태긔잇서 십여삭만에분만하여 일개남자를나엇는대 나올에 이상한향긔가방중
에가득하고 상서구름이 동구에어래엿는지라 아해가난지사흘이되도록 울지도안코 먹지도안터니
두어달후에는 남을보면반겨웃기도하고 모친을향하여괴로이봇채지도안여 지각이잇는듯하다
치々자릴수록 선풍도골은 사람의눈을깃부게하고 총혜명달은 사람의마음을놀납게하는저 삼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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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터 책을 펴놋코 글자를무르며 한번무러본자는 다시이저버리지안는다 오륙세가되여서는 더욱
긔이하고 절등하여 놀고희롱함도 심상한일이업슴애 그부친은 긍들의넘우총명함을 오히려다행
이녁이지안이하여 글읽으려함을 매양금지하엿스나 그의글읽기조와함은 천생성질이라 부친이금
지하심애 집에서는감히읽지못하고 그 모친청하여 동리글방에단이며배우려한다 그 모치은그
아들이 총명치못할 념려한는마음이오 글을읽지안이할 권면한는마음이라 3쪽.
‘살아간다’는 도술
이번 글에서는 딱지본 옛소설〈道術有名한 徐花潭傳〉에 대한 생각을 심고 나누어 보았다. 무아경(無我境)의 도교(道敎)는 넋과 육체 간 신비적 합일(合一)을 이룰 뿐 아니라 도술(道術), 곧 신선의 술법을 닦는 방사(方士)의 방술(方術) 등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종교체계이다. 도교 역시 여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동 집단의 집체적 표상을 지닌다. 서구권의 이해로 보자면 이는 오컬트(Occult)의 세계에 속한다. 서양에서 이는 천사나 귀신의 능력으로 이해되는데, 동양 문화에서 도술은 서구가 이해하는 그러한 초월적 오컬트의 능력과 견줄만하다. 실존인물인 화담 서경덕(1489~1546)을 모델로 한 서화담 서사는 오늘날까지 채집되는 구술 전승은 물론 전근대 야담집 속 문헌 전승으로도 즐겨 등장한다. 20세기 초 ‘딱지본’ 형태로 등장한 〈도술유명한 서화담젼〉 역시 서화담 서사의 전승 줄기가 만들어낸 문학적 가지의 하나이다. 광동서국에서 1926년에 출간한 〈서화담젼〉은 유교 · 도교의 사상적 정서가 혼효된 고소설이다.
필자는 서사 속 서화담이 유학자의 모델처럼 등장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도사로의 면모가 자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러 삽화로 구성된 〈서화담젼〉은 옴니버스 구조를 갖는데 대체로 작품 내 서술자 기억에 의존하여 의식 흐름대로 나열된다. 서화담은 시종일관 가난한 처지에 놓인다. 동시에 그는 성과 속, 생과 사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존재이다. 근본적으로 서화담과 아내에게 놓이는 문제는 ‘가난’인데 이는 서사 초입부터 결말까지 결코 해소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서화담은 귀(鬼)를 퇴치하고 화를 멀리하는 신령한 신선과 같으면서도 일상에서는 유학자이다. 이는 서사 속에서 도교적 세계관이 보조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장식의 역할에 그치고 만다는 한계로 지적한다. 어쩌면 우리가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도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