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나무 008. 길 잃은 재능의 이정표,

<지리산로미봉진>

by 용신선

길을 잃어본 적 있나요?

길을 물어본 적 있나요?


여덟 살 되던 해였다. 여름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외할머니, 엄마, 나 셋은 5층 505호에 안전하게 있었다. 그런데 위태로운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한 아버지의 목소리.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무언가 다급한 메시지를 전한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고, 외할머니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우시기 시작한다.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는 기차표를 끊기 위해 동생과 서부역으로 향하셨던 것이다. 동생에게 나비날개가 움직이는 완구도 사주셨단다. 여기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어린아이가 그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내 동생은 길눈이 나이에 비해 무척 밝은 편이었다. 아버지가 티켓팅을 하는 사이 동생은 육교를 건넜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길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 부분까지는 꼬마의 기억력으로 기억해 냈지만 전체 루트를 인지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네 살이었으므로. 동생은 길을 잃었고, 아버지는 동생을 잃었다. 엄마의 걸음걸음마다 보도블록이 젤리가 된 듯하셨단다. 다행히 서울역 경찰서에서 울면서 자장면을 먹고 있는 동생을 부모님은 되찾으실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지장을 찍는 모습을 동생은 울면서 보고 있었단다. 1980년대는 소아 납치가 유독 잦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정말 가슴 철렁한 기억이다. 집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이웃 아주머니와 이웃집 소꿉친구와 동생 소식을 기다리던 나는 동생을 되찾았다는 말에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도 웃음을 되찾으실 수 있었다. 주황색 택시를 타고 엄마와 함께 들어온 솟구친 헤어스타일의 하나뿐인 아우를 잃을 뻔했다가 찾았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길을 잃는 것은 아이만 잃는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 모르는 길을 간다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도 있다. 나름의 이정표를 기억해 낼 수도 있다. <도강록>에서 연암이 보았던 '길'을 조선시대 야담 <천예록(天倪錄)>에서 다시 찾아보려고 한다. 임방(任埅, 1640~1724)의 작품인 <천예록>의 천예(天倪)는 '하늘가'의 뉘앙스를 담는 것으로 장자 내편 <제물론>에 들어있는 구절('和之以天倪(화지이천예)')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굶주린 천재와

배부른 둔재?


중종 때의 일이다. 서울에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못생기고 우악스러운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하였다. 나이는 마흔쯤 되어 보였으나 아직까지 상투를 틀지 않았따. 자루를 둘러메고 저자에서 구걸을 하였다. 낮이면 여기저기를 해집고 다녀 도성 안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밤이면 남의 집 문 옆에서 잠을 청했다. 대부분 종각 근처 거리에서 지냈는데, 품팔이꾼이나 무뢰배들과 날마다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친숙한 사이가 되어 함께 어울렸다. 그는 자신의 성을 장씨라 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장도령’이라고 불렀다. (중략) 이때 마침 도사 전우치가 괴상한 도술을 부려 자못 세상을 우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도 큰길에서 장도령을 만날 때면 굴러내리듯 말에서 내려, 잰걸음으로 다가가 절을 올리고 감히 쳐다보질 못하였다. 그럴 때면 장도령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너는 요즘 재미가 쏠쏠하다며?” 라고 물으면, 전우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예, 예.” 하고 대답하면서 몹시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이렇게 이따금씩 전우치가 공손하게 굴었으나 장도령은 무시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지켜보는 자들이 괴이쩍어 전우치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우리나라에 도령으로 세 신선이 계신데 장도령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정염이며, 그 다음은 윤세평이지.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나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네. 그러니 어찌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선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전우치가 요술을 부리는 자이기에 이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었던 것이다.

(임방著·정환국譯, 『교감역주 천예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39~40쪽)


야담(野談)은 야사(野史)를 토대로 둔 서사갈래인데, 야담이라는 용어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서사 장르 용어이다. 대체로 사대부의 이야기문화와 서민들의 이야기문화가 서로 섞여 형성된 이야기들이 많다. <천예록>의 1화로 수록된 <지리산로미봉진(智異山路迷逢眞)>은 야담집에 따라 장생(蔣生), 장도령(蔣都令)등으로 조금씩 호칭을 달리하는 걸인 장 씨의 서사를 담고 있다. 거지 장도령은 그로테스크한 몰골로 서사 첫머리를 장식한다. 마흔이 되도록 미혼이었으며 하는 일은 '구걸'이었다. 한양 도성 안에서 주린 배를 잡고 여기저기 구걸을 했던 모양이다. 처사 전우치는 걸인 장도령의 진가를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장도령이 전우치를 부를 때면 전우치는 기름에 끓는 듯이, 굴러 떨어질 듯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장도령에게 어쩔 줄을 몰라했단다. 전우치에 의하면 장도령은 조선 땅에 있는 세 신선 중 한 분일뿐 아니라 제일가는 신선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트릭스터 전우치의 말이니 세상 사람 누구도 그 말을 믿어주는 이가 없었다.

역 인근에는 노숙인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때로는 전철 등의 객차 안에도 등장하기도 한다. 사정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거나 등지고 홀로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사회가 보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아니, 따갑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무관심하다. 서사 속 장도령의 정보는 그저 그가 '장도령으로 불린다'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정보가 빈약한 만큼 사람들의 관심 또한 드물다. 그나마 알아보는 이가 있는데 하필이면 요술 부리는 전우치다.

학부시절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폐지를 주우며 지내는 분이 계셨는데 세신을 하지 않는 탓에 몰골이 장도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분이 매장에 들어오면 다른 손님들이 무척 불쾌해했다. 약간의 돈이라도 있는 날이면 담배와 자그마한 음료수를 사곤 했다. 나는 비록 아르바이트생이지만 그 분과 이야기도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분은 내 사주를 봐주었다. 일정 부분은 맞는 것도 많아 나름 용한 역술인의 면모를 가진 분이 아닌가 했다. <지리산로미봉진>을 접할 때면 늘 나는 그분이 떠올리곤 한다. 폐지 수거 할아버지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는 아르바이트생뿐이다. 장도령이 조선 제일의 신선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전우치뿐이다.



양반을 안타깝게 여기는 양반의 기록,

〈지리산로미봉진〉


한편 도성 안에 음직의 벼슬아치가 한 사람 있었다. 그의 집이 길가에 있었기에 장도령이 길에서 구걸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곤 하였다. 하루는 이 벼슬아치가 그를 불러 사정을 묻자, 장도령의 대답은 대강 이러했다. 본래 호남의 양반 집안 출신이었으나 부모가 모두 전염병에 걸려 죽었고, 형제는 물론 아는 친척도 별로 없는 혈혈단신의 이 몸, 의지할 데라곤 없는지라 유리걸식하며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로 서울까지 흘러들어 왔단다. 한 가지도 절하는 일이 없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꼴이란다. 벼슬아치는 그가 사대부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안쓰럽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술과 먹을 것을 주고 쌀과 조 등속도 마련해 주었다. 이때부터 그의 집에 먹을 것이 생기면 꼭 사람을 시켜 장도령을 불러들여 이를 제공하는 등 한층 더 잘 돌봐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벼슬아치가 출타했다가 우연히 여러 사람들에게 들쳐져 동대문 쪽으로 나가는 시신 한 구와 마주치게 되었다. 말을 타고 있어서 미처 편면으로 가리지 않은 터, 별안간 본 모습은 장도령이 틀림없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 벼슬아치는 집에 돌아와서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임방著·정환국譯, 『교감역주 천예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40~41쪽.)


전우치만 알고 넘어갔다면 서사를 이루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여기 장도령을 알아보게 되는 인물이 하나 추가된다. 성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로 다만 음직으로 벼슬을 살고 있는 벼슬아치 사내다. 그는 도성 안에서 장도령이 구걸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그저 스쳐 지나갈만한 것이고, 더구나 눈길도 안 가는 것이 '정상'이라 할 것인데, 이 '한가한' 벼슬아치에게 장도령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다가오게 된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장도령을 '인터뷰'한 인물이기도 하다. 벼슬아치가 들어보니 장도령은 호남의 양반가 후손이라 한다. 역병으로 양친을 잃은 그는 서당 같은 제도 교육의 바깥에 놓여 있었다. 다만 생명만 간신히 이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벼슬아치는 장도령이 '양반 출신'이라는 말에 애틋한 마음이 들어 그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도와줄 무렵 장도령은 도리어 송장이 되어 흥인지문 바깥으로 '배출'된다. 그의 시신은 얼굴조차 제대로 가리지 않은 탓에 벼슬아치가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그리 유능하거나 권력을 지닌 이는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따듯했던 벼슬아치는 탄식에 탄식을 거듭한다.



길 잃은 재능의 이정표를

산 중에 만나다


그러고 나서 수십 년이 흘렀다. 벼슬아치는 볼 일이 생겨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지리산 아래를 지나다가 순간 길을 잃고 말았다. 산속을 헤매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러다가 꼴 베는 아이들이 다니는 듯한 샛길을 하나 찾았다. 분명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겠다 싶어 꼬불꼬불한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길이 깊구나 싶었다. 그러나 점점 산과 물은 맑고 깨끗하며 초목은 싱그럽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기이해지더니 수십 리를 들어가자 아연 황홀한 별천지가 나타났다. 그곳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정경이 아니었다. 멀리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청색 도포를 입고 청노새를 타고 일산을 펼쳐든 채 시종들을 거느리고 오는데 나는 듯이 빨랐다.

(임방著·정환국譯, 『교감역주 천예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41쪽.)


벼슬아치의 기억에서 장도령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아니 빠르게 잊혀 갔다. 수십 해가 지난 어느 날 장도령의 고향이기도 한 호남 지역으로 벼슬아치가 내려가게 된다. 이는 순전한 우연인 듯하다. 공무일지 사무일지 모르지만 그는 지리산 자락 아래를 지나던 중 그만 길을 잃는다. 길을 잃으면 왜 날은 그리도 빨리 저무는지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길을 찾던 중 작은 '샛길'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샛길로 새어나간 벼슬아치는 기이한 이계를 마주하게 된다. 더구나 푸른 세단을 탄 인물이 고급 양산을 펴고는 종들과 함께 이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장도령이 이 벼슬아치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는 4대 명산이 있고, 그곳에는 각각 선관이 주재한다네. 나는 바로 이 지리산을 주재하고 있지. 일전에 약간의 잘못을 저질러 잠시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내려와 있었네. 내려와 있는 동안 그대가 나를 정성으로 대접해 준 후의를 내 잊지 않고 있었다네. 그대가 나의 주검을 보고 측은해하며 애도하던 마음까지도 내 알고 있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유배의 기한이 찼기 때문에 시해하여 선계로 돌아온 것일세. 오늘 그대가 이 산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예전의 은혜를 갚고자 한번 초청하여 자리를 마련한 것일세. 그대도 나와의 묵은 인연이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임방著·정환국譯, 『교감역주 천예록』,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43쪽.)


그는 다름 아닌 장도령이었다. 고전서사답게 선계에서 잘못한 탓에 인간계에 귀양 와 걸인 생활을 했던 것이란다. 귀양 생활 중에 도움을 준 벼슬아치를 잊을 수 없어 그에게 후한 대접을 하는 장도령의 삽화가 서사 후반에 펼쳐진다. 장도령과 벼슬아치 사이에는 '신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다른 비범한 인물이 범속한 모습만도 못한 몰골로 구걸하며 떠돌아야 한다는 설정을 단순히 '걸인서사'로 읽어낼 수만은 없을 듯하다. 배고픈 천재들은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가! 배부른 둔재(?)들은 배고픈 천재들을 하대하며 그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간혹 배고픈 천재를 알아보는 귀인이 있다. 지리산 신선 장도령에게 귀인은 전우치가 아니라 벼슬아치였다. 전우치는 신의를 내세울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음직의 벼슬아치라 할지라도 그는 장도령과 신의를 지킬만한 인물이었다. 물심양면으로 장도령을 도왔기 때문이다. 전우치는 다만 장도령의 정보를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었다.

벼슬아치는 장도령이 신선이어서 도와준 것이 아니었다. 대가를 바라고 도운 것 역시 아니었다. 다만 자신과 같은 신분(양반)이라는 것에 마음이 쓰였을 뿐이다. 도성의 번화가에서 장도령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인적 드문 첩첩산중에서 장도령은 지리산 신선으로 화한다. 무수한 인파 속에서 도드라진 능력을 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서로 겨루느라 매일 피로하다. 대중교통의 자리마저도 경쟁적으로 앉아야 하고, 식사도 경쟁적으로 먹어야 한다.

경쟁자들 속에서 우리는 상대의 정보를 알고 호기심으로 소비할 뿐 진심 어린 관계를 구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의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도리어 경쟁자들 사이에서 나의 정보는 약점이 되기도 하고, 강점이 되더라도 시샘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첩첩산중의 산에 가서 재능과 재주를 펼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범한 전우치 보다는 범박한 음직의 벼슬아치가 되어 우리 주변의 장도령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 한양도성이라는 도시 안에서 벼슬아치와 장도령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내세울만한 능력이나 재주는 무엇도 보인적이 없다. 다만 처지가 곤궁한가 조금 살만한 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나의 재능과 재주가 길을 잃었을 때 무엇이 이정표가 되어줄까? 깊어지는 고민과 불안, 두려움이 첩첩산중이 될 즈음 내가 알아본 이가 다시 나를 알아봐 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타인을 알아봐야, 타인도 나를 알아봐 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주고 도와준다면 사회는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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