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열매 009. 사랑이라는 이름의 약탈,

<서동요>

by 용신선


미디어에 차고 넘치는 남녀 간 사랑


오늘도 스마트폰을 켜고, 텔레비전을 켜면, 라디오를 켜면, 들려오는 것은 대체로 '사랑' 이야기이다. 흔하디 흔한 이 소재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흐르고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 일상 속에서 드라마틱한 사랑을 경험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치솟은 물가와 어려운 취업난은 청년들에게 연인과의 속삭임을 포기하게 만든다. 리얼리티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란 연애를 가십거리로 만들고 화려 찬란한 연인들의 모습은 남녀관계를 물물교환으로, 등가교환으로 바꾸어 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연애'란 일제강점기 시절 근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전근대 시절에는, 선사시대에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공감할 만한 '연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랑을 찾는 약탈자의 노래,

〈서동요〉



서동요(薯童謠)

善化公主主隱

他 密只 嫁良 置古

薯童房乙

夜矣 卯乙 抱遣 去如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우리가 어릴 적 즐겨 읽거나 듣던 동화의 엔딩은 언제나 '결혼'이었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고려의 고승 일연(一然, 1206~1289)이 찬한 <삼국유사>에 수록된 <무왕> 조의 동요 <서동요>. 이 노래는 로맨틱함을 넘어서 에로티시즘까지 느끼게 한다. 그런 한편 어딘가 요즘 감각으로는 상당히 불편한 감정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는 <서동요>의 향가 해석을 운운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구라신페이나 양주동 같은 선학들의 해석 관점에 대해 논하거나 향가 연구자들의 시선을 빌려오고자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백제의 역사를 살핀다거나 로맨스나 에로티즘을 보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대체 <서동요>를 통해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약탈'의 면모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보쌈과 혼례의 사이


무왕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의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해 그를 낳았다. 어려서 이름은 서동(薯童)인데, 재주와 도량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薯〕를 캐어 팔아다 생활했으므로, 이곳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어느 날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善花 혹은 善化)가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동네 여러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었더니, 아이들이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래서 노래를 짓고는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간다


노래는 서울에 쫙 퍼지고 대궐까지 들리게 되었다. 모든 신하들이 강력히 요청해, 공주를 먼 곳으로 유배 보내게 되었다. 결국 떠나게 되자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여비로 주었다. 공주가 유배지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서동이 길 위로 나타나 절하고는 모시러 가려 했다. 고우는 그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몰랐지만, 우연이라 믿고 기뻐하였다. 그래서 서동이 공주를 따라가게 되고 몰래 정도 통하였다. 그런 후에야 공주는 서동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노래대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체험에 흠칫했다. 그들은 함께 백제로 갔다. 어머니가 준 금을 꺼내어 살아갈 길을 의논하려 하자, 서동은 크게 웃고 말았다. “이게 무슨 물건이오?” “이건 금인데, 백년은 부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것이 흙처럼 쌓여 있소.” 공주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랍니다. 당신이 지금 금이 있는 곳을 아신다면, 그 보물을 우리 부모님이 계신 궁궐로 실어보내는 것이 어떨는지요?” 서동은 그러자 했다. 그래서 그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용화산의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나를 방법을 물었다. “내가 신통력으로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에 신라 궁궐로 실어보냈다. 진평왕은 신통한 조화를 기이하게 여기고 높이 받들어 주면서, 자주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 말미암아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거동하는 길에 용화산 밑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다. 마침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수레를 멈추고 절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했다. “이곳에 큰 가람을 세우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에 대해 묻자 신통력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륵상 셋과 회전, 탑, 낭무를 각기 세 군데에 세운 다음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진평왕이 온갖 기술자들을 보내 도왔는데, 지금도 그 절이 남아 있다.

일연著 · 고운기譯, 『삼국유사』, 홍익출판사, 2001, 136~139쪽.


위 인용문은 <무왕>의 국역 전문이다. 우리에게는 '알(卯)'에 대한 난제를 고민할 틈이 없다. 마퉁이와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구전서사 속에서는 '쫓겨난 막내딸' 혹은 '내 복에 살지'의 구조를 갖는다던가, '여인발복설화'라는 유형에 속한다는 것도 관심 대상이 아니다. 미륵사의 사찰연기설화라는 것도 논외로 둔다. 보쌈혼이라고 했던 약탈혼의 흔적이 <서동요>라는 달콤한 노래 이면에 보인다는 점에 주목을 하려는 것이다. <무왕>의 서사에는 '우부현녀'의 구조가 보인다. 황금의 가치를 알아볼 줄 모르는 마퉁이와 달리 선화공주는 황금의 가치를 알고 있는 여성이다. 이로 인해 마퉁이는 처가에 인정받고 무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전반적인 서사의 분위기는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동화 문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혼례 지참금과 다르지 않은 황금더미와 함께 교환되는 선화공주. 지참금을 통해 승인받는 마퉁이의 약탈혼. 이 부분을 들여다보자.



끝없이

마음을 훔치고,

몸을 훔치는 남녀의 약탈놀이


남자나 여자나 일정 연령에 이르면 자신도 알게 모르게 배우자탐색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겪는 '짝꿍 정하기'부터 우리는 배우자 탐색연습을 시도한 것이다. 어쩌면 유치원 시절부터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자탐색을 한 다음에는 부모와 일정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선화공주가 진평왕과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서동의 엄마 역시 연못가에서 용과 사통하여 서동을 갖게 된다. 이물과 교통 하였으니 이류교혼이 성립된 것이다. 이류교혼의 결과물은 마퉁이 서동방이다. 반인반신에 가까운 인물인 것이다. 그는 신분을 넘는 짝짓기를 시도한다. '얼레리 꼴레리' 노래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서동요>이다. 어쩌면 이것은 로맨틱하게 만든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른다. 무왕 조의 서사 안에서 선화공주의 의지는 '내 복에 살지' 민담만큼 강력하게 노출되지 않는다. 마퉁이의 마초적인 의지만 강력하게 드러날 뿐이다. 서동은 선화공주를 '훔치고' 싶었고, '훔치는데' 성공한다. 그는 사랑의 약탈자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약탈 대상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을 잃고, 마음을 잃고, 시간을 잃는 약탈대상을 끊임없이 찾는다.

경우에 따라 연애는 데이트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약탈의 방식이 오직 금전적 교환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으로 약탈혼의 흔적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까닭이다. 남녀의 약탈놀이는 대체 어디에 원인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연애를 사랑이라 부르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뒤따른다. 누군가의 몸을 강제로 훔친다는 것은 오늘날 사회에서 용인되기 힘든 범죄에 지나지 않다. 그러니 몸을 훔치기보다는 마음을 훔쳐야겠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훔치기 어려운 것이 상대의 마음이다. 지금도 우리는 몸을 훔치고 마음을 훔친다. 약탈놀이는 끝을 알 수 없다. 현실에서는 혼인, 혼례로 엔딩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퉁이 서동이 작사/작곡했다는 <서동요>는 연애라는 이름의 폭력이 주는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완충장치의 한 종류가 아닐까? 어떻게 사랑이, 연애가 폭력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로맨틱한 사랑 연애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다분히 완화된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조르주 바타이유는 충치를 유발하는 사탕처럼 에로티즘 속에 내재한 죽음충동을 읽어낸 바 있다. J.F맥리넌이 발견한 혼인의 근원형태로의 약탈혼도 그러하다. 그것이 폭력인지 감지되기 어려울 만큼 교묘하게 숨겨진 폭력이 우리의 사랑 약탈놀이 안에 숨은 그림처럼 남아있다. 오늘도 무수한 커플들은 얼레리 꼴레리 서동요를 부르고 만나고 헤어진다. 부디 그 사랑이 무사하고 무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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