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열매 010. 삶은 주사위 놀이라네,

<만복사저포기>

by 용신선



삶이라는 보드게임

‘나’라는 말판



"주사위나 윷으로 수대로 1~100번까지 먼저 가면 승리합니다.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아 후퇴하며 착한 일을 하면 고속도로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지요. 여러분은 언제나 착한 일만 하세요."


떼구루루 주사위를 굴리며 놀던 뱀주사위놀이판 한쪽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즐겨하던 놀이가 이런 종이 재질 보드게임이었다. <마계촌>, <둘리실종사건>, <고지라 대소동> 등 일본의 보드게임을 한국어판으로 내어놓은 것들이었다. 알록달록한 표지 그림들이 눈을 사로잡곤 했는데, 종류에 따라 종이 입체를 만들어 놀 수 있는 게임도 있었다.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사다리(STEP BY STEP)라는 업체에서 '죨리게임(Jolly Game)'이라는 시리즈로 나오던 것들로 대략 1,500원~3천 원 선으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 동네방네 '보드게임방'이 생겨나면서 '젠가', '할리갈리'등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이로 구성된 낡은 보드게임들은 기억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런 옛 보드게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고전서사가 있었으니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가 그것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은 모두 다섯 가지이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 중고등학교 시절 암기처럼 외우던 다섯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 것은 대학원에 진학했을 무렵이었다. 양생과 귀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만복사저포기>를 접하면서 문득 '뱀주사위놀이'가 떠올랐다.


남원 땅에 양 씨 서생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혼인을 못 한 채 만복사 동쪽에 혼자 살았다. 방 밖에 배나무 한 그루가 있어 봄을 맞아 한참 만개했는데, 마치 백옥 나무에 은덩어리가 쌓여 있는 듯했다. 양생은 달밤이면 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맑고 시원한 목소리로 시를 읇조렸다.


한 그루 배꽃나무 적막함 짝 삼으니

가엾어라 헛되이 도 달밤을 저버리네

쓸쓸한 창문 아래 청년 홀로 누웠거니

옥인은 어드메서 봉황 피리 부시는가

비취새는 어인 까닭 혼자서 날아가나

원앙도 짝을 잃고 갠 장서 자맥질하네

뉘 집선 기약 있어 바둑돌을 두는가

하릴없이 불꽃 보며 앞날을 점치누나

시를 다 읊자 문득 공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짝을 얻고자 한다면 뭐가 걱정이겠이요!” 양생은 기분이 좋아졌다.

(김시습著 · 이승수外 共譯, 『금오신화』,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5~6쪽.)


구전설화 <우렁 각시>를 안다면 <만복사저포기>의 서사 초입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렁 총각이 "나는 누구랑 먹고살지?"라고 물으면 우렁이가 "나랑 먹고살지" 하고 답하는 문답구조가 똑 닮아있기 때문이다. 불안을 호흡하는 양생이 좋은 짝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을 품는 때에 부른 시에 하늘이 답시를 준다. "그대가 좋은 짝을 얻으려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이 한 마디에 양생은 일시적으로나마 마음을 놓는 것이다. 양생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다. 다만 만복사 동쪽에 홀로 기거할 뿐이다. 방 바깥의 배나무도 한 그루고 퇴락한 절 만복사의 양생 역시 세상 한 그루의 배나무일 뿐이다.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양생의 노래, 하늘은 양생에게 힌트를 던진다. 만복사라는 게임판 위에서 양생을 위한 뱀주사위 놀이가 시작되는 것이 이즈음이다. 양생이라는 말판은 어느새 한 칸 두 칸 운명의 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부처와의 저포놀이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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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3월 24일이었는데, 이 고을에는 만복사에 등을 달고 복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어, 젊은 나녀들이 모여들어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날이 저물자 염불 소리도 그치고 사람도 드물어졌다. 양생은 소매에서 윷을 꺼내 불전에 던지며 말했다. “제가 오늘 부처님과 윷놀이를 하려 합니다. 제가 지면 법연을 베풀어 공양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지시면 미녀를 얻으려는 제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축원을 마치고 윷을 던졌는데 과연 양생이 이겼다. 그는 즉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뢰었다. “업은 진작 정해진 것이니 속이시면 안 됩니다.” 양생은 불상 밑 탁자 아래 숨어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다렸다. 이윽고 한 미인이 나타났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에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아 하나로 묶었으며 차임은 수수했지만, 그 몸가짐이나 낯빛은 먼발치에서 보아도 선녀나 천비처럼 기품이 넘쳤다.

(김시습著 · 이승수外 共譯, 『금오신화』,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8, 7쪽.)


현대 물리학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부정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물리학자는 주사위놀이를 거부했는지 모르지만, 만복사의 고독남 양생은 부처와 저포놀이 한 판을 시작한다. 신과의 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단박에 양생이 부처를 이겼다. 신은 인간의 소원을 거부하지 않고 바로 수리한다. 홀연히 나타난 귀녀는 글을 읽기 시작하는데 성미 급한 양생이 그만 뛰쳐나오게 된다. 마치 <우렁 각시>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우렁 각시를 보고 성미 급한 우렁 총각이 훔쳐보다 뛰어들어간 것처럼. 어쩌면 양생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신은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양생과 귀녀의 주사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숫자는?



시간이 지나 달은 서산에 걸려 있고 시골 마을에서는 닭들이 울어 댔다. 절의 종소리와 함께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 왔다. 여인이 말했다. “얘야, 이제 자리 걷어 돌아가렴!” 시녀의 손길이 분주해지더니 금방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말했다. “인연이 정해졌으니 손을 주세요!”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골목은 지나가는데 울안에서 개들이 짖어 댔다. 길 가는 사람들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양생에게만 인사했다. “이렇게 일찍 어딜 가우?” 양생이 대답했다. “술에 취해 만복사에서 한숨 자다가 친구 사는 마을에 가요.” 이틀날(25일) 아침이 되자 여인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있고 길이라고는 없는 풀숲으로 양생을 이끌었다.

(김시습著 · 이승수外 共譯, 『금오신화』,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15쪽.)


닭이 운다. 날이 밝아온다는 것이다. 동이 튼다는 것은 귀와 신의 시간이 저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귀녀는 양생을 데리고 자신의 처소로 간다. "인연이 정해졌으니 손을 주세요!" 주사위의 숫자가 나온 것이다. 개들이 짖는다. 개들은 귀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다. 행인들의 눈에 귀녀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양생만이 귀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길 없는 풀숲. 생의 지속이 멈춘 그곳은 '무덤'이다. 양생은 귀녀의 무덤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뒤에도 양생은 여인을 그리는 추모의 정이 지극했다. 밭과 집을 팔아 여러 날을 잇달아 재를 올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여인의 노래가 들려왔다.

당신의 발원 덕분에

타국에서 사내로 태어났어요

저승이 떨어져 있지만

마음 깊이 감사드려요

당신 이제 다시 정업을 닦아

우리 함께 윤회에서 벗어나요

양생은 그 뒤로 다시 결혼하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어떻게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김시습著 · 이승수外 共譯, 『금오신화』,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41~42쪽.)


여인은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은 양생의 편이 아니었던가! 양생은 다시 고독한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끝을 알지 못하는 부지소종 화소의 주연이 되어 홀연히 사라진다. 귀녀의 처소에서 만난 여인들 역시 모두 생의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양생은 생의 너머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메신저'가 될 뿐이다. 신이 양생에게 준 역할은 '메신저'이다. 양생과 귀녀의 말은 무덤에서 멈추고 만다. 주사위의 숫자가 거기까지인 탓이다.



지금도

데구루루 구르는 우리의 명운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도 모르게 나의 운과 명을 관장하는 주사위는 심장의 박동처럼 멈추지 않고 구르는 중이다. 남원에 자리한 만복사지에 가면 양생과 귀녀들이 마주했던 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놀다가 정리하지 않은 보드게임판처럼 여기저기에 사찰의 흔적들이 부러진 연필처럼 놓여 있다. 삶이라는 보드게임이 여러분을 지치게 한다면 남원의 만복사지를 추천한다. 누군가 놀고 정리하지 않은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만복사의 흔적 사이에 양생과 귀녀의 러브스토리가 깃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빈 공간에서, 어질러진 공간 속에서 각자의 명운을 가늠해 보는 것도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명운을 누가 아는가? 용한 역술인이 아는가? 종교인이 아는가? 현자가 아는가? 그 누구도 우리의 명운을 알지 못한다. 다만 신의 주사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데구루루 구르고 '나'라는 말판은 계속 이동 중이라는 것뿐이다. 주사위 숫자가 무엇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우리가 직접 주사위를 굴릴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인생은 99프로의 운과 1프로의 노력이라고 했던 것처럼 비록 1프로라 할지라도, 1프로의 영감 없이는 99프로의 노력이 허사라는 에디슨의 명구처럼. 주사위를 한 번 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명운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조심하시라! 지금 당신과 나의 말판이 이동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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