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란

유명세가 만드는 가치

by Utopian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리고 의미도 깊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비례와 균형의 기준에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좋은 작품이라고 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많은 작품들이 모두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답지 않은 어떤 것이 더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햇빛이 땀구멍을 파고들어 그 안에 수분마저 말라버리게 할 것 같은 오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것은 낭만을 느끼기엔 벅찬 일이다.

그래도 돌담길을 따라 가로수가 만드는 그늘은 전시장을 찾아가는 길을 가볍게 만든다.

여전히 서있는 경찰 버스와 순찰을 도는 순경들.

이 더운 날 그래도 근무를 위해서는 휴식을 위한 공간은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버스가 내뿜는 온기와 매연은 아무리 열린 공간이라도 저것이 유일한 방법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 제안해 곧 양산이 될 차량이 있다면 이런 불편함은 없을 것을. 보통 물류나 승객운송을 말하지만 공공기관의 차량부터 바꾸는 것이 비즈니스의 옳은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잠깐 동안 생각이 더운 날의 공기를 따라 퍼져 버렸다.

돌담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러시아 공관을 지나 두 손 갤러리로 들어간다.

구세군교회 옆에 있는 건물은 뭔가 개화기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물 같은 느낌이다.

”뭔가~“ 싶은 입구의 느낌이다. 약간 불쾌하기도 한 지난날의 역사에 근거한 느낌이지만 다시 보면 빈티지한 기분도 든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는 우리나라의 가치로 잘 이겨나가면 되는 것이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바로 든 생각은 “오길 잘했다” 물론 이게 먼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건축분야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 많겠지만 그래도 분명 들어서면서 “이게 먼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라 생각된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간의 습작들을 다 전시해 놓았단 것인가.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물론 그의 생각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했을까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상상을 이어간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써먹을 것이다. 어쩌면 별거 아닌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 별거 아닌 3D프린트의 잔해 일 수 도 있지만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분 정말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분이다”

어쩌면 INFP일까? 싶기도 하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런.

결국 건축가라는 작가의 본업은 이런 유토피아를 만드는데 가장 유리한 직업일 수 있다.

물론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모빌리티를 활용한 유토피아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지금 이 글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종특이 아닌가 한다.

건축가의 미래환경이나 콘셉트에 연관된 조형의 제안을 넘어 생각을 그림에 담았다.

회화적인 스킬도 아주 높은 수준이다.

어쩌면 건축가와 미술가의 경계에 있는 분이 아닐까?

전시는 하나하나 흘려 볼 것이 없다.

많은 생각과 감각적인 표현이 세련되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작품을 전시해 놓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전시다.


연이어 별관에서 전시된 작품들.

메인 전시관에 있었던 습작들이 어느 정도의 콘셉트로 정리되어 건축 제안이 되어있는 것들의 전시다.

”이런 제안을 하기 위해 그런 사전 연구를 했었구나 “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런데

결과물 자체는 “어쩌자는 것인가?”를 맨 처음 떠오른 게 한다.

한편 황당하기도 하다. 이 황당함은 물론 학생들과 함께 한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작가도 밝히고 있다.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가 지향하는 황당함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차원에서의 황당함에 응원의 박수를 친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황당함이 우리나라의 건축계에도 있다니.

황당했다가는 질책이나 혹은 책임소재를 묻게 되는 상황에도 이르는 기업의 디자이너로 일해온 나로서는 이런 황당함은 나이브한 아마추어의 안타까움 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선행업무를 해서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을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낸 상상력은 정말 환호를 보낼 일이다.

좋은 전시였다


좋은 전시라면 좋은 작품이 있었다는 것인가?

좋은 전시는 개인적인 가치의 여부에 있겠지만 많은 경우 지금의 대부분의 경우는 “유명세가 작품의 좋고 나쁨 혹은 의미 있음 없음을 결정짓는 것 같다. 가장 쉬운 예로 ”모나리자“ 지금이나 그때에도 그 수준의 묘사를 해내는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 사람 일뿐인가? 너무나 위대한 작품을 예로 들어 비약이 안드로 메다였나 그렇다면 예를 바꿔보자. 잭슨 폴록의 작품… 이건 태양계 끝까지는 오는 듯하다. 분명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가와 화가 본인의 작품에 대한 아이덴티티는 분명히 있다. 나 또한 나만의 생각과 작가에 대한 나의 무지와 함께 극단적으로 말하면 200호 이상의 큰 캔버스에 누군가 물감을 뿌려 완성한 뒤 그의 자택 혹은 작업실에 감춰둔 뒤 몇 년이 지나 저명한 큐레이터나 비평가가 먼지 쌓인 캔버스를 발견해 (물론 폴록의 사인은 위조해 둔 것일 것) ”이럴 수가 “ “Barn Fiding!”을 외치며 숨겨진 작품이다라고 말하며 먼저 루브르에 전시했다가 몇 년이 지나 그 작품을 두 손 갤러리에서 특별전으로 걸어 두었다면 그 다음날 두 손 갤러리는 어떻게 될까?

햇빛이 땀구멍을 파고드는 날 늘어선 사람들의 줄은 경찰버스가 매연을 내뿜고 순경이 순찰을 도는 곳까지 늘어서 있을 것이며 그렇게 들어간 갤러리에서 사람들은 웅성대며 ”저게 그거야? “ 혹은 “역시!”를 연이어 발사하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전시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관람하는데 사람으로 인해 쾌적함을 잃는 일 없는 오늘의 전시와는 비교가 될 것이다.

과연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인스타의 누군가 유튜브의 누군가 혹은 이미 철 지난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어떤 것이라 해도 분명히 유명세는 가치를 가진다.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하며 혹은 틱톡커라는 말을 하며 그들이 내뱉는 것을 인기의 가치로 포장해 버린다.


작품의 가치는 작품에 있지 않고 작품은 평가받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의 서사가 그 작품의 가치에 연결된다.

그 작품의 묘사의 수준과 디테일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나 그 제품의 출신에 대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이다.

어차피 그림의 디테일과 섬세함의 수준은 주관적인 지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엄청난 디테일의 상아 구슬 속에 상아구슬 속에 상아구슬 속에 부처님의 손바닥의 글씨는 수공이 아니라 3d프린트의 결과물이었다면 한 번 보고 지나칠 것이 아닌가.

내 생각에는 결국.


좋은 작품은 누가 한 건지도 모르지만 날 멈춰 서서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 라따뚜이‘의 까탈스럽고 음흉하기까지 한 비평가를 감동시킨 것은 천재적인 생쥐 셰프의 기술이라기보다 비평가 자신의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라따뚜이의 맛을 소환하는 기억이었다. 그의 삶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서사가 그 음식에 가치를 만든 것이다.

어떤 작품이든 객관적인 평가의 순위매김보다는 나의 시간을 잡아 상상력을 펼치는 서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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