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대답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어떤 질문에 대해 생각과 가치관이 있는 대답이 들린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나오는 다져진 대답이 들려온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질문을 하면 고민해서 대답을 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대답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된다. 물론 어려운 내용을 이야기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설명을 해주면 어떤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대화가 오간다. 그렇게나 찾고 싶었던 당연한 보통의 날들이다.
그냥 이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란 것은 누군가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글과 같은 곳에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세우고 서로 존중의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고는 있고 오직 원하는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 아닌가.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그렇게 위험을 줄여야 할 것 아닌가?.
불안한 삶을 스릴 있는 삶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한 국가적인 안전조치와 원하는 삶을 위한 개인의 노력들 그리고 이것이 꽃 피울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반들이 우리의 삶의 보통이 아닌가. 이 보통의 삶이 왜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가. 기득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에 취하는 것이 그들의 본성인가? 타인의 불안을 자신들의 쾌락으로 삼는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위험에서 피하기 위해. 그러면 얼마만큼의 안정감을 주어야 이 불안이 사라질까?
그러니 굳이 서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신경전과 사회적인 위험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어느 누군가 먼저 자기만의 이익을 얻으려 할 때 그만큼의 반작용은 다른 이들에게 퍼진다. 그러다 보면 이익을 찾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러니 모두가 이익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이해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유토피아적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래인 유토피아가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좋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렇게 그곳으로 가는 것이라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적으로 몰아서 파괴하려고 논리를 만드는 그들의 악의적인 행태.
마치 강아지가 무서워서 먼저 매섭게 짓는 것처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그것이 뺏길 것 같은 두려움인지 그들 자신이 타락한 것을 들키기 싫어서인지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오염시키려는 것인지, 선한 사람도 악마화시킨다. ’ 너도 어차피 더러워지지 않을 것이면 악마가 되어라 ‘는 식으로.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었나.
물론 여전히 아직도 그런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다만 뭔가 터널을 지나 빛이 보인다.
보통으로 돌아가는 세상.
자신의 과오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악행을 기득권이라 착각하던 세상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오는 스스로의 치유를 인정하는 세상.
보통의 세상.
당연한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