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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opian Dec 14. 2020

미래의 아름다움

운송기기와 자동차의 관계 #1


Most people make the mistake of thinking design is what it looks like. People think it’s this veneer — that the designers are handed this box and told, ‘Make it look good!’ That’s not what we think design is.
 
 Design is not just what it looks like and feels like. Design is how it works.” — Steve Jobs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시각적인 만족에서 그 이상의 공감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디자인의 가치는 보기 좋거나 뭔가 달라 보이는 것에 대한 기준으로 써진다. 

그래서 그 구분을 지을 수 있는 미래의 "아름다움", 최소한 제품의 아름다움은 형상의 범위를 넘어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삶과 같이 작동하는가에 있는 듯하다. 

감히 다른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할 수 있지만 나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오늘은 쓰기로 한다.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분명한 변혁을 남긴 인물 중 한 사람인 크리스 뱅글은 그의 TED 강의에서 자동차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한다. 정말 그런 것이 자동차는 분명 단어의 표현은 같은 범주라 할 수 있겠으나 영어 표기로 "A CAR"와 "TRANSPORTATION"은 분명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우리에겐 자동차와 운송기기 정도일 것이나 자동차는 이미 자동차로 이해되고 있어 이 개념을 설명해서 공감을 받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운송기기는 내가 원하는 A의 장소에서 B의 장소로 옮겨주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빠르고 안전하며 편안하게 이뤄주는 것이며 그 필요성과 적합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만족도의 범위도 다르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하듯이 "에스컬레이터"와 "택시" 혹은 "기차" 이 모두가 운송기기에 속한다. 또한 내가 수레를 타고 있다면 그 또한 나에게는 운송기기에 속하는 개념이다. 


 "자동차"를 이야기하자면 이는 운송기기가 가졌던 그 모든 이로움을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 강력한 요소의 만족을 통해 소유하는 사람에게 "자동차"로 인정받는다. 

여기에서 "소유"와 "공유"의 개념을 대입할 수 있다. 

즉 자동차는 공유차량의 경우 성립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운송기기는 소유하는 것의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의미를 정의하려면 모호한 경계에 있는 차량이 존재하게 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이 개입된다. 그래서 자동차와 운송기기의 정의는 개인, 브랜드마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활용할 수 있으며 배경의 사진에서와 같이 포르셰는 그 분야를 운송기가 아닌 자동차의 범위로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부가티와 같이 이를 뛰어넘는 바퀴 달린 요트와 같은 차량도 존재한다.


 미래의 자동차 시장은 이 두 가지의 개념의 기계로 나누어지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에 따른 사용자의 범위도 정립이 되고 그에 따른 가치의 형성이 가능해진다. 운송기기는 더욱더 공공의 이익과 사람을 위한 기술의 정수를 찾아 효율적인 삶을 보조해주는 수단으로 발전해 갈 것이며 자동차는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의 취향과 미학적인 정교함을 살려 하나의 가치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디자이너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전문성을 살려갈 것이며 브랜드의 가치도 같이 할 것이다.

  

  효율을 위한 합리성을 머리로 계산해 선택하게 되는 운송기기와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그 모습에 마음으로 선택하는 자동차로 나누어진다. 이는 다른 제품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고, 또 될 수 있으며 이에 적합한 미적인 가치가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마치 지난시절 카로체리아에서 만들어지던 아름다운 차량들이 그 시기에 사치품으로 소유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한 걸작인 것처럼 "자동차"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작품이 되어 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부유한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 경계에 있는 가치를 극대화한 적정 제품이 새로운 분야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는 가성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최근에는 거실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택이 늘어나고 포르셰는 아예 이를 위한 아파트를 짓고 있다. 이미 마이애미에 있는 주택의 경우 17년 완공도 전에 이미 완판 되는 일이 생겼는데 최근 짓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그것 또한 비슷한 양상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갈까? 분명 각종 법규를 만족함에도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거실에 둘 만큼이라면 이는 이미 운송기기가 아닌 오브제이다. 

스티브 맥퀸이 영화 '르망'에서 자신이 갈망하는 레이싱을 비유하듯 "자동차"의 아름다움이 수준에 이르게 되면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소유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은 그저 그 순간을 위한 기다림처럼 느껴진다. 마치 꿈에 그리던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같이 미래의 아름다움은 마음으로 그리는 기다림과 같다. 

 

#미래 #아름다움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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