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e or Metaverse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시뮬레이션이 아닐 가능성은 10억 분의 1이다!”
라는 테슬러의 창업자, 일런머스크의 말이 SNS를 달구며, 1999년 처음 소개되었던 영화 매트릭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1차 산업혁명이래, 기계화/자동화에 이은 정보통신 기반의 디지털 혁명은 코로나 19라는 태풍을 만나며, 언택트 온라인 세상으로 급류의 물살을 돌리더니, 로봇, Big Data, AI에 이어 근자에는 ‘Metaverse’라는 용어가 세상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어떤 가상의 환경과 조건을 특정(f)하고, 그런 가정하에서 임의적 행위(독립변수, x)를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종속변수 y)가 도출되는 지를 과학적 인과법칙에 근거해 추정해 보는 ‘가상 또는 모의 공간’ 또는 그로 인해 도출된 ‘가상 현상’ 정도로 정의해 볼 수 있겠죠?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진짜 fact, 절대적 진실일까요?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가상현실(세상)이 차라리 실재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우선,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인간이, 신이라 부르는 절대자와 같은 완전한 존재라면 대상을 Fact,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인식할 수도 있겠지요.
인간은 눈, 귀, 코, 혀, 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5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전5식/前5識), 이렇게 인식된 data가 우리의 뇌로 전달되어 최종 해석, 판단(의/意)되는 six sense(6 식/識)를 통해 비로소 인식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1차적인 인간의 인식의 한계가 발생하게 됩니다.
우선, 우리가 본 것은 빛의 전달을 통해 눈으로 인식한 것인데, 우리가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은 전체 광선의 5% 수준이고, 소리 또한 절대 음파 중 1%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몸으로 느낀 대상의 정확도는 오히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성한 세상보다 덜 정확한 거 아닌가요?
이런 원초적 한계를 가진 6식을 통해 형성된 인식마저 말나식(末那識; 제7 식/識)으로 불리는 자기중심적 주관, 편견으로 왜곡되어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대로만 보게 되지요.
그나마도, 7식을 통해 형성된 이런 불완전하고 왜곡된 인식/판단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600만 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 DNA,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축적 저장된 DATA가 습관이라는 무의식적 행위로 연결되다 보니. 원초적인 인식의 한계에 나쁜 악습과 맹종까지 더해져,
불과 500여 년 전까지도 지구는 평평하고,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어 왔었지요.
이런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이용해 우리 뇌를 속여 만들어낸 것이 AR, VR 등으로 구현한 시뮬레이션 세상이겠지요.
오히려 인간의 5감보다는 좀 더 넓고 정확한 인식을 가능케 해 주고, 2차, 3차 왜곡과정도 거치지 않았으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Universe) 보다 더 허구, 가상이라 할 수도 없겠지요.
이런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Metaverse 세상은, 여러 계층 player들의 다발적 참여와 상호작용(相依相關)을 통해 가변적인 고차원 함수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관계로 좀 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가까운 형태의 복잡한 인연, 연기가 꼬리를 무는 불확정 모델이라 할 수 있겠죠. 시간과 공간, 생명과 기회의 유한성을 가진 현실세계(Universe)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한편으론 상거래와 같은 현실 활동을 종전의 평면적 온라인 거래에서 보다 더 확장 진화된 형태로 이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Metaverse를 가상과 현실의 경계 또는 둘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나 봅니다.
Meta+Verse는 수많은 시뮬레이션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뒤얽힌 삼차원의 입체공간,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포괄한 4차원, 5차원 등의 다차원 공간이 동시에도 병행하여 포용할 수 있는 Multi+Verse(다중세상)로도 구성되기도 하지요. 마치, 선으로 이루어진 일차원이나 평면으로 이루어진 이차원에서는 설명될 수 없었던 방향이 3차원 입체공간이나, 4차원 시공간에서는 가능하듯...
고정관념에서는 불가능했던 천동설을 벗어나니, 지동설도 가능하고, 태양계도, 그 너머 은하계도 설명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차원이 다르다고 하나 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일지니, 인식의 한계를 가진 인간의 불완정성으로 인해, ‘나(ego)’라는 인식의 주체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실재’, ‘참모습’ ‘본래자리’ ‘본성’이라 불리는 완전한 fact(法)와는 다르고, 이 점에서는 인간의 뇌가 만든 가상의 세상이니, simulation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렵겠죠.
Metaverse, 위기인가? 기회인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영화 matrix에서처럼, ‘파란 약’을 먹고 주어진 현실에 안주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인가요?
아니면, ‘빨간 약’을 먹고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찾아 나서야 하나요?
결론부터 먼저 던지자면,
‘활용’이냐? ‘종속’이냐?
알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결국, 이 또한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요?
디지털 기술로 , 온라인을 통해 구현된 Matrix나 Ready Player One과 같은 시뮬레이션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1) 마치 세속과 단절하고, 출가하듯이, 온라인세상과의 모든 접속을 끊거나,
(2) 우주의 빅뱅이 시작되었다는 138억 년 전 최초의 그날, 최초의 원인행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모든 행위를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최상의 선택적 행위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둘 다 불가능하겠죠?
그렇다면 남은 차선책은?
어쩌면 나라는 허구로 인해 시작된 분별로 집착하고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나의 믿음이 다 옳다는 주관과 편견을 버리고,
어쩌면 ‘나’라고 불리는 껍데기 자체가 허구이고, 고정된 실체가 없이 변하는 無常이므로 분별심에서 비롯된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멈추고 돌아본다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모를 땐,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악연과 악업을 이어가기보단, 그저 멈추고 바라볼 수밖에요 (관조/觀照)...
그러다 보면 방향에 대한 눈(혜안/慧眼)이 뜨일 태고, 이때 내 의지에 따른 행위로 나아가며, 오랜 업식으로 저장된 나쁜 습관들을 하나씩 바꿔 나간다면, 과거 수백만 년 인류역사를 통해 멸종되지 않고 이뤄온 인류의 진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겠죠. (사행습인운/思行習人運)
결국, 시뮬레이션이나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여유를 주고, 이를 통해 보다 인간다운 발전을 이끌어온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도구일 뿐이니,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지요.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얼마나 슬기롭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 인식의 한계를 메꿔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는 예측도구로 말입니다.
마약이나 게임처럼 스스로 선택에서 시작되었음에도 순간적인 쾌락이나, 이익에 눈이 멀어 진실을 외면하고,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함으로 고통받는 어리석음을 알아차린다면, 우리가 만든 도구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의 자유의지로, 긍정적인 활용으로 돌려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수처작주 입체개진(隨處作住 立處皆眞)
지혜의 눈을 뜨고, 선조들의 경험치인 지식과 과거의 결실인 도구를 활용하여 보다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결코 서두름 없이 집착이나 메임 없이 지금 각자로서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것!
결국 결과나 답을 구하려기 보다 과정에 가치를 두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행복이란, 한 길의 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에서든, 그 길을 가는 여정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을 태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