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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명상법을 들라면, 위빠사나 명상을 떠올리게 된다. 서구에서 역수입된 마인드풀니스(마음 챙김) 명상도 위빠사나, 즉 통찰명상에 기반을 둔 방법이다.
위빠사나는 빨리어로, 위(vi, 여러 가지)와 빠사나(pasana, 관찰하다)의 합성어이니, 여러 가지를 관찰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관찰하고, 여러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혜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행이다.
자기 관찰을 기반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감각에 따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의 맹목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갈망과 혐오의 반응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교에서는 존재의 특성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삼법인 (三法印)이라 표현한다.
1)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법에는 고정불변의 실체란 없고,
2)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현상은 (인과 연의 조건에 따라 일어나므로) 변천(行)함에도,
3) 일체개고/一切皆苦: (이에 집착하니)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선불교에서는 열반적정(涅槃寂靜; 갈애(집착)에서 벗어나면, 청정한 본래면목 (참마음)을 깨닫게 됨)을 포함하여 사법인 (4法印) 또는 위의 3(일체개고)을 대신하여 삼법인에 포함하기도 한다.
무지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방식으로 계속 반응하고 있으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지혜가 일어나면, 반응하는 습관은 사라지게 된다.
맹목적으로 반응하기를 멈추면, 우리는 균형 잡힌 마음에서 나온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러한 행동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게 된다.
React(반응)는 무의식적, 반사적 행동인 반면, Respond(대응)는 알아차림을 통해 지혜롭게 판단된 행동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
불교에서는 이러한 본질에 대한 통찰을 위해, 몸(身), 몸을 통한 느낌(受), 그에 따른 마음의 반응(心), 그로 인해 나타난 현상(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고통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탐색해 가며 마음의 불순물을 하나씩 정화해 나가는 수행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를 사념처관(四念處觀), 즉 4가지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의 대상을 관찰한다고 일컫는다.
마음챙김이란 '마음을 챙긴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마음이 대상을 챙긴다'라고 이해하여야 하고, 그 대상을 몸, 느낌, 마음 그리고 현상으로 정리하고 있다. 몸은 탐하기에는 너무나 더럽고 부정함에도, 몸의 감각작용이 집착과 탐욕을 초래한 고통의 진원지이고, 마음도 무상하여 변덕스럽고, 인식되는 모든 현상 또한 인과 연의 조건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질 뿐임을 관찰하는 것이 사념처관이다.
* 사념처의 '념(念)'은 팔리어 '사띠(sati)'의 한문 번역으로, 영어에선 mindfulness라 하고, 우리말로는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으로 번역되고 있다.
* 미국에서 널리 보급된 현대판 명상법인 '마인드풀니스'는 1979년 메사추세츠 의대의 존카밧진 교수의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된 것으로 존 카밧진 교수는 미국인 스님 필립 카를로, 베트남의 틱낫한, 한국의 숭산스님 등으로부터 선불교를 배웠고, 숭산스님이 설립한 보스턴 근교의 케임브리지 선원에서 수석법사로 참선을 지도하기도 했다. <위키피디아, 법보신문 등>
첫째, 가장 대표적인 몸(身)의 관찰법으로는 (1) 숨을 세거나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호흡 관찰과 (2) 가슴과 배의 오르내림이나 발을 들고 내림과 같은 몸의 움직임 관찰을 들 수 있다.
호흡을 지켜보기 힘든 초심자들에게는 (i)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고(출입식/出入息), (ii) 숨을 0에서 10 또는 100(또는 100에서 0)과 같이 세어가며 집중하는 연습(수식관/數息觀)을 거쳐, 종국적으로는 (iii) 코앞에서 공기가 들어와 온몸을 돌아나가는 호흡 전체를 끊김 없이 지켜보기(수식관/隨息觀)로 이어가는 방법을 권하기도 한다. 요가나 단학의 호흡법은 호흡을 조절, 통제하지만, 불교명상이나 마인드풀니스에서의 호흡관찰은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함에 차이가 있다.
둘째,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일어나는 느낌(受) 관찰은 신체의 5가지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을 통해 우리 뇌로 전달된 5가지 느낌(오감: 형체, 소리, 냄새, 맛, 촉감)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수행방법이다.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중도) 느낌은 순간순간 변해서 고정된 괴로움이나 즐거움, 중도가 없음을 알아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도록 이끌어가는 수행이다.
셋째, 마음(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으로 자신 안에 탐욕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성냄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어리석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구분해서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느낌과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수시로 변하여 항상스런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니 이런 집착을 버려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대상과 (대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여러 개의) 아는 마음,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는 한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원인과 결과, 무상, 끊임없이 생멸하기에 생겨나는 괴로움(고)과 무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증득하여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구하고자 함이다.
* 마음 관찰을 이렇게 설명해 본다.
여기, 토이 푸들과 진돗개가 있다 (대상). 어떤 마음은 너무나 사랑스러워 안아주고 싶어 하는 반면, 또 다른 어떤 마음은 푸들에게는 웃음 보일 수 있지만, 진돗개는 무섭다 (아는 마음과 느낌). 그런데 그 앞에 대형 거울이 놓여 있다. 푸들이 왔다 가던, 진돗개가 왔다 가던, 안으려는 사람이 비추이던, 도망가는 사람이 피추이던 그저 지켜볼 뿐, 그냥 그 자리 그대이고, 아무런 흔적도 남김이 없다. 무심이다. (지켜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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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 또는 정신 현상에 대한 관찰이다. 우리가 인식한 대상이나 현상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의 화합에 의해서 생기는 연기된 인식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주체나 객체, 여기서 생기는 인식은 그 실체가 있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해서 생겼다 사라지는 연기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한, 이런 인식과정에서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5가지 장애요인 (감각적 욕망, 성냄과 혐오, 게으름과 혼침, 들뜸과 후회, 그리고 의심)의 생멸을 알아차리고(念), 꾸준한 노력을 다하여(精進) 장애의 원인과 조건을 탐구(擇法)하고, 집착을 버리고(捨), 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제거(除)하여, 진정한 기쁨(喜)이 일어나게 한다. 이리하여 자연스럽게 평안(輕安)과 선정(定)에 이르게 되고, 최고의 내적 균형(중도)에서 깨달음(慧)의 정점에 이르도록 이끄는 수행이다.
바디스캔(Body Scan) 명상
일반적으로 몸을 대상으로 하는 관찰이 느낌보다, 느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마음이나 법보다 분명하고 관찰이 쉽기 때문에 몸을 대상으로 한 관찰을 중심으로 수행한다. 몸을 대상으로 한 관찰에는, 위에서 소개한 호흡과 움직임 관찰 외에도, 머리끝에서, 얼굴, 목, 가슴, 배, 다리, 발끝에 이르는 전신을 차례로 옮겨가며 살펴보는 방법도 있고, 몸의 표면(털, 피부)에서 근육, 뼈, 장기, 혈액 등에 이르기까지 순차작으로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좀 더 심화된 내면 관찰법으로는 (1) 부정관, (2) 4요소 관찰, 그리고 (3)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현재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 등이 있다.
부정관,
우리 몸의 피부, 살, 뼈, 피, 오물 등 32가지 부분에 대한 해부학적 심층 관찰을 통해, 몸과 물질의 본질이 아름답지도 탐할 가치조차 없는 부정한(깨끗하지 않음) 것임을 깨달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경향성에 대응하여 이를 통제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4요소 명상,
나를 이루고 있는 몸을 관찰하면, 뼈(지), 피(수), 피부(화)로 구성되어 있고, 호흡(풍)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듯이, 다른 모든 생명들 또한 지수화풍(흙, 물, 불, 바람)의 4대 요소로 구성되어, 다르지 아니할 뿐 아니라(불이), 외부로부터의 4요소, 즉, 음식(지), 수(물), 날씨(화)와 공기(풍)의 공급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상호의존성과, 배설과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회귀하여 다시 4요소로 분해되는 과정을 순환하는 연기와 생멸을 거듭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죽음 명상,
또한 가장 확실한 사실인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하여,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허상과 환상에서 깨어나 진정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종국적으로는 죽음에 이를 뿐인 결과로 고통받기보다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베풀며 즐기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수행법이다.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결국 몸, 느낌, 마음, 그리고 이로 인한 대상과 현상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모든 존재의 본질인 무아(無我), 무상(無常) 그리고 고통(苦)에 대해 알아차리고자 함이다.
무상한 것에 대한 집착과 나로 인한 분별심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자연 또는 우주와 나의 본질은 다르지 아니하고(不二), 연기(緣起)에 따라 생멸을 거듭할 뿐, 서로 의존하여 분리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고, 감사와 용서 그리고 자비를 통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구하기 위한 수행이 바로, 위빠사나, 즉 본질에 관한 통찰 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