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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태 Jan 11. 2024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한다.

궁즉변 변즉통 (窮卽變 變卽通)

2023년 10월 어느 날의 메모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 cover image made by AI, Bing

그간 자전거 타기를 통해 한동안 답보상태이던 명상을 다시 궤도에 올려두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진 듯, 꽉 막힌 느낌이다. 

써내려 가던 글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머릿속이 혼미하다.

원래 정함이 없이 든 붓을 막힘이 없이 일사천리로 달렸던 글이건만...


아침 라이딩을 나서다, 문득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아본다.

시작부터 다른 분위기로 조심스레 페달을 밟는다. 

평소 방향의 길이 확 뚫린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는 질주 본능을 도발하는 분위기였다면, 반대로 내려가는 길은 아기자기하달까?  

도보 길과 자전거길이 분리된 듯 바짝 붙고, 나지막한 산언덕을 따라 함께 굽어치는...  


그리 익숙지는 않은 길이라, 조심스레 주의를 기울이며 달린다. 도로 환경상 로드족들이 자주 보이지도 않고, 마구 달릴 수 있는 그런 길도 아니니 경주욕구는 저절로 내려놓고 달린다.

이런저런 다른 풍광과 사람들이 새롭고 정겹다. 경쟁을 내려놓으니 즐거움이 다가온다.

이럭저럭 주의를 기울이며, 세팅한 10km 목표점에 다다르니, 10여 년 전에 10여 년을 살던 동네, 그 아파트 동 근처다. 도시의 향수랄까? 

자전거를 세우고 조용히 명상할 자리를 찾아, 아파트와 연결된 산자락으로 들어가 본다.

산 공기도 좋고, 옛날 자주 아침 산행을 즐기던 코스라 향수까지 느껴진다.


????!!!

근데, 아니다. 금세 돌아 나오고 만다.

하천 다리아래, 많은 운동객들이 오가는 평소의 그 자리보다 객관적으로야 비교가 안 되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숲 속 이건만...

빽빽이 가로막힌 나무들과 모기떼...

잠시를 버텨낼 수가 없다. 모기떼를 쫓느라, 가려운 몸뚱이를 긁느라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모기 알아차림(?)에 온 의식을 다 빼앗긴 듯하다.


금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거의 선방 수준으로 만들어온 서재에서의 답보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틀을 깨고, 하천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어느덧 다시 공식화된 그 틀이 주는 정체감을 깨고자, 방향을 틀었건만,

여전히 매너리즘, 루틴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도 명상은 조용한 산속이 더 좋다는 오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목표점에 오면 꼭 좌선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메여 있음을... 


그냥 털고 일어나 다시 집으로 향하는 10km를 달린다.

같은 길이건만, 방향이 바뀌니 또 새롭다.

언제 다다랐는지 어느새 집 앞이다.

명상을 위한 멈춤의 시간도 갖지 않고 줄곧 달렸는데, 평소와는 달리 온몸이 땀에 젖지도 않았다. 명상 후 몸풀기도 않았는데, 뻐근하지도 않고, 숨 가쁘지도 않다.


스마트폰 운동기록을 살펴본다.

라이딩 거리도, 소모 칼로리도, 평균 주행 속도도 평소와 거의 같다.

뭐지?


고통스럽게 가느냐?, 즐겁게 가느냐?

아,  그랬구나!

경주에 대한 집착과 욕구를 내려놓으니, 평소의 긴장대신 주의 깊은 편안함이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운동근육을 끌고 왔으니, 객관적인 결과는 같을 수밖에...

“더 빨리!”라는 욕심 어린 생각으로 마음과 몸만 괴롭혔을 뿐. 

결국은 그 자전거에 그 몸뚱이로 달려온 같은 거리일 뿐.

그 욕심은 피곤만 더할 뿐, 결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결국은 마음인 것을.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지옥도 극락도 결국은 외부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것임을...

환경이 아니라, 비교하려는. 집착하는. 잘하려는 그 마음이 만든 고통임을...

강을 건너오면 뗏목조차 버리고 떠나야 함을

궁하면 저절로 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했기에 다시 통할 수 있게 된 것임을...(궁즉변 변즉통, 窮卽變 變卽通) 


궁즉변 (窮卽變):    궁하면 변화해야 하고,
변즉통 (變卽通):    변화하면 통할 것이며(통할 때까지 변화해야 하며),
통즉구 (通卽久):    통하면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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