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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태 Jan 28. 2024

놓아 버리기

관심

지난 10월 어느날의 메모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무심(無心),

무아(無我),

무명(無明)을 밝히는 지(智)혜,


모두 일체개고(一切皆苦)에서 벗어나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들고자 하는 공통의 뜻을 가졌으니, 동의어라 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달리다, 고가다리 아래 그늘을 찾아  멈추고 쉰다.

고가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

옆 사람들의 라디오 소리, 지나가는 자전거족들의 음악 소리,

앞 개울의 물소리, 새소리, 발걸음 소리...

간혹씩 둘의 다툼소리까지 더해지면 소음천국이다.


근데, 관심이 안 간다.

그저 오롯이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내 호흡을 따라 명상에 드노라면,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오히려 조용하지만 관심으로 가득 찬 집을 두고, 소음으로 가득 찬 별다방으로 공부하러 나가나 보다.


무심(無心)이다. 

내 일이 아니니 관심이 가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메일 이유가 없기에 자유롭고 평안하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젖어들다 보면 그냥 고요하고, 평안할 따름이다. 


적정(寂靜)

그냥 어우러져 호흡에 젖어들다 보면 무아(無我), 불이(不二)다.

그저 모든 게 하나 되어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했던 본래의 고요와 평온이 드러난다. 


호접몽(胡蝶夢)

내가 꿈속의 나비인지?, 꿈에서 깨어난 장자(莊子)인지? ㆍㆍㆍ

≪莊子(장자)≫ 齊物論(제물론)에서 장자는 말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내 스스로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잠을 깨니 틀림없는 인간 나였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이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인간 莊周(장주)와 나비와는 분명코 구별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만물의 변화인 物化(물화)라는 것이다.” 장자는 또,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만물이 하나로 된 절대의 경지에 서 있게 되면, 인간인 장주가 곧 나비일수 있고 나비가 곧 장주일 수도 있다.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느끼고 하는 것은 한낱 만물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호접몽 [胡蝶夢],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2011. 2. 15., 조기형, 이상억)



깊이 세 번 숨을 들이 마시며,

밖으로 나간 마음을 안으로 불러 들인다.

이제, 자연스레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가만히 지켜본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고요하다, 평온하다, 감미롭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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