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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單), 파(破), 직(直)
애플의 아이폰에 나타난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이다.
애플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애플의 역사를 돌아보면, 단 한 번도 독자적인 기술 개발이나 최초의 발명이라 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애플은 실리콘 밸리의 어느 차고에서 출발한 조립 수준의 개인용 컴퓨터(PC) 회사였다. 스티브 잡스가 엔지니어가 아님은 물론, 애플의 어느 누구도 컴퓨터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컴퓨터 시스템 기술을 이용하여 사용자의 사용 편의성에 초점을 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당시 IBM이 주도하고 있던 컴퓨터는 MS의 DOS 운영체계(컴퓨터 언어를 통한 명령체계)를 통해 작동되고 있어, 사용자는 컴퓨터 언어를 중심으로 상당한 교육을 거쳐야만 사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이런 복잡한 사용법과 컴퓨터 언어로부터 사용자들을 해방시킨 회사가 애플이었다.
그래픽 UI (Graphic User Interface)!
생소하고 복잡한 컴퓨터 언어를 통한 명령체계 대신,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된 이미지 기호, 아이콘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GUI는 애플의 발명은 아니었다. 복사기 회사였던 XEROX의 Palo Alto 연구실에서 발명되었지만, 이들의 경영진은 복사기에서의 GUI의 활용가치를 찾지 못하여 방치하고 말았던 기술이었다.
일체형 PC
GUI 적용에 더해, 1983년, 애플은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화한 애플 최조의 상용 PC 모델이었던 'Lisa'를 1983년 출시하였으나. 고가등의 이유로 실패하고, 이후 가격을 낮추면서도 GUI기반에 독특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시장을 구축해 간 맥킨토시 프로젝트가 'iMac'과 'MacBook'의 기반을 다졌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날 PC의 주류가 되어버린 노트북은 일체형에 GUI 기반이니, 그 원조가 된 셈이다. 복잡한 구성을 단순화 시킴으로 사용자 편의성과 이동성을 도모했던 것이다.
마우스(Mouse, 가늘고 긴 꼬리가 달린 생쥐의 모양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애플은, 아이콘의 선택으로 구동되는 GUI체계애서 보다 효율적인 도구가 된, 마우스를 보조장치로 처음 적용한 맥킨토시 PC를 1984년에 출시하였다. 이후, 결국 PC시장에서 DOS체계는 막을 내리고, 1995년 '윈도 95'시대의 개막을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마우스 또한 애플의 창작품이 아니었다. 마우스(미국특허 US 3541541)도 애플의 특허가 아니라, 1970년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SRI)의 어느 연구원(더글라스 앵글버트)이 개발한 특허 발명품이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실험실애서 뒹굴다가, 특허 등록 후, 그 가치를 알아차린 애플은 약 4만 달러(4천여만 원)에 불과한 돈으로 그 사용권을 확보하고 1984년 출시된 맥킨토시 컴퓨터에 적용하였고, 1987년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자유실시기술이 되고 말았다.
결국 자존심을 내세울만한 자신만의 고유 기술을 고집하기보다는,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볼 줄 아는 통찰력이 가치를 불러온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종전의 틀을 깨어야 미래를 향한 눈을 뜰 수 있다는 점이다. 1등의 저주는 바로 여기 집착에서부터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이 집착하고 지켜야 할 기득권이 없기에, 자유롭게, 미래를 향한 제품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최적의 기술들을 선택하여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GUI와 마우스를 통한 편리성 도모와 단순화 작업은, MP3 player 제품으로 옮겨와, 당시 소니, 삼성 등의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 제품이 주도하던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2001년 처음 출시된, 'iPod'라 불린 MP3 Player의 초기 제품은 흰색 바디에 위쪽은 메뉴창 아래쪽은 큼직한 다이얼로 구성된 모양이었다가, 2007년에 출시된 iPod는 전면에 커다란 디스플레이 하나만으로 구성되고 모든 작동은 이 디스플레이에 뜨는 아이콘을 터치하는 방식(터치스크린)으로 구현되는 일체화, 단순화된 디자인을 구축하였다.
결국 후기 iPod가 오늘날 스마트폰 외관 디자인의 원조가 된 셈이다.
iMac과 iPod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던 애플이 갑자기 생경한 시장에 등장했다.
2007년 6월, 모토롤라에 이어 노키아가 주도하고, 삼성과 엘지 등이 추격하고 있던 무선 통신, 모바일폰 시장에 iPhone이라는 이름의 휴대폰을 출시한 것이다. 2010년경에야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애플은, 심지어 당시 2위를 달리던 삼성전자를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시비까지 걸었다.
통신기술도 없었고 개발해 본 적도 없던 회사가 갑자기 무선통신시장에 들어와 수십 년 전부터 통신 기술을 개발해 온 삼성을 상대로 특허전을 벌이겠다니,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해 본 적도 없는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었을까?
세상은 이미 system을 하나의 모듈과 칩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기능과 기술을 하나의 디바이스에 내재할 수 있는 융복합화가 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당시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폰과 연계하여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필요한 기술과 기능은 가져다 쓰면 된다. 문제는 어디다 어떻게 적용하느냐 일뿐...
지금으로 보면, 마치 빅데이터와 같다. 지천으로 널려서 정보(데이터)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기술이나 지식 자체보다는 이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진정한 창조와 혁신은 한 곳에 몰입을 통해서 이루어진 다기보다는 관조, 즉, 멈춤과 비움 이후의 통찰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한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창의적이지 않은 간단한 이유는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에크하르트 톨레 (선불교적 불이, 무아론과 일치하는 사상가로, 세계적 영적 지도자 중 한 분)
여기서 스티브 잡스의 혜안이 번뜩인다. 파(破), 직(直), 단(單)
파(破),
고정관념을 버리고 틀을 깨라
핸드폰, 모바일 폰!
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말에 갇혀 버린다. 마치 간화선(看話禪)에서 깨우치려 했던 것처럼, 전화기, 즉, 말을 전하는 기계와 통신(VOICE COMMUNICATION)이라는 기능에 갇혀 버린다.
과연 스티브 잡스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통신 시장에 들어와 전화기를 만들어 팔려했을까?
일등의 저주를 기술의 변곡점마다 보아 왔다.
그런데 아니다, 애플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기에 메일 이유가 없었다.
비워진 공간(空)에서부터 바라본 스티브는 무한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우연이라고?
아니다. 젊은 날, 히피생활을 하기도 하며 방황했던 스티브는 초월명상과 힌두교를 쫓아 인도로 갔으나, 오히려 힌두교보다는 인간 중심의 불교 사상에 매료되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일본 선불교, 스즈키 순류 선사의 선풍을 이어받은 오토가와 고분 치노(乙川弘文) 선사의 지도아래 수행을 거치며 선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실제 검은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로 대변된 그의 단순한 의상과, 놀랍도록 절제된 가구, 채식주의 식생활 등에서, 선에 대한 심취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SYSTEM ON ONE CHIP의 진행에 따라 통신 모듈, 카메라 모듈, 컴퓨팅 모듈, 멀티미디어 모듈등의 조합을 통해 작고 가벼운 기기에 내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었으나, 고정관념과 각자의 시장을 지키고자 하는 일등들의 고집에 갇혀 이런 변화와 도전을 주저하고 있었을 뿐.
애플은 그 어느 것에도 잃을 것이 없으므로, 자유로우므로 채울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오늘날 Smart Phone으로 대변되는 융복합화 제품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순간은 현재의 지식과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상관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려는 수많은 시도 속에서 탄생한다고 한다.
직(直),
마음을 바로 꿰뚫어 보라!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고나 할까? 던져진 돌이 아니라 던진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소비자들이 답답해하고 원하는 바를 바로 꿰뚫어 보라는 것이다. 기술자/개발자 관점이 아니고, 소비자 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정보통신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진화로 만들어진 어느 하나도 놓고 집을 나서기 어려운 기기들이 이미 너무 많아져 버렸다.
집을 나서며 카메라도, 전화기도, 노트북도, 마이마이도, DVD PALYER도 다 챙기고 싶은데... 이걸 다 들고 나서기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기술자/전문가는 이미 각자의 영역에 머물러 융합을 꺼려한다. 문제점과 부정적 시각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OUT-SOURCING 전략이 등장한다.
이렇게 전회기, 핸드폰은 스마트폰이란 이름으로 바뀌어져 갔다. 길을 나서며 꼭 챙겨야 하는 단 하나의 똑똑한 전자기기, 비어 두었기에 오히려 중심이 될 수 있는 기기로 바뀌어져 갔던 것이다.
다시 묻는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실제 음성통화를 하는 비율은 글쎄,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노크북에 가까운가? 영상기기, 음향기기, 카메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래서 스마트+폰, 스마트 기기, 딱히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필수적인 똑똑한 전자기기가 된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그 마음을 바로 꿰뚫어 보는 직지인심이 여기서 차용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보자. 선(禪)이란 한자로 풀면 보일 시(示)+ 단순할 단(單)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함이 보인다는 뜻이다. 가장 단순한 모양은 모양조차 없는 공(空) 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또,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일 시를 썼다. 본다는 의도적 노력도 아니고 그냥 훤히 보이는 그런 상태다. 정리하면 선이란 그냥 훤히 본질인 공(空)이 들여다 보이는 그런 혜안(慧眼, 지혜의 눈), 통찰력의 경지를 이름이라 해석하고 싶다.
이런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하착(放下著), 멈추고 비움이 필요하다. 반대가 고집이다. 집착하니 고통만이 따른다. 틀 속에 갇혀 머리 싸맨다고 풀리지 않는다. 고통만이 따른 뿐, 그래서 멈추고 비우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선 마니아가 아마존의 창업자, 베이조스다. ALWAYS DAY ONE, 즉 초심을 버리지 말란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자의 처음 마음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아집이나 편견이 없이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겸허한 자세라야 한다. 이미 세상에 나와버렸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때가 묻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멈추고 비우려는 최소한의 수고는 필요하게 된다.
단(單),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복잡하면 손에서 멀어지고, 사용자의 외면을 받는다. 그래서 단순함을 강조한 것이다.
단 3번의 클릭으로 모든 조작을 가능하게 하라! 전원 켜고, 1차 메뉴에서 원하는 기능을 선택하게 하고, 다시 해당 기능의 메뉴에서 원하는 동작을 선택, 실행하게 하는, 딱 세 번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함을 구현하게 했다. 옷이나 헤어스타일은 물론, 집안의 가구와 개재도구도 단순화하니 사고 또한 단순하게 된다. 쓸데없는 잡생각에 온 정신을 다 뺏기고 시간을 허비할 원인이 없어진 것이다. 옷 고르고, 머리 손질하고, 집 안 정리하고 등등에 소비되는 시간을 생각해 보라.
키보드나 특정 기능에 초점을 맞춘 여러 버튼등 고정적인 모습을 다 없애고, 디스플레이만이 남아 휑하니 빈 공간이 되어 아주 단순하게 만들었으니, 그 어떤 틀에도 메임이 없이,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로 채우고 또 비워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빈 공간이니 오히려 무한의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치들이 산적하여 스스로 파둔 규칙과 편견, 고집의 골이 깊어져 생각만 많아지고 정작 결정하기는 어려워지니 실행이 어렵고, 실행이 어려우니, 결과 창출과는 갈수록 멀어진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파, 직, 단으로 나누어 설명했으나, 결국 하나의 원칙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뿐이다.
결국, 진정한 창조와 혁신은 혜안,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틀을 깨어야(破) 본질이 보이고, 틀을 깨니, 복잡한 규칙이나 경계가 없이 단순해지고(單), 단순해지니 비로소 훤히 들여다 보이게 된 것이다(直).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고 지나가는, "유레카"란 외침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그런 순간..., 통찰력, 지혜의 눈을 뜨게 되는 그런 경지를 이름이다.
스티브잡스의 선불교적 명상 세계를 잘 묘사한 글로 마무리해 본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난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