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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태 Feb 13. 2024

색즉시공, 공즉시색

과학으로 본 존재의 본질

이 고무풍선은, 가득 찬 것(色)인가? 텅 빈 것(空)인가?


색즉시공(色卽是空)


우리는,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은 허구 또는 환상이라 부르고, 잘 믿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이란 것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과연 형체가 있는 실재하는 것들일까?

과학적으로 보면,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는 쿼크라는 입자이나, 물질의 화학적 특성을 유지한 최소단위는 원자라 한다.  

 

•원자(原子, atom)는 화학반응을 통해 더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로,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자는 원자핵주위를 돌고 있고,

•원자핵과 전자의 사이는  99% 텅 빈 공간이라 한다.


이런 원자들은 서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현실 세계의 물질을 구성하는 데, 어떤 조합이냐에 따라 쇠가 되기도, 나무가 되기도, 구름이 되기도 하고, 사람의 신체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원자를 축구장 크기로 확대하여 비교하자면, 원자핵은 축구공 크기에 해당하고, 태양계를 운동장 크기로 옮겨 놓으면, 태양은 야구공, 지구는 모래알보다도 적은 크기에 불과하단다. 결국,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전체에서, 이런 빈 공간을 걷어내면, 실제 입자는 먼지정도 크기에 불과하니, 지구상의 수십억에 달하는 모든 인간을 다 합쳐도 사과 한송이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된다.


이렇게 보면, 색즉시공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을 다 모아도, 공간을 제거하고 나면 미세한 먼지 하나에도 못 미치니 텅 빈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물질(분자)을 구성하는 입자


색즉시공! 형상 지어져 보이지만 그 실체는 텅 빈 것이다.

결국, 물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인지)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모든 존재는 마음속의 관념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철학자들도 있고 (아일랜드 철학자, 존 버클리),

현대 과학에서는,  텅 빈 공간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여러 소립자에 대응하는 장(빛-파장-에너지)이 독립적이 아니라, 상호 작용(밀당)하고 있다가,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파장이 빛으로 센싱 되고, 빛을 통해 우리 두뇌가 어떤 형상으로 모양 지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이렇듯, 현실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이루는 모든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는 99%가 텅 비어 있는데도,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다.

사람 몸을 이루는 원자들을 다 모아도 공간을 제거하면 미세한 먼지 하나에도 못 미치는 데, 모든 물질들은 어떻게 그 형체를 이루고 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설명한, 흙, 물, 불, 바람이라는 4대 원소가 되었건, 현대 불리학에서의 원자핵과 전자가 되었건, 물질마다 고유의 공간을 유지하기에 형체를 이루고, 그 공간은 중력, 에너지장, 반발력, 에테르 (氣) 등으로 설명되어 왔고, 양자역학에서는 빛, 파장, 입자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 모든 물질은 입자성과 동시에 파장을 갖는다는 현대 양자물리학의 이론과 상통함)


결국은 물질이라는 것도 99.99%가 공이지만, 그렇다고 공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게, 어찌 되었건 원자핵과 전자라는 수치화조차 어려운 미세한 입자들이 있고, 이들 간의 공간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있고, 이들이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에 의해 모든 물질이 이루어져 있으니, 다시 공이라고 결론지을 수도 없다.


결국, 에너지, 여기에 답이 있으니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하는 이유다.

염력이나 기도, 심지어 미신, 주술이라 불릴 수도 있는 영적인 힘으로도 치유력, 면역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연구자료까지 나오고 있으니, 결국은 간절함이라는 에너지 파장이 이룬 과학적 결과이지, 우연은 아니라 설명되어질 것이다.  다만 모를 뿐. 인간이 모르면 과학이 아니고, 극단적으론 미신이라 칭하고, 우연이란 이름으로 피해왔던 걸까?


불이(不二), 우주는 둘이 아니다는 것도, 원자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의 90%는 전자구름으로 불리는 궤도 내에서 발견되지만 일부는 우주의 반대편에서 발견될 수도 있고, 이 전자 또한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는 일부이니, 이리 보면 원자나, 각 물질이란 것이 우주 전체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라고도..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미세한 먼지 속에도 대 우주가 담겨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중에서)이라 했던가? 우리 몸은 물론, 먼지를 이루고 있는 원자의 99,99%가 텅 빈 공간이듯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별들 사이의 공간 또한 이런 구조와 다르지 아니하니, 참 신기하게 닮았다.


공(空)은 무(無)와는 다르다. 모든 존재가 원자로 이루어져 다르지 아니하지만(불이, 不二), 인연에 따른 연기(緣起)로 다른 현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사라지는 생멸(生住異滅)을 되풀이하고 있으나,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우주에 존재하는 절대 에너지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으니, 무상(無常)이라 할 수 있고, 윤회라고도 표현될 수 있겠다. 과학적으로는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불변의 법칙)이요,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부증부감(不生不滅, 不增不減) "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맑은 하늘에 바람이 불어오니, 수증기가 몰려 구름이 되고, 계절 따라 비도 되고 눈도 되는 그런 현상이다. 빈 듯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형상 지어진다.


이렇듯 비어 있음으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고,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공이란 부정적인 허무나 없음(무)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존재의 본질은 불이 인데, 어떤 인과 연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리지는 것이란 이해가 맞을 듯하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그릇은 진흙으로 만들지만, 쓰이는 것은 그릇 속에 담긴 비움이다"라고 하여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강조했고, "방은 벽과 문으로 둘러져 있으나, 비었기에 방으로서 기능하다."고도했다.  


정말로 쓸모 있는 그것들은 비어있다. 빈 휴대폰이라야 앱도 깔고, 사진도 저장하고....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전화기도 되고, 사진기도 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채팅도 하고, 문서도 만들고....  비어 있어서 가능한 쓰임이다.


결국 우주와 삼라만상의 본질은 공이나, 없음이 아니다. 항상 고정된 형상이 없다는 것이고(무아), 시간을 놓고 보면, 인과 연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생멸을 거듭하니 무상이라 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중도다. 비어 있으니, 부정적인 허무의 공간이 아나라,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가변적인 창조의 공간인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니, 잡을 수도 없음을 깨닫고, 오히려, 비움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지혜를 통해 더 큰 것을 얻게 될 수 있음이다. (방하착, 放下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게 된다고나 할까? 오늘날 플랫폼 경제나 공유경제의 개념과도 닮아 있다.  독점적 소유를 버리고 나눔(sharing)을 통해, 더 많은 곳/것을 향유하게 되는 지혜의 발현이다.


공즉시색! 비었기에 채울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

색이 공한다고 설명한 이유는 존재를 부정히기 위함이 아니라, 색은 바로 공에서 출발하고, 공이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긍정의 논리를 펴기 위함이다. 다만, 색이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므로 집착하거나, 좌절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한편, 공이기에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임을 일깨우는 가르침인 것이다.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므로,집착 없이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결과인 죽음에 집착하기보다는 매 순간, 그 과정을 즐기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 의상대사 법성게 중에서

* 이름도 모양도 없이 모든 것이 끊겼으니, 그 어떤 경계도 없음은 오로지 지혜로만 증명할 수 있도다.
* 나(ego)라는 감옥에 갇힌 이기적, 절망적, 미시적 관점(고립무원)에서 벗어나, 보다 큰 자연/우주와 연결된 더 크고 고요한 참나(不二) 발견을 통한 거시적 관점으로의 변화에 따른 수용/포용력을 배양하라는 가르침으로, 이름과 모양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우주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문구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 반야심경 중에서

(시간적 관점에서 보면) 물질인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 또한 색과 다르지 아니하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물질뿐만 아니라 마음의 작용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즉, 삼라만상은 제각기의 인연으로 인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이루어져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시간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인과 연이 다하여 반드시 멸하는 것이기에 공(空)하다.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 또한, 모두 인(因)과 연(緣)의 조건에 따라 입자처럼 인식되었다가, 파동처럼 인식되었다 하는 것으로, 그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이 모두 변화하는 현상일 뿐 변화하지 않는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無常)을 알아차려야 한다.
*물질을 뜻하는 색(色, 빛에서 나온 때문으로 색이라 칭해짐), 정신작용인 수 (受, 느낌), 상(想, 인식), 행(行, 심리적 반응), 식(識, 알아차림)의 다섯 가지를 통틀어 오온(五蘊)이라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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