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 입체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지난 8월말, 라이딩중 적어두었던 메모장에서 옮겨온 글
올 3월 초부터 시작된 자전거 타기가 아직까지 4~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 알람에 눈을 뜬다. 여전히 무겁다.
막상 탄천에 들어서면 시원한 새벽공기가 한여름의 텁텁함을 날려준다.
달리다 보면 이제 눈에 익은 얼굴들과도 자주 마주친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에 이렇게 지나가는 자전거족으로 입력되었으려나?...
인간으로 태어나며 공유한 DNA인가, 해태와 혼침, 귀차니즘이다.
이런 오래된 나쁜 습을 깨고, 바꾸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달리다 항상처럼 좌정에 들려고, 이곳, 이 벤치로 찾아든다.
오늘따라 어느 두 아재들의 수다가 릴레이 중이다.
매일 걷는 도보 루트, 달리던 자전거 루트. 시간, 거리 등등...
처음 본 사이인 듯한데도 공감과 경쟁으로 서로의 오랜 아침 운동습관을 토한다...
떨치고, 좌정에 들려다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나도? 스스로 만든 습관의 늪에 빠진 건 아닐까?
이른 아침 5시에 기상해야 하고, 자전거로 10여 km를 달린 후,
멈추고 30분~1시간 명상과 글쓰기, 그리고 다시 10km를 돌아오는 그런 늪...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 다시 크게 세 번 깊이 호흡을 하며,
밖으로 나간 마음을 안으로 불러들여본다.
그리곤, 그저 자연스레 드나드는 호흡을 지켜본다.
어느덧 앙금이 가라앉고,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잡념과 함께 후덥덥하던 몸의 열기가 내려지니, 상큼한 대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참 시원~하다.
눈을 뜨자,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듯 미군병사들이 엉성한 군장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다.
아, 그래, 그 차이로구나!
누구는 자신의 의지로 이러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어찌할 수 없는 타의로 저러고 있으니...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악습을 깨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습관에 메였다” 라기보다는 오히려 악습을 깨고, 벗어나기 위한 계(戒, 수행)의 과정인 것을.
같은 듯 엄청난 차이다.
계(戒)라는 수행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큰 습관이고, 이를 통해 정(定, 몰입)을 기르고, 비로소 혜(慧, 통찰)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언젠가 들었던 호주의 수행승, 아잔브람의 에피소드 법문이 생각난다.
감옥의 죄수들이 스님더러 그 좁은 토굴에 갇혀 하루 1~2끼 배고프게 먹고, 제대로 잠도 못 자느니, 차라리 좀 더 넓은 자신들의 감옥 방에서 세끼 배부르게 먹고 지내는 게 어떠냐고?......
수처작주 입처개진
자신의 의지로 깰 수 없는 감옥과, 스스로의 의지로 택한 메임은 하늘과 땅 같은 차이임을...
그래, 나는 병 속에 갇힌 새가 아니라, 그 병 속의 새를 바라보며 경계하고 수행하는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는 수행자임을,
상큼한 공기를 가르며, 허기를 달래줄 맛난 식사와 그윽한 커피 향을 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