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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Dec 05. 2018

팀원이 제일 쉬웠어요

갑과을, 프레임 의 속사정

갑은 강해보인다


그로나 결론은...

을도 갑도 모두...

살려고 하는 짓이다 !


보통 말이 앞서는 사람들은

평가를 앞둔 상황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긍정적인 주문은 불리한 위치의 척도

격려,칭찬,아부 등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사람임을 반증해준다


을의 태도는 으례 긍정적이다

고로 을은 친절하다


광고대행사에서 을의 입장인 대행사측은

결과가 나오기전에 잘될거야~ / 잘빠졌다 ~ 라는

성공을 주문한다 반면

갑의 입장 즉, 광고주 측은 으례 불만스러운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평가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캠페인의 성공을 자축하는 상황에서 조차

감정표현은 절제되어있다.




갑과 을의 역학은 거의 모든 곳에서 비슷하다


친절한 사람, 당하는 쪽 을


잘보여야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친절과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좋은 평가나 다음 수주로 이어진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사실이다


고로

'을'의 처지는 딱할때도 있다

그러나

'을'의 입장이 불리하다라는 일반화는 자칫 성급해보인다

처지가 딱한 것과

판도에서 불리한 입장이란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갑의 횡포' 는 '한파', '폭염'처럼 언론사의 오바스런 표현의 예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우관계에서

주로 '을'의 입장이며 (친절한 태도가 몸에 배여있는)

나로서도 입장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갑' 또한 일장일단이 있으니 바로

책임감당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친절과 눈치를 보는 감정노동으로 고통 받는 '을'과 마찬가지로

결과에 대한 책임과 불안을 감내해야하는 스트래스는

‘갑’은 횡포를 부린 것이 아닌

갑과 을 사이에 유불리가 없음을 시사해준다.   


팀장과 팀원 사이에서도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관심밖의 태도를 일관하는 팀원을 대면할때마다 드는

당혹감은 언어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팀원들의 무관심을 '을'의 횡포라고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광고주와 대행사의 관계로 다시 예를 들자면

‘을’은 끌려다니면서 긍정을 주입하고, 일명 설레발을 치지만

'갑'은 프로젝트의 비용과 대행사의 밥줄을 감당해야한다.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못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내 해야한다.

비용의 측면에서 봤을때

부담하는 쪽은 광고주이며, 받는 쪽은 광고 대행사이다.


갑의 태도에 기품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업계를 떠나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런 상황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책임을 지는 쪽이기에 겉으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책임을 지지않아도 되는 혜택은 되려 '을'을 유리하게 느껴지게 한다


엄연히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비위를 맞춰야하는 쪽은 약자이지만

때론 선택을 받아야 강해지는 것이 강자이며,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힘을 잃는 것도 강자이다.


모든 강자가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며

모든 갑질이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싶다는 것도아니다

진짜 하고싶은 말은 책임을 질게 없는 사람들이 '을'의 반격이라는 둥의

구호는 책임지는 매니져급 역할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실소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김기덕은 매우 이상한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무거운 책임을 갖고있다



조현아는 부패한 땅콩이지만

대부분의 대표들은 회사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채 삶을 살아간다


조재현은 병적인 호색한이지만

대부분의 A급 배우들은 대규모 투자자본과 성공의 압박을 견뎌내며 연기한다


결론은 각자 위치에서 모두


그래도 살아가야 하며, 살아남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본질은 다 살려고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유불리는 떠나 계속 살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갑'은 당신을 골탕먹이는데 별 관심이 없다

선/악의 잣대를 갑/을에 대입하는 프레임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

현 상황은 개인에게 한탄과 원망을 주고있다


나를 미치게 괴롭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 다 살려고 저러는 것이며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도 잘 살려고 저러는 것이며

나를 따르지않는 팀원들 조차 그들 딴에는 살기위해 저러는 것이다


더 잘살기 위해서, 더 힘들지않기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과거에 같은 일로 힘들어봐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은 살고싶음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왕따가 된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치는것은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왕따는 마음이 오히려 편할 수있다

왕따를 시키는 녀석이 오히려 살려고 발버둥치고있는지도 모른다

힘의 정점에 서 있는 짱의 입장도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녹록치 않다




짱의 입장에서 보면 타학교의 짱과의 승부가 있을지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지도..

자신이 누리는 위치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타 중학교출신들과의

불편한 기싸움을 감내 해야하는 것도 짱의 위치 때문이다.

퍼포먼스가 없거나 실망시킬 경우에

허울뿐인짱이라며, 우물 안의 개구리였네..라며 뒷말을 할 것이다


책임을 지는 입장이나 보호를 받는 입장이나

열심히 살아가는 똑같은 입장이다


왕따든 짱이든 , 갑이든 을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

모두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실력이 올라가고

또한 퍼포먼스가 따르며 , 기대를 받게되고

거만해지면 다시 나락의 씨앗이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십중팔구 큰성공 뒤에 지옥을 맛본다

결국

산다는 것은 힘든 것. 반대로

살이있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가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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