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 Mar 18. 2021

밥 얻어먹는 방법

참는자에게 복은 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화가 많았다

내 뜻대로 안될때 화가 났고 심지어 참지않고

주위사람들에게 풀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피했고 내 눈치도 보았다

남들이 내 눈치를 보는게 싫었다

뒤에서 험담하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래도 화를 참는건 힘들었다


뒤늦게 깨닭은 사실이지만

두려움은 다른 말로 리스펙트로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의 주장에 토를 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말한디에 무게가 실렸던 시절이라

일면 그립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그림자와

존중받는 사람이라는 빛이 공존했던 것


시간이 많이 흘러


화를 내던 사람이 화를 듣는 사람이 되었고

피하는 사람에서 편한 사람이 되었다


서서히 변화되었지만 원인은 명확하다

내가 화를 낼 수있는 상황은 점점 줄어들고

참고 인내해야하는  상황은 점점 늘어나더라

입장이 완전히 역전이 된 것이다


어떤 변화가 생긴걸까?


#1 아들이 생겼다

아들도 나를 닮아서 화를 낸다

할머니나 엄마처럼 무서운이들에겐 화를 못내고

만만한 사람한테만 화내는것도 닮았다

아빠한테만 화를 낸다

아빠들은 보통 베이비를 혼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결국 아들바보에 꼬봉이 된 것이다

 

#2 와이프에게 전세를 역전당했다

아이가 생긴 후에 마누라가 주로 육아를 맡다보니

늘 미안한 입장이고 나에게 시키는 일도 많아졌다

손가락에 핀 주부습진도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기에 참지만

종종 화도 난다

허나 성질대로 할 수는 없는 어른의 삶에

적응을 하는 편을 택한다

또한 와이프의 힘들었던 썰을 들어주다보니

짜증을 들어주는 일상이 되었다

그 많던 내 짜증과 내 화는 어디로 간건지.. 신기하다

체질이 바뀌었나 ?


#3 회사의 요즘 애들

나때와 달라서 요즘엔 팀원들 눈치보느라 바쁘다

성추행으로 짤린 몇몇 선배들을 생각해보면

변태이기 보다 '눈치없는 죄' 의 무게를 실감했다

시대는 변했다

요즘 애들은 할말도 다 하지만, 신고정신도 투철하며,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도 잘하더라


새로운 사회주역의 등장은 사회정화작용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구세대로서 변화대처는 필수다 보니

일터에서 늘 조심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말수는 줄어들고,

아이들은 이야기하고 나는 들어주고

듣고있다보니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 된 걸까 ?

 

피하는 사람이 어느덧 편한 사람이 된 것

편한 사람의 장점은 나를 찾는 사람이 생긴다

접근이 용이해진 것이다

단점은 나도 취향이 있고 나도 기분이 있는데

존중 받지 못하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가장 큰 고민은 관계에 리스펙트가 사라진 것

영화 조커에서 어떻게 했는가 ?

리스펙트가 없다며 다 쏴죽이지 않았던가

통쾌했다

...

조커에 감정이 이입되는 걸 보면

내 처지가 알만하다


반면 옛 친구나 엄마 앞에서는 말수가 늘고

조리있어 지는 내 자신을 보면 그리움도 있다


그리고 시간은 더 흘러서..

조커처럼 다 쏴죽이기보단

진화하기로 결심했다

 

진화한 형태가 바로

능구랭이다

일종의 하이브리드로

편한 사람이지만 할말은 하는 사람이다

유머란 조미료를 쳐서 뼈를 숨기고

언어를 순화시켜서 돌려까는

타짜의 기술 밑장빼기 같은 치트키를

발견한 것이다


불평 불만을 전달하는 방식이

예전엔 화였다면 이제는 부드럽고 유머러스하게 ..

내용은 똑같은데 받아드려지는게 신기하드라


가령, 팀원이 밥먹자고 한다

과거엔 몰랐다 '밥 사주셈' 이란 불순한 의도가

은폐되어있다는 것을

돈도 아까웠지만 당하는 기분이 더 나빴었다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능구랭이는 호락호락하지않다

" 어떻하냐..? 이제 스벅 기프티콘 없는데 ?"

멋지게 받아친다

" 아니요~ 오늘은 저희가 사야죠"

허를 찌른 것이다


저 멘트 하나에 많은 고민이 들어있다

설령 밥값은 내더라도 기분만큼은 챙길 수있다


한동안은 남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게 싫었다

나를 찾는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듣는 입장이 ‘을’ 이되는 듯해서 싫었다


그러나 능구랭이가 되고나선

후배들에게 밥도 얻어먹고

마누라가 옷도 사준다

나의 감정이 전달 된 것이다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좋고

이빨을 숨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양극단만이 있는건 아니었다

중간값만 취해서 더 좋은 포지션을

점할 수있는 것이다

진화된 형태인 능구랭이는

화쟁이의 장점은 살리고

짜증받이의 단점은 보완했다는게 포인트


을이지만 공격할 수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100만큼 화가 나있으면 30만큼만 말해도

상대방에게 전달되더라

상대방이 생각할 여지를 70만큼 주는거다


그러면 밥을 얻어먹을 수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 에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