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으면 보이는 것들 :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

by 나디아

혼자 읽을 때와 함께 읽을 때는 다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펜클럽 필사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새삼 그 차이를 실감했다.

혼자 읽었다면 아마도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부터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토마시의 복잡한 연애사, 사비나의 끝없는 배신과 자유 추구, 테레자의 무거운 사랑. 이 모든 게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달랐다. 어떤 분은 토마시는 가벼움의 상징이지만 그러면서도 테레자를 위해 시골로 가고 의사 인생을 포기하는 무거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다른 분은 사비나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지만 결국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짚어 주었다. 나 혼자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관점들이었다.


특히 카레닌 이야기에 대한 토론이 인상 깊었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간략하게 처리하면서, 왜 그들의 개 카레닌의 죽음은 그토록 상세하고 애절하게 그렸을까. 혼자 읽을 때는 그냥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누군가 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해석에 도달했다.


"키치를 멀리하라"는 쿤데라의 철학과 연결해 생각해 보니, 카레닌이야말로 키치와 가장 먼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인간들의 복잡한 감정, 위선, 자기기만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존재. 그래서 작가는 카레닌의 죽음만큼은 진정성 있게, 키치 없이 그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깨달음은 혼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분이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을 때, 나도 깊이 공감했다. 일,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걱정들. 모든 걸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다.


쿤데라가 말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한 번 뿐이라는 건 어떤 면에서는 가볍다. 실수해도 되고, 완벽할 필요도 없고, 그냥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가벼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든 걸 무겁게만 짊어지려 하니까 정작 '참을 수 없게' 되는 것 같았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깨달았다. 토마시든 테레자든 사비나든 프란츠든, 결국 모두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후회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냈다는 것을.


어떤 삶을 살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새삼 실감한 부분이다. 토마시도, 테레자도, 사비나도, 프란츠도 결국은 죽는다. 그들이 고민했던 가벼움과 무거움도 결국은 끝이 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독서모임을 하면서 깨달았다. 삶에 대해 완벽한 답은 없다는 것. 다만 가벼워야 할 때는 가볍게, 무거워야 할 때는 무겁게 살면서, 그 과정에서 최대한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


결국 독서모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는 놓쳤을 의미들을 함께 발견하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질문들을 함께 나누는 것. 그래서 책이 더 깊어지고, 삶이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쿤데라의 소설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혼자 읽을 때의 막막함은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보니 이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도 결국은 내 삶과 연결된 의미를 주는 내용이었다. 혼자 읽으면 어렵기만 할 책이, 함께 읽으며 그 깊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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