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펜클럽 결산 줌모임 후기
매번 책을 읽고 줌모임을 준비하면, 항상 긴장이 된다. 시간을 내어 와주시는 분들에게 이 시간이 의미 있을까. 혹시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닐까. 멤버들에게 시간 낭비가 되면 어쩌지. 매번 이런 부담을 안고 모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줌을 끌 시간이 되면 늘 같은 마음이 든다. '아쉽다.', '더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도 그랬다. 2025년 결산 모임을 마치고 화면을 끄려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내일 월요일이라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전국 곳곳에서 접속한 사람들. 서울에서, 부산에서, 포항에서.
만약 온라인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내 평생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한 분 한 분, 실제로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오늘은 2025년 결산모임이기 때문에 특히 설문조사 결과가 궁금해서 오신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나도 설문 결과가 너무 궁금했다. 24명이 보내준 응답을 정리하면서 여러 번 웃었고,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뭉클했다.
2024년에는 16권을 읽었고, 2025년에는 7권을 읽었다. 숫자만 보면 줄어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우리는 더 두꺼운 책을, 더 무거운 책을 읽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고전문학을 읽는 독서 초보자들이었던 우리가, 1년 만에 이렇게 성장한 걸까?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생긴 자신감으로 벽돌책에 도전하기 시작한 걸까?
"2025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재미있던 책"에서 모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1위를 차지했다. 나 또한 죄와 벌이 인상 깊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뇌를 따라가며 우리도 함께 고뇌했고, 그 무거운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2024년부터 읽은 전체 책 중에서도 죄와 벌이 뽑힌 걸 보면, 이 책이 멤버들에게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끝까지 읽기 가장 어려웠던 책"으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뽑혔다. 가장 마지막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과학책이라 우리 모임과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인문학 책이었다.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책. 우리 독서모임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인상 깊은 문장"을 모았을 때였다. 23권의 책, 수많은 문장 중에서 두 문장이 겹쳤다. 코스모스의 "우리는 모두 글쓰기를 통해서 마법사가 되었다"와 데미안의 "내 속에서 솟아나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책에서,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 이게 바로 독서모임이 신기한 이유가 아닐까.
모임을 끝내고 나니, 새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펜클럽 멤버들 모두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더 어렸을 때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안다. 인생은 좋은 일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다른 걸 바란다. 시련이 온다면,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현명함이 함께 오기를. 시련이 결국 좋은 일로 이어지기를. 절망에서 오래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 줌 화면 너머의 모든 얼굴들이 힘들지 않은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함께 좋은 일을 나누고, 행복한 2026년을 보내고, 내년 줌모임에서 또 기쁜 일들을 나눌 수 있기를. 그리고 내년에도 무탈하게, 독서모임에서 좋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펜클럽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동시에 많이 읽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고, 책장을 넘기는 게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는 다음과 같은 매력이 있다. 선택하지 않았을 책을 선택하고, 필사하면서 되새기고, 길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줌모임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
무료 필사모임을 운영하는 건, 모든 걸 돈으로 따지면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시간도 들고, 에너지도 든다. 그런데도 이걸 계속하는 이유는 멤버들과 이런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운영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바쁜 중에도 책을 놓지 않게 된다는 것. 나 또한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오늘 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힘든 시기를 펜클럽에서 읽은 책과 함께 잘 이겨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책의 힘이 컸겠지만, 우리가 함께 만든 이 작은 공동체가 누군가의 힘든 시기에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쩌면 돈보다 값진 순간이었다.
2024년 1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으로 시작한 여정이 2025년 '코스모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읽었다. 23권을 쉬지 않고 읽는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함께여서 읽을 수 있었다. 온라인 모임이 가진 한계도 분명 있지만, 화면 너머로도 전해지는 책에 대한 열정은 진실하다. 그게 펜클럽 독서모임이 가진 매력이다.
내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고전문학을 읽어나갈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함께 한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