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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시카고-자이언캐년 1 (2017)

2021년에 돌아본 2017년 여행

by Blue Bird
20170521_191932.jpg 보스턴칼리지 건물


2017년에는 5월에 세라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래서 보스턴으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달랑 졸업식만 참가하고 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오는 길에 시카고도 들리고, 자이언캐년도 구경하고, 라스베이거스를 들러서 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올해 공식 여행이 되는 거다.


세라는 졸업시즌에는 호텔을 예약하기 어렵다며 거의 1년 전부터 예약을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보스턴 시내의 힐튼 보스턴 백베이에 이틀, 힐튼 보스턴 로건 공항에 하루, 총 3일을 일찌감치 예약했다. 백베이에서 보스턴칼리지까지는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거의 한 시간을 잡아야 한다. 입학할 때처럼 3일간의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니 보스턴 시내의 호텔에 숙박해도 좋을 듯했다. 항공권은 3달 전에 샀다.


세라가 입학할 때는 의시가 되겠다고 생물학과 프리메드로 들어갔지만 중간에 심리학과로 바꿔서 졸업을 했다. 부모로서는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다행스럽다는 마음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뿐인 딸이 의사가 된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의 갈길이 아주 멀고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학자금을 융자해서라도 본인이 하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 등 떠밀고 싶지도 않다. 본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는 것도 자신의 의지가 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심리학과로 바꿔서 4년 만에 일단 학업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4년간의 학자금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정도 장학금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100% 다 냈더라면 1년에 10만 불씩, 4년간 40만 불은 족히 들어갔을 거다.


글이 딴 데로 샜다. 그렇게 호텔을 예약하고, 항공권을 끊고 5월 20일 보스턴으로 떠났다. 알래스카항공을 이용했고, 시애틀에서 1시간 40분의 레이오버가 있었다. 보스턴 로건 공항에는 21일 오전 8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20분 거리여서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 9시도 안됐다. 아침부터 호텔에 체크인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짐도 있고 밤새 오느라 피곤해서 어디 구경 다니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일단 호텔에 가서 짐을 풀어놓고 한숨 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힐튼 보스턴 백베이에 도착했다. 지금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호텔 직원은 지금 호텔 리노베이션 진행 중인데 가능한 방은 아직 리노베이션이 안된 팬트하우스라고 했다. 그 방을 보고 괜찮으면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리노베이션이 됐든 안됐든 큰 상관이 없었다. 체크인만 가능하면 됐다. 팬트하우스면 더 좋겠지. 방을 보고 바로 체크인했다. 찰스강이 보이는 아주 넓은 방이었다.


20170521_084416.jpg 힐튼 보스턴 백베이 호텔


체크인을 하고 짐을 대충 풀고 세라에게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 조금 잤다. 일어나 보니 세라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호텔로 오겠다고 했다.

세라와 만나 타파 바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보스턴 칼리지로 갔다. 졸업식 때는 좀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숙사에서 나오는 짐을 싸야 하는데 아직도 싸는 중이라고 한다. 짐을 다 싸서 집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라는 학교에서 두 달 정도 일할 계획이므로 그동안 머물 다른 기숙사로 가야 한다. 그런데 옮겨야 할 기숙사까지 10분 이상 떨어진 거리다. 아직도 짐을 싸지 않고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지만 아직도 애들이다. 서로 헤어지는 시니어 행사에 다니고 마지막 날까지 써야 하는 물건들이 많아서인지 잠을 별로 싼 것 같지도 않다. 오늘 짐을 다 싸서 다른 기숙사로 옮기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서 교내를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 졸업하는 학부모가 되어 뒷짐 지고 조금 편안하게 다니고 싶었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짐을 싸고 옮기는 일을 하려니 막막했다. 학교는 짐을 싸고 옮기는 인파들로 난리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랜트카도 하지 않은 우리는 난감했다. 짐은 박스로 20개가 넘게 나왔다. 이걸 차 없이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트에 박스를 몇 개 실어 새로운 기숙사까지 가봤더니 어느새 땀범벅이 됐다. 도저히 이렇게 옮기는 것은 힘들어 안 되겠다 싶었다.


궁리를 하다가 우버를 불렀다. 조금 큰 차가 오면 세 번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우버로 다른 기숙사로 옮겼다. 에너지가 다 빠졌다. 세라는 내일 졸업식을 앞두고 친한 친구와 캠퍼스를 다니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며 나에게 사진사가 되어달라고 했다. 카메라도 없이 핸드폰으로 찍어야 했다.



20170521_192519 (1).jpg 내일 졸업하면 다시 오기는 어렵겠지


학교가 넓어서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힘이 든다. 그래도 열심히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건 친구들하고 다니면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래도 부탁을 하니 안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너희들끼리 다녀라"라고 하고 싶지만 소피는 마지막까지 다 해주려고 한다. 부모의 역할에는 마지막이 없는 듯하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배가 고파 세라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한국 음식점에서 한식을 먹었다. 한국 음식점의 음식은 하와이보다는 먹음직스럽지 못했다.


일요일에는 보스턴칼리지 내에 있는 세인트 이그냐시오 성당에서 졸업 미사가 있었다.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우리는 웬만한 행사는 다 참가한다. 평생 한번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겠지만 의무가 아니어도 가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땐 항상 참석해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20170522_100742.jpg 졸업식날 비가 왔다

졸업식은 월요일 오전 10시에 있었다. 엄청 많은 인파 속에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1차로 행사를 한 이후 졸업장 수여는 각 단과대학별로 다른 건물에 모여서 했다. 간간이 비가 뿌리고 바람이 불어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는 못했다. 아니 정신없이 졸업식이 지나갔다.

졸업식을 치렀으니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전 기숙사에 남은 것이 있다고 한다. 남은 짐을 정리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반납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고 한다. 소피는 세라를 따라서 기숙사로 갔고, 나는 조금 후에 산책 겸 밖으로 나왔다. 전에 입학할 때 머물렀던 뉴튼의 B&B 까지 천천히 걸어가 볼 생각이었다. 4년 전 밤 12시 넘어 헤매던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며 왜 그렇게 헤맸는지 되새기고도 싶었다.



20170522_172736.jpg 4년 전 입학 때 머물던 B&B


결론부터 말하면 낮에 갔는데도 헤맸다. 길이 바둑판처럼 나란히 있는 게 아니라 엄청 복잡하게 꼬여있다. 낮에도 헷갈리는데 처음 가는 캄캄한 밤길에는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도 낮에 천천히 걸으니 상쾌하다. 5월의 보스턴 날씨는 그야말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싱그럽다. 저녁은 우버로 보스턴 시내로 나가서 오이스터 바에서 먹었다.


20170523_081948.jpg 보스턴 커먼 산책


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내 산책에 나섰다. 소피는 아직 자고 있길래 혼자 나왔다. 깨워서 같이 나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일렀다. 새벽 5시다. 샤워를 하고 호텔 주변을 걸었다. 찰스강가를 걷다가 보스턴 퍼블릭 가든, 보스턴 커먼까지도 걸었다. 공기가 상쾌했다. 빵집을 지나는데 구수한 냄새가 났다. 들어가서 하나 살까 하다가 참았다. 호텔에 가서 소피와 함께 아침을 먹어야 했다. 세라도 호텔로 옮겨와 함께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은 세라의 안내로 보스턴 몇몇 곳을 구경하며 다닐 생각이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새무얼 아담스 브류어리에 갔다. 투어시간에 맞춰 가려니 오전이었고 오전부터 맥주 시음을 했다. 투어 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브류어리는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후엔 세라가 가보고 싶다던 인근의 수목원에 가서 한참 걸었다. 그리곤 다시 보스턴 시내로 나왔다. 세라는 셀폰을 바꿨는데 뭔가 잘 안 되는 게 있다며 애플 매장에 갔다. 그런데 데이터를 옮기느라 2시간 정도를 거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뭔가를 사야 하는데 그 쇼핑센터를 찾는데 한참 걸렸다. 너무 피곤했다. 나는 인근 커피숍에 앉아서 기다리겠으니 볼 일 다 보고 연락하라고 했다. 소피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세라를 따라다녔다. 나는 세라가 4년 만에 보스턴을 방문한 부모를 위해 보스턴의 가볼만한 곳을 안내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라는 자신이 볼 일을 보는데 부모가 같이 따라와 주길 바랬던 것 같다. 그렇게 쇼핑하러 다니는 건 소피와 내가 떠나고 난 후에 해도 충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좀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는 내일이면 떠나고 세라는 앞으로 최소한 두 달을 더 있을 것 아닌가. 그렇게 커피숍에 앉아서 한참 쉬고 있자니 소피와 세라가 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배고파 저녁을 먹어야 할 텐데 밥맛도 없었다. 소피는 그래도 밥을 먹여서 보내고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래서 눈에 띄는 베트님 국숫집에 들어가 대충 먹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인을 만나기가 좀 꺼려졌지만 약속을 했으니 할 수 없었다. 제인은 소피가 일하는 병원의 박사님과 친한 친구분의 딸로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4년 전 입학할 때도 와서 만났고 이제 4년 만에 졸업하러 와서 또 만나는 것이다. 서로 저녁을 먹었으니 간단히 디저트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우리의 분위기가 냉랭한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제인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얼굴 표정에 나타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제인과 헤어지고 세라도 기숙사로 보냈다. 우리는 오늘 밤 힐튼 로건 공항으로 옮겨야 하고 내일 아침에는 보스턴을 떠나야 한다. 이렇게 이번에 보스턴을 떠나면 다시 올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세라가 보스턴에서 완전히 둥지를 틀고 사는 게 아니라면 일부러 여행 올 생각은 별로 없을 테니까.



20170524_070129.jpg 힐튼 로건 공항 호텔에서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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