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돌아본 2017년 여행
시카고는 처음이다. 시카고에서는 3박을 하기로 했다. 오헤어 공항에서 1 시간 정도 도시철도 블루라인으로 도심으로 이동했다. 밀레니엄파크 바로 앞에 있는 팔머 하우스 힐튼에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도시로 향하는 블루라인은 편하긴 했지만 도시를 지나며 보이는 풍경이 삭막한 편이었다. 시카고에 대한 내 느낌이 그대로 반영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어디서 그런 느낌이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카고에 대한 내 느낌이 그랬다. 호텔은 생각보다 엄청 클래식하면서 멋있었다. 특히 로비가 상당히 멋스럽게 꾸며졌다. 오후 2시쯤 도착해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어보니 체크인은 4시이고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한다. 가방을 맡기고 호텔을 한 번 둘러본 후 밖으로 나갔다. 바로 앞이 유명한 밀레니엄파크이니 먼저 한 번 가서 천천히 걷다가 올 생각이었다. 호텔 근처의 식당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밀레니엄파크에 갔다.
밀레니엄 파크는 시카고 마천루 건물들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다. 나무가 많은 공원이라기보다는 넓은 광장이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이 광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고 하니 그때 오면 더욱 볼만하겠다.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꽤 많다. 공원을 걷는데 매서운 추위가 몸으로 느껴진다. 아직 겨울도 아닌데 상당히 매서운 바람이 몸속을 파고든다. 덜덜덜 떨다가 안 되겠다 싶어 호텔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호텔은 멋진데 옛날 건물이어서인지 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우리에게 배정한 방이 작은 방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짐을 풀고 저녁때 잠시 또 나가봤다. 건축으로 유명한 도사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상당히 높고 화려한 편이다.
시카고에 가면 꼭 아키택처 리버 크루즈 투어(Architecture River Cruse Tour)를 해보라는 추천이 있어서 이걸 예약했고 다음날 아침에는 배가 출발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강을 따라 좌우로 우뚝 선 건물들을 구경하며 설명을 받는 것이다. 저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건물들이 서로 뽐내듯 서있다. 시카고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큰 편인데 이런 멋진 건물들도 그중 한몫을 하는 듯싶었다. 선착장 근방인 네이비 피어를 구경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제 라디오를 듣다 보니 오늘 MLB 시카고 컵스 경기가 열린다고 하던 생각이 났다. 표를 살 수 있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가능했다. 그래서 일단 경기가 열리는 위글리 필드 (Wrigley Field) 경기장으로 택시로 갔다. 경기장으로 가는 도중에 보니 경기장 주변에 교통체증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차려입은 광팬들도 많았다. 인파를 뚫고 경기장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전화로 예약한 티켓을 받은 후 경기장에 들어갔다. 시카고 컵스가 안타를 치거나 점수를 낼때 나오는 흥겨운 응원가에 맞춰 몸을 덩실덩실 흔드는 관중들이 재미있다. 이런 열기를 느끼기 위해 야구팬들은 경기장으로 가는가 보다. 1루수 쪽에 앉았는데 바람이 엄청 차갑다. 따뜻한 하와이 날씨에 적응된 우리 몸은 이 정도 추위에도 덜덜 떨린다. 바람이 엄청 차갑다. 그런데 옆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가운 콜라를 마시고 있다.
다음 날 밀레니엄 파크를 다시 구경했다. 공원을 둘러싼 건물들이 특이하다. 뉴욕의 맨해튼 건물들보다 더 높은 듯하다. 공원에서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간이 마라톤도 열리고 있었다. 일요일을 맞아 우리가 모르는 행사들이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거리를 걸으며 건물도 구경했다. 일부 건물은 내부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내부도 외부 못지않게 특이한 곳들이 많았다.
저녁에는 하와이에 살다가 시카고로 이주한 지인을 만나 시카고 파지를 먹었다. 유명한 집인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두꺼워서 딥 디쉬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카고 피자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저녁 후에는 호텔 쪽으로 걸어가다가 인근 시어터에서 케니 지 (Kenny G) 공연이 열린다고 쓰여 있어서 표를 샀다. 공연은 생각보다는 별로였는데 공연이 열린 극장은 아주 멋있었다.
다음날은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퍼레이드가 열렸다. 여행 중이라 메모리얼 데이를 생각지도 못했는데 호텔 앞으로 나가는데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서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우리도 잠시 앉아서 퍼레이드를 지켜봤다. 하와이에서 하는 퍼레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규모는 더 큰 듯했다.
오늘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는 날이지만 밤 비행기라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 브런치로 유명한 알리이스(Allis) 로 가보기로 했다. 멀리 않은 듯해서 호텔에서 걸어가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했다. 카페는 이층으로 되어 있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시카고를 떠나는 마지막 날 한두 시간 쉬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막 앉아서 맥주 한잔을 시켰는데 세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세라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서 자인언캐년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세라가 이제 막 집에서 보스턴의 로건 공항으로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항공기가 취소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작은 비행기들은 이렇게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도 운항을 취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체할 항공기를 찾아야 한다. 시켜놓은 맥주가 도착했는데 전화기로 비슷한 시간대의 항공권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맥주의 맛도, 카페의 분위기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30분 정도의 고투 끝에 겨우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었다. 시카고의 마지막 시간을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호텔에 가서 맡겨둔 짐을 찾아 다시 블루라인으로 오헤어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