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돌아본 2017년 여행
밤 10시 30분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거리다. 프런티어항공을 이용했다. 숙소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30분 정도 거리인 서머린(Summerlin)에 있는 힐튼 계열의 햄튼인이다. 내일부터 유타 쪽으로 갈 예정이라 공항 알라모에서 3일간 랜트카를 했다. 세라도 무사히 도착해 픽업했다. 아침을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인근 한식집에서 먹고 세인트 조지로 출발했다. 세인트 조지에서는 힐튼 가든 인에 1박이 예약되어 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한 후 주변의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니 차로 10분 거리에 파이어니어 파크 (Pioneer Park)가 있다. 오후 4시쯤 그곳으로 향했다. 사전 조사 없이 우연히 들른 곳인데 풍경이 뛰어났다. 해가 질 무렵에는 사람들이 더 모였다. 선셋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기대를 크게 하고 간 곳에서는 다소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전혀 기대 없이 우연히 간 곳의 경관이 뛰어날 경우에는 횡재를 한 느낌이다. 두 시간 이상 머물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저녁을 안 먹었다. 숙소 바로 옆의 식당 립 앤 찹 하우스에서 립을 시키니 엄청난 양의 음식을 준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브라이스 캐년으로 떠났다.
브라이스 캐년은 세인트 조지에서 2시간 30분 거리다. 그랜드 캐년이 남성적이고 웅장하다면 브라이스 캐년은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하다. 세공인이 정성 들여 잘 다듬어놓은 듯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다. 시간만 많다면 등산화로 갈아 신고 캐년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하이킹을 하고 싶지만 하이킹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황이라 위쪽에서 구경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한 시간 정도를 보낸 후 거기서 두 시간 운전해 자이언 캐년으로 들어섰다.
자이언 캐년이 이번 유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계곡의 물길을 걷는 내로우 여행이 기대된다. 숙소는 햄튼인 스프링데일/자이언 국립공원이다. 체크인 후 부근의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 한쪽을 구경하고 내려오다 숙소 인근의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내로우 출발지까지 갔다. 차로 비지터 센터까지 간 후, 그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내로우 출발지까지 걸어갔다. 티켓을 사는 곳 주변에는 물길을 걷는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신발도 바닥이 튼튼하면서도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빌렸고, 어부들이 입는 것 같은 가슴 정도까지 오는 바지도 빌려 입었다. 게다가 기다란 막대기까지 하나씩 들었다. 소피와 세라는 그렇게 중무장을 했고, 나는 마침 바지가 수영복을 겸해 있어서 신발과 막대기만 빌리기로 했다. 우리처럼 완전무장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집에서 준비해 간 옷과 신발을 신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상태로 셔틀을 타고 한참 위쪽으로 간 후 내려서 계곡을 걷는 것이다. 양쪽으로 높은 계곡이 깎아지른 듯 서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데 이곳을 막대기에 의지해 천천히 걸었다. 물살이 제법 센 곳도 있어서 그런 곳은 물살에 밀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계곡이 좌로 우로 굽이치면서 만들어내는 경치와 햇빛이 비치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물길을 걷는 것이라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많았다. 나는 조금 더 가고 싶었지만 소피와 세라가 힘들어하는 듯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끝까지 가려면 엄청나게 먼 길이 될 듯싶었다. 끝까지 가면 12시간이나 걸리는 하이킹이다. 중간도 못 간 것 같은데 이미 몸은 피곤해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체크아웃한 후 엄청 달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는 길은 3시간 정도의 거리다. 아무것도 없는 주변과 사막 풍경을 배경으로 끝없이 달린다. 이렇게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직선거리를 계속 운전하다 보면 살짝 졸리기도 한다.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고 껌을 씹기도 하고 창문을 열기도 하고 졸음을 쫓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렇게 가다 보니 목적지가 나타났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공항 근방에 숙소를 잡았다. 세라는 라스베이거스가 처음이라 구경시켜주기 위해 저녁에 스트립으로 나갔다. 언제든 변함없이 복잡하고 요란한 라스베이거스다. 칵테일 한잔과 함께 저녁을 먹고 구경하다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날 세라는 보스턴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이제 졸업도 했고 여행도 했으니 직장을 구하는 일만 남았다. 두 달 동안 학교에서 일하며 머무는 동안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계획으로 다시 보스턴으로 향했다. 소피와 나는 하루 더 숙박한 후 다음날 새벽 하와이로 떠난다. 새벽 1시 55분 비행기라 채 하루 숙박도 남지 않았다. 카지노에도 가보고, 호텔도 구경하고 그렇게 피곤하게 돌아다녔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 푹 잠잘 수 있기를 바랐다. 라스베이거스-호놀룰루행은 하와이안 항공인데 마침 마일리지가 있어서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했다. 퍼스트 클래스는 처음인데 새벽에 타서 아침 일찍 도착하니 좀 아쉽기는 했다. 비행기 탑승해서는 와인 한잔 마시고는 바로 잠들었다. 자리가 편해서 푹 잠들 수 있었다.
세라의 졸업식 참석을 겸해서 한 2017년 여행도 이렇게 끝났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내년에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