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4년 여행
세라는 어젯밤 11시에 떠났다. 이제 소피와 나는 이틀 더 남았다. 세라가 없으면 뭘 할까? 알래스카에서는 가볼 곳, 할 것이 정말 많다. 특히 앵커리지와 그 남쪽에서 보내는 여름은 참 쾌적하면서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페어뱅크에서의 일정을 좀 줄이고 앵커리지로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세라가 앵커리지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다.
오늘은 빙하를 보러 가기로 했다. 차를 가지고 다니니 하루 종일 빙하 관광을 할 것은 아니다. 그냥 맛보기로 빙하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 시간 정도의 빙하 관광을 위해 포테이지에서 배를 탔다. 앵커리지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 운전해서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왼쪽으로는 절벽을 끼고 가는 경치 좋은 시닉드라이브다. 하지만 길이 생각보다 좁고 꼬불꼬불해 경치에 너무 한눈을 팔다가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보는 듯 안보는 듯 언듯 언 듯 구경하며 갔다. 뒤에서 속력을 내는 차만 없으면 크루즈로 속도롤 맞춰놓고 천천히 가도 되는 길인데... 뒤차를 보내 놓고 천천히 가면 어느새 또 새로운 뒤차가 따라온다.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니 빙하가 손에 닿을 듯하다. 몇 년 전, 캐나다 glacier national park에서 본 것과 유사하면서도 바다 쪽에서 보는 느낌이 또 다르다. 배는 빙하 근방을 천천히 돌고 바람은 시원했다. 아니 차가웠다. 그러고 보니 여름인데도 배를 탄 사람들은 어느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선장의 말에 따르면, 오래전에 이곳은 그냥 산이었는데 1964년 대지진으로 지반이 내려앉고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호수가 됐다고 한다.
빙하 관광을 끝내고 더 남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워드(Seaward).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있고 가끔 유람선이 들렀다 가는 곳이다. 자그마한 마을이다. 상당히 외진 느낌이다. 이렇게 연어를 잡으며, 잡은 연어를 손질하며 여기서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와이 와이키키를 걸으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을 구경하고 있을 때도 이들은 여기서 묵묵히 연어를 손질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도 언젠가 하와이에 왔었을 지도, 아니면 앞으로 올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생활터전과는 전혀 다른 하와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고깃배를 타고, 연어를 낚아서 손질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하와이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하와이로 돌아가는 날이다. 오후 6시 반 비행기이므로 아직도 하루가 남았다.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니 앵커리지 근방의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들른 곳이 공항에서 멀지 않은 지진 공원. (Earthquake Park). 1964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진도 9.2의 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채 5분도 지속되지 않은 이 지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큐모가 큰 지진이며, 전 세계에서도 두 번째 큰 지진으로 기록됐다. 50년 전에 그렇게 큰 지진이 있었던 이곳이 이제는 공원이 되어 산책과 피크닉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연에 적응하며 센트럴 팍의 다람쥐처럼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다가 간다.
알래스카를 8일간 여행했지만 떠나려니 아쉽다. 8일간 알래스카의 곳곳을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행을 마칠 때면 자주 드는 생각,,,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하지만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여행을 하면서 그냥 "아~ 멋있군" 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곳과 "여기는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드는 그런 곳이 있다. 알래스카는 어느 쪽인가 하면 꼭 다시 오고 싶은 쪽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조금 길게 머물고 싶은 곳이다. 생명력이 느껴지고 야생이 살아있는 곳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전원을 꿈꾸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를 꿈꾼다. 나 역시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시골, 특히 바다를 그리워했다. 원하던 대로 하와이로 삶의 터전을 이주하고 나서 너무나 만족하며 살았다. 특히 하와이 호놀룰루는 적당히 도시 같고 동시에 전원 같아서 두 가지를 다 만족시켜준다. 그러다가 하와이에 사는 기간이 쌓이면서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가볼만한 곳은 다 가본지라 여행지에서 느끼는 낯섦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미국 내에서 앞으로 살 곳을 마음대로 정하라 한다면 어떤 곳을 고를까? 완전히 복잡한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시골도 아닌 곳. 그렇다면 하와이가 아주 적당하긴 한데 벌써 20년 넘게 한 곳에서 살았으니 너무 오래 산 느낌이 든다. 그럼 어디가 좋을까? 텍사스? 조지아? 콜로라도? 유타? 캘리포니아? 아니 그보다는 뉴욕과 알래스카, 하와이를 오가며 사는 것은 어떨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여러 곳에 사는 것이 좋겠지만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게 문제다. 2030년, 2040년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