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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Feb 12. 2021

색다른 시위

하와이 사는 이야기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와이키키 호텔들


언제부터인가 IMF(국제통화기금) 나 IBRD(국제부흥 개발은행) 같은 국제기구 회의를 할 때면 의례 따라붙는 것이 있다. ‘반세계화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하와이에서는 처음으로 아시아 개발은행 총회가 열렸다. 그때 있었던 시위 현장을 가봤다. 하와이에서는 시위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아시아 개발은행(Asia Development Bank) 회의는 하와이 컨벤션센터가 지어지고 난 이후 가장 큰 행사였다. 이 회의는 원래 시애틀에서 열리려던 것인데 반 글로벌리즘 (세계화) 단체들의 격렬한 시위가 예상돼, 호놀룰루 시가  어부지리로 얻은 귀중한 행사다. 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한 번 하면 관광지 하와이로서는 상당한 부수적 이익이 생긴다. 회의 기간 중에 발생하는 방문객 증가는 물론이거니와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하와이의 아름다움을 한 번 접한 이들의 재 방문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호놀룰루 경찰국에서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반대 시위 참가인원이 적게는 2천 명, 많게는 5천 명으로 예상된다고 이곳의 유력 일간지 호놀룰루 애드버 타이저와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이 몇 주 전부터 전하고 있었으니 긴장할 만도 했다. 그래서인지 하와이에서 그렇게 많은 경찰이 동원된 것은 아마 이번이 사상 처음일 만큼 경찰이 컨벤션 센터 주변에 쫙~ 깔렸다. 
방송국 일을 서둘러 끝내고, 과연 어떤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할지 기대하며 컨벤션 센터 앞으로 갔다. 컨벤션 센터 주위 곳곳의 교통이 통제되어 행사장 주위의 도로는 마치 설날 아침의 시청 앞 광장처럼 차들이 없었다. 평소에 이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위 예정지인 컨벤션센터 앞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의 벌거벗은 하와이 원주민들, 하와이 자치를 요구하는 깃발, 로컬 신문방송 취재진, 그리고 구경꾼들이 작은 소리로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한차례 폭풍을 기다리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진짜 시위대는 알라모아나 비치 쪽에서 오고 있었다. 시위 예정시간인 낮 12시 15분이 지나고 30분, 45분이 지나면서 시위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ADB’s got to go!” 일부는 피켓을 들고, 일부는 차에 타고, 또 일부는 걸어서 오는데 이들이 부르는 구호는 구호가 아니라 차라리 노래었다. 레게 같은 리듬이 꽤나 흥겹다. 가만히 있어도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흥겨운 리듬이었다. 시위자들은 그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신나게 흔들어댄다. 한 로컬 기자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Is that reggae or Hawaiian song?” (그 노래가 레게 음악인 가요, 하와이 노랜가요?) 시위 참가 중인 아줌마 한 명이 즉석에서 멋있는 대답을 한다. “This is music of the world!” (세계의 음악이지요!)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인의 음악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시위대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시위대 대표가 컨벤션 센터 안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ADB 회장을 만나, 세계화 반대 성명서를 전달하고 악수하면서 나온다. 그리고 시위대 행렬은 예정된 코스인 와이키키 쪽으로 향한다. 폭력과 돌멩이,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시위는 물론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적잖은 충돌을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무색해졌다. 시위 아닌 시위, 알로하 시위다. 시위대의 꼬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하와이니까~’ 


(2002. 10.12)




컨벤션센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온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컨벤션센터는 요즘 매우 썰렁하다. 코로나 19로 관광객도 뚝 끊겼지만 국제행사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유리로 된 1층 건물 앞을 지나가다 안쪽을 보면 텅 빈 컨벤션센터가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텅 빈 공간만 휑하다. 코로나가 참 많은 것을 흔들어 놓았다. 꽉 차고 줄까지 서던 식당들도 거리두기를 하느라 자리를 채우지도 못하고 한 테이블씩 건너서 손님들을 받고 있다. 그나마도 사람들이 없는 곳들도 많다. 딜리버리가 늘긴 했지만 예전만큼 호황을 누리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제때 오던 아마존 딜리버리도 이젠 하루 이틀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플러머를 불러도 코로나 핑계 대고 잘 안 오려한다.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비스가 늦어지면 코로나 핑계를 댄다. 코로나랑 상관없을 것 같은 서비스도 코로나 핑계를 댄다. 미국이 아니라 동남아에 사는 느낌이다.         


(0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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