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Bird Apr 06. 2021

무념무상

하와이 사는 이야기

매직 아일랜드에서 바라본 와이키키 쪽 밤 풍경


무념무상이란 거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늘 같은 잠 안 오는 날이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려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의 단편들.


(2004. 5.24)




17년 전 이맘때는 참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계속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의 생각이 연관된 다른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그래서 잠잘 때 한 가지 생각에 너무 골몰하다 보면 오랫동안 잠을 못 자고 밤새 고생할 수 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잠이 안 오는 것은 고통스럽다. 요즘에는 비교적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저녁을 먹고 두 시간 정도 공원을 산책하는 습관이 생긴 덕분인지도 모른다.


요즘엔 일주일에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산책을 못하는 경우는 저녁이 너무 늦어졌거나, 비가 오거나, 아니면 아침에 하이킹을 다녀와서 운동량이 충분히 채워졌을 경우이다. 보통은 7시를 전후해 저녁을 먹고 바로 산책을 나간다. 운동할 때 입는 반바지와 스포츠 티셔츠를 입고, 흰 면양말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 주머니에는 집 키와 전화, 그리고 이어폰만 챙기면 된다. 산책코스는 여러 가지가 되지만 가장 흔한 코스는 알라모아나 공원이다. 집을 나서서 알라와이 운하를 따라 5분쯤 걷다가 신호등을 건너 알라모아나 공원 입구로 들어간다. 공원에서는 일단 사람들이 많지 않은 외곽길로 들어서서 걷는다. 왼쪽으로는 넓은 잔디에 나무와 풀들이 있고 오른쪽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건너편은 알라모아나 쇼핑센터다. 그 옆으로는 많은 콘도미니엄이 있다. 이곳의 콘도미니엄들은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것들이 많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디오북을 플레이한 후 다시 걷는다.  


외곽 산책길의 끝까지 가면 알라모아나 공원의 반대편 출입구가 나온다. 차도를 건너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걷는다. 바다에는 늦게까지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하는 사람, 서핑을 마치고 보드를 챙기는 사람, 바비큐를 하는 사람, 그냥 바닷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렇게 그 길로 쭉 가다 보면 주차장과 매직 아일랜드가 나온다. 매직 아일랜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서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소년들, 조깅하는 젊은이들, 나처럼 산책을 하는 중장년 층이 많다. 바다 쪽에는 낚싯대를 걸어놓고 묵묵히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방파제 쪽으로는 여전히 파도가 와서 부딪히며 멋진 포말을 만들어낸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도 많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시에서 최근에 벤치를 많이 만들어 놓았지만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보다는 걸어 다니거나 조깅하는 등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야생 고양이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가끔씩 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쓰다듬어주는 사람들도 보인다. 방파제를 지나 라군 쪽을 돌면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 화려하다. 건너편은 와이키키 쪽이고 바로 그 앞은 요트 선착장이다. 매직 아일랜드를 한 바퀴 더 돌아야 만보가 채워지므로 그곳만 한 바퀴 더 돈 후, 들어왔던 공원 출입구 쪽으로 빠져나온다. 출입구 바로 앞에는 언제부터인가 홈리스 아줌마가 한 분이 터를 잡고 있다. 공원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서 집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 알라와이 운하 쪽으로 들어서서 5분쯤 걸으면 집 앞이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 후 집으로 들어간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늘 그렇듯이.


04.05.2021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