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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Apr 13. 2021

어떤 생각을

하와이 사는 이야기

마키키 트레일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자연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지금 내가 어디에 있지?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지구촌을 여행하는 방랑자이고 그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싫어도 좋아도 여행을 한다는 사실을. 이왕 하는 여행이면 내가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방향을 잡아서 떠나는 것이 좋다. 그것도 미리 완벽한 여행 스케줄을 짜 놓는 정형화된 여행이 아니라 한 여행지에서 떠날 즈음에 다음 여행지를 선택하는 자유 방랑형 여행이 좋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걷는 것은 쉽겠지. 하지만 흥미가 떨어진다.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게 내 성격에 더 맞는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는 것. 


(2004. 6.2) 




결혼생활 26년이 지났다. 딸이 다 커서 이제 성인이 되니 식구들의 생활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세 식구가 거의 같이 움직이고 뭔가를 같이하는 편이었다. 나들이를 나가도 같이 준비해서 차를 타고 나갔다가 같이 돌아와서 같이 밥을 먹고 각기 제 할 일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세 식구가 모두 각자의 생활을 한다.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세라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는지 컴퓨터를 보는지 방문이 닫혀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돌아다녀서 피곤한 모양이다. 소피는 친구처럼 지내는 두 아줌마를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일요일 아침이면 나와 같이 산에 가는 경우가 보통인데 오늘은 그 핑계로 못 간다고 한다. 나는 평소의 일요일과 다름없이 8시쯤 일어나 마키키 산에 갔다. 하이킹은 2시간 정도 걸린다. 집에 오는 길에 한식당에서 동태 매운탕을 하나 픽업해 왔다. 


집에 와보니 소피는 나갔고 세라는 자기 방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라에게 동태 매운탕을 같이 먹겠냐고 했더니 한 번 보더니 안 먹겠다고 한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태 매운탕을 먹는 식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을 먹은 후 잠시 누워 쉬고 있는 사이 세라는 외출했다. 어딜 갔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있던 맥주 몇 병까지 챙겨서 나간 듯했다. 일어나 녹차를 한잔 마시는 사이 소피가 들어왔다. 베트님 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왔다고 한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가끔 만나 수다 떨 아줌마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나는 킨들로 요즘 읽고 있는 Truman Capote의 In cold blood를 두 시간 정도 읽은 후, 다시 컴퓨터로 Shakespeare의 A Midsummernight's dream을 한 시간 정도 읽었다. Shakespeare의 이 책은 1595-96년에 쓰인 책이라 그냥 읽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컴퓨터에서 원문과 현대 영어로 병기된 것을 비교해가며 읽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내용 자체는 어려운 것이 없지만 고어로 쓰여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소피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는 핸드폰으로 요즘 빠져있는 게임에 열중이다.  

 

어느덧 우후 5시 30분쯤 됐다. 아침 겸 점심을 12시에 먹었으니 배고플 때가 됐다. 저녁 먹자고 하니 이제부터 준비하려고 한다. 밥도 없고 국도 없는데 이제부터 준비해서 언제 먹을까 싶다. 한식당에서 가서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니 그러자고 한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식당에서 생갈비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먹었다. 다 먹지 못해 남은 것을 집으로 싸왔다. 유튜브 TV로 주로 코로나 관련 다큐멘터리 몇 개를 봤다. 소피는 전화기와 아이패드로 드라마와 설교 영상을 본다. 조금 후에 세라가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소피도 피곤해졌는지 자리에 눕는다. 나도 피곤해져 잠잘 채비를 한다. 밤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다. 이렇게 4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 지나갔다.


04.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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