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트럭 하나가 아파트 입구를 막고 서있다. 2층 쟈슈아네가 이사 가는 날이다. 아니 이사는 내일이지만 마우이로 가니까 짐을 먼저 배편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인사만 하고 지냈지만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 쟈슈아네와 같은 아파트에 산지가 한 3년 정도 된 것 같다. 이사 올 때만 해도 아이라고는 엄마 뱃속에 들어있던 쟈슈아 뿐이었는데 그 애가 벌써 훌쩍 커버리고, 동생 윌리엄 까지 잘 걸어 다니는 걸 보면 참 세월이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쟈슈아네는 원래 집이 마우이인데 의사의 길로 접어든 아빠가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느라 병원에서 가까운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이다. 엄마도 무언가 일을 하는 거 같은데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나이가 서른 살임을 안 것도 최근이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아파트에서 이웃을 잘 모르고 지낸다는 생각이 든다. 4층 아파트, 한층에 5가구씩, 1층은 주차장이니까 모두 15가구. 1층에 매니저가 사니까 모두 16가구다. 2층 맨 끝에는 20년 넘게 살고 있는 일본계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할아버지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고 할머니는 쨍쨍하다), 그 옆집이 뚱뚱한 아이 하나를 둔 뚱뚱한 일본계 부부 (이 집은 최근에 아우디(Audi)를 사서 열심히 차를 닦는다), 그 옆집에는 매니저 할아버지 부부의 아들인 스킵 (혼자 산다. 항상 웃는데 아파트 잔디와 정원손질을 거의 혼자 다한다). 그 옆집에는 중국계 젊은 남녀(남자는 학생인 것 같다. 여자는 노는 것 같다)가 살고 있는데 부부인지 남매인지 잘 모른다. 그 옆집이 쟈슈아네다. 3 층 맨 끝에는 필리핀계로 보이는 가족이 산다. 남자는 자동차 엔지니어인 것 같다. 그 옆에는 일본계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산다. 얘네들이 좀 시끄럽다. 밤늦게 TV를 크게 틀어놓고 보거나, 전화가 오면 이상하게도 복도에 나와서 받는다. 직업은 모르겠다. 가운데가 우리 집이다. 그 옆은 역시 일본계 40대 후반의 가족이 산다. 어디서 가게를 하는 거 같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간다. 그리고 끝에는 형제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둘이 산다. 둘 다 체격도 좋고 인상이 좋다. 한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4층 맨 왼쪽에는 일본계 학생이 산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 옆에는 국적을 알기 어려운 오누이처럼 보이는 20대의 남자와 여자가 산다. 이들은 항상 웃는다. 성격 좋아 보인다. 그 옆에는 누가 사는지 잘 모르겠다. 맨 오른쪽 끝에는 한국 아저씨 아줌마가 살고 있다. 아저씨는 뭐하는지, 아무것도 안 하는지 잘 모르겠고 아줌마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유니폼을 입고 나가는 것을 가끔 본다.
(2004. 6.3)
그 아파트에서 11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사는 와이키키의 콘도미니엄으로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집을 사서 이사 온 것이다. 아파트는 건물주인이 한 사람이고 집을 랜트하는 사람들이 매월 렌트비를 그 주인에게 내는 것이다. 처음에 얼마에 들어갔는지 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 650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조금 더 비쌌던 것 같기도 하다. 10년간 많이 올리지도 않아서 나올 때는 900불 정도 냈던 것 같다. 방 하나와 주방, 거실, 조그만 라나이가 있다. 4층 건물이고 엘리베이터는 없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각 유닛에는 없고 1층에 동전을 넣고 하는 공동 런더리 룸이 있다. 다운타운에서 살다가 그곳으로 이사를 간 이유는 하와이대학과 가깝고, 일하던 직장과도 가까워서다. 처음에는 시큐리티가 없어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동네가 비교적 안전한 곳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와이의 유명한 사립학교 푸나호우 스쿨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 안 좋은 점은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에 푸나호우에 다니는 아이들을 드롭, 픽업하러 오는 차들이 많아 생각보다 트래픽이 좀 있다는 점이다. 또 약간 언덕길이라 차들이 지나갈 때 소리가 많이 들리는 점이다. 그래도 그리 큰 불만 없이 이곳에서 11년을 살았다. 세대수가 많지 않은 아파트에 오래 살다 보니 이웃들의 얼굴도 알고, 인사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와이키키의 콘도로 이사 왔다. 아이가 커서 더 이상 방 하나짜리 집에서 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많은 집을 보러 다녔고 결국 한 곳에 오퍼를 넣고, 집을 사고, 리모델링을 거쳐서 이사했다. 1000 스퀘어피트 정도다. 한국의 33평 아파트보다 약간 더 큰 것이라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전에 살던 작은 아파트와 비교하면 굉장히 넓어진 것이다. 수영장, 자쿠지, 작은 짐, 레크리에이션 데크 등 편의 시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좋은 점은 위치이다. 와이키키의 초입에 있어서 교통이 푸나호우 앞 아파트보다 오히려 막히지 않고, 걸어서 알라모아나 공원, 와이키키, 힐튼, 할레코아 비치, 워드센터 등이 가까운 곳이다. 이사 와서 한동안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알라와이 운하나 와이키키 비치 쪽으로 조깅을 하기도 했다.
(참, 오늘은 소피 생일이다. 세라가 저녁을 어느 식당에 예약했다고 한다. 그냥 집에서 먹든지 아니면 한식집에 가서 갈비나 구워 먹으면 좋겠는데 세라는 분명 외국식당을 예약했을 것 같다. 나이 드니 다른 어떤 비싼 식당에서 먹는 요리보다 역시 한식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세라는 아직 부모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또 부모의 생일에 자신이 사겠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그걸 알게 될까? 에~ 효)
04.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