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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May 08. 2021

Marshall Islands

하와이 사는 이야기

세월은 흘러도 선셋은 변함이 없다. 알라모아나. 


남태평양에 마샬 아일랜드(Marshall Islands)란 나라가 있다. 하와이와 호주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후 그 가운데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섬나라다. 얼마 전 거기에 사는 한 일본인 친구와 그 가족을 만났다. 40대 초반의 그는 전에 하와이대학에서 나와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가끔 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는 경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다. 방학 때 마샬 아일랜드에 일본 정부 파견 해외지원 요원으로 마샬 아일랜드에 가있던 와이프를 만나고 왔다. 그 몇 달 후 와이프의 임신소식이 날아들고 급기야는 박사 공부 때려치우고 애기 보러 그 작은 섬나라로 날아갔다. 그간 사정을 얘기하자면 기니까 생략하고... 어쨌든 몇 주 전 그와 하와이에서 다시 만났다. 괌에서 열리는 회의에 와이프가 참가하는데 아이와 함께 그곳에 따라가던 중에 하와이에 하루 들렀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의 인구가 채 4만 명이 안된다면서 하와이 한인 인구가 4만 명쯤 될 거라는 한국 택시운전기사의 말을 들었다면서 마샬 아일랜드가 얼마나 작은 나라인가를 설명했다. 점심으로 베트남 국수를 함께 먹으면서 그들의 사는 얘기를 들었다. 마샬 아일랜드는 산호섬이라 제일 높은 곳이 3미터도 안된다는 얘기. 식물을 심을 수가 없어서 채소값이 무지 비싸다며 숙주나물을 연신 집어먹던 그의 와이프, 식당에서 나오는 칠리소스가 맛있다며 손가락으로 찍어서 연신 빨아먹던 4살 된 이즈미 짱. 묵고 있는 호텔에서 학을 본 아이가 "치킨"이라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호놀룰루 동물원에 가는 그들의 모습.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도 사람 사는 모습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는 어떻게 하와이라는 곳에까지 와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10년 전만 해도 전혀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또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나는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집에서 낚싯줄을 던지면 바로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는 그의 생활, 와이프를 직장에 보내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안 청소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그냥 재미 삼아 상상해본다. 


(2004. 7.10)




그로부터 10년 후에도 나는 여전히 하와이에 살았고, 17년 후인 지금도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생활은 초기보다는 많이 안정되긴 했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아마 앞으로도 하와이에 계속해서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나 이태리의 플로랜스, 또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살아보고 싶다. 물론 이제 하와이가 나에게는 많이 익숙해졌고 살기도 좋다. 하지만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의 삶이 항상 궁금하다. 익숙함이 편하면서도 때로는 그 편함보다 새로움을 찾고 싶다. 


조금 더 젊었더라면 떠나기가 쉬웠을까? 딱히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사는 곳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오히려 아이를 다 키워놓은 지금이 더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일을 놓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다른 나라로 떠나려면 현재의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가능할 것 같다. 직장, 수입, 안정, 편안함 이런 것들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슴이 이끄는 대로 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24년 전 전처럼 말이다. 그때는 유학으로 오긴 했지만 과감하게 회사 그만두고, 결혼 2년 만에, 한 살짜리 아이와 와이프를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정말 이것저것 앞뒤로 재거나 생각하지 않고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오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처럼 젊지는 않지만 또 한 번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씩 든다. 그때와는 많이 다른 형태가 될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어디로 유학을 가서 자리 잡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다른 나라로 직장을 구해서 갈 만하지도 않다. 그럼 결국 은퇴 겸 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은퇴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고, 은퇴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된다. 일 그만두고 어딘가로 훌쩍 가서 살자면 그리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마샬 아일랜드로 갔던 그 일본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05.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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