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가끔 아프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한번 심하게 아프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살았나를, 그것들이 얼마나 부질없음을 자리에 누워서 깨닫게 되는 경험이 그리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며칠 못 가는 그런 경험이긴 하지만... 몸살 때문에 하루 반나절 동안 아프고 나니 예전의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 싹 달아났다. 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너무 심했다. 가족에게 직장동료에게 끼쳐야 하는 불편함도 미안하다.
(2004. 6.17)
예전에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은 아팠던 것 같다. 어디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차례씩 독감을 앓았던 것이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면 독감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주사를 피하고 싶기 때문에 플루 백신을 잘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한 번씩 아플 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은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욕심부리지 말고 남들에게 좀 더 베풀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다음 주 수요일에 화이자 2차 백신을 맞는 날인데 2차 백신을 맞고 하루 이틀 앓았다는 사람들이 많아 벌써부터 걱정된다. 아플 것을 미리 기다리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 살 때는 아파도 약을 잘 안 먹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심하게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었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와이 살면서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감기나 몸살이 나면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먹는다. 감기약은 특별히 없다. 그 외에 어딘가가 아프면 먼저 주치의와 예약을 잡아야 한다. 주치의를 만나서 어떤 결과가 나오면 주치의는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준다. 그러면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처방된 약을 찾아가면 된다. 그러니까 의사가 먼저고 약국이 그다음인 거다. 하지만 약을 조제해주거나 그렇지는 않다. 조금 더 센 타이레놀을 처방해 주거나 증상에 적합한 약을 따로따로 처방해줄 뿐이다. 요즘에는 한국도 그런 시스템으로 변경됐는지 잘 모르겠다.
어제는 오전에는 수영을 하고 오후에는 워터프런트 공원에 잠시 나갔다. 수영하느라 아침을 11시 넘어 먹었더니 오후 4시쯤 되니 배가 고파졌다. 저녁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그래서 슈퍼에 가서 김밥과 물 한 병 사 가지고 소피와 함께 공원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잔디언덕을 오르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왔다. 거기에 조그만 자리를 깔고 앉았다. 천천히 김밥을 먹는데 새와 닭들이 혹시 뭔가 줄런가 하면서 모여들었다. 먹을 걸 주면 주변에 있는 새들이 걷잡을 수 없이 다 모여들기 때문에 주지 말아야 한다. 바다 쪽에는 두세 명이 방파제 근방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고 있다. 물에는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앉아 있다. 우리는 항상 나무 그늘을 찾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햇살이 뜨겁지 않아 굳이 그늘을 찾지 않아도 됐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개들을 데리고 걸어 다닌다. 하늘에는 호놀룰루 공항에서 뜨는 항공기가 가끔씩 보인다. 코로나는 언제쯤 끝날까. 여행은 언제쯤 마음 놓고 갈 수 있을까.
05.0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