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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May 11. 2021

탄탈루스

하와이 사는 이야기

탄탈루스에서 내려다본 호놀룰루


집 뒤쪽 편으로 올라가면 탄탈루스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서면 호놀룰루의 빌딩이 성냥갑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고, 하우스들은 바비인형네 집을 멀리서 본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독립기념일 같은 날, 불꽃놀이 할 때 대다수 사람들이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낮은 곳으로 갈 때, 나는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려고 올라간 곳이 탄탈루스다. 그곳에 가면 시내가 아주 작아 보인다. 왼쪽에 다이아몬드 헤드 크레이터, 바로 앞에 하와이대학 마노아 캠퍼스. 오른쪽에 주택가 그 너머 앞쪽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생각보다 배가 많이 떠있다. 작은 배들은 잘 안 보이고 큰 배들만 보인다. 그곳에 차로는 가본 적이 꽤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걸어서 갔다. 산에 가는 차림을 하고 산에 가다가 진로를 바꿔서 탄탈루스로 향했다. 아스팔트 깔린 길, 올라만 가는 길. 헉헉 대고 뛰다가 힘들면 걷다가 그렇게 올랐다. 한 2~3 시간이면 오를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올랐다. 그런데 1시간도 채 안돼서 올랐다. 이상하네... 차로 갈 때는 아주 멀었던 것 같은데.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온몸에 비가 내렸다. 시원하다. 머리가 젖고 얼굴이 젖고, 세상이 젖고, 내 마음도 젖고... 극한 피로에 빠져들고 싶다. 머리가 복잡한 피로가 아니라 몸이 지칠 대로 지치는 피로감, 때로는 그게 그립다. 


(2004. 7.20) 




하와이 오아후섬은 코올라우 산맥이 등뼈처럼 버티고 있다. 북쪽 카후쿠 지역에서부터 남동쪽 하와이카이 지역까지 쭉 산맥이 뻗어 있는 지형이다. 이 산맥을 가운데로 삼아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나뉜다. 하와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호놀룰루가 바로 코올라우 산맥의 남서쪽이다. 코올라우 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내리 뻗은 여러 계곡 (Valley)을 따라 많은 집들과 하이킹 트레일이 있다. 그중에서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탄탈루스다. 탄탈루스는 차로도 갈 수 있고, 하이킹 트레일을 통해서도 갈 수 있다. 


내가 요즘 매주 일요일마다 가는 하이킹 코스도 이 탄탈루스와 연결되어 있어서 가끔은 탄탈루스 쪽으로 가기도 한다. 이쪽은 차로 가면 매우 쉽게 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땀 흘리며 트레일을 통해서 걸어가는 게 훨씬 보람이 있다. 정글처럼 무성한 나무들을 구경하며 한 발 한 발 산길을 걸어 올라간 후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 경치도 경치이지만 가는 도중에 만나는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들, 바닥에는 얽히설키 나무뿌리,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크고 작은 바위들, 그리고 바닥을 수놓은 나뭇잎과 꽃잎...  너무나 아름답다. 이렇게 자연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들어낸 풍경이지만 어느 뛰어난 건축가도 흉내조차 낼 수가 없다. 


지난주에는 매주 가는 마키키산 쪽으로 갔더니 비가 계속 내렸다. 비가 조금 잦아들면 올라가려고 한참 기다렸는데 빗줄기가 멈출 기세가 아니다. 안 되겠다 싶어 하이킹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다가 핸들을 다이아몬드 헤드 쪽으로 돌렸다. 코올라우 산맥 쪽으로는 구름이 많지만 바다 쪽은 파란 하늘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잘 안 가는 곳이지만 오랜만에 올라가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입장료로 차 한 대 주차하면 10달러, 사람은 1인당 5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카마아이나는 무료다. 항상 차와 사람들이 많아 기다려야 하는 점이 불편하지만 20분 정도 차에서 기다리다 보니 주차할 자리가 겨우 났다. 사람은 너무 많고, 나무는 별로 없다. 언제나 메마른 느낌. 이렇게 다이아몬드 헤드에 다시 와보니 마키키 트레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05.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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