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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May 21. 2021

삶의 엑센트

하와이 사는 이야기

캐나다 밴프에서 한 시간 거리, 에메랄드 호수



약발이 떨어진 모양이다. 여행이라는 약발.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여행을 다녀왔으니 한 달 하고 2주간 지속된 약발이었다. 다시 또 현실이 고루해지고 밖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 변화가 없다. 주변 것들이 너무나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진다. 신문 여행란에 소개된 기사에 눈이 간다. 이곳 아닌 다른 곳이 궁금하다. 여행이라는 약발, 삶의 엑센트가 필요하다. 내가 너무 많은 엑센트를 필요로 하는 건가. 


(2005.7.28)




2005년에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나 찾아보니 뉴욕이다. 미국에 와서 본토로 처음으로 여행 간 곳은 샌프란스시코였다. 그건 2004년이었다. 97년에 하와이에 와서 한국 이외에 처음으로 여행 간 것이 2004년이니 7년 만에 처음 간 것이다. 처음 몇 년간은 하와이에 사는 것 자체가 일 년 내내 여행 온 기분이었다. 그러니 어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았다.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여행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2년 12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 전에는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자며 공부하고 일했는데 졸업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제적인 면만을 본다면 오히려 한국에서 사는 게 하와이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월급을 받고 집값이 따로 나가지 않았다. 하와이에서는 일단 집값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니 생활이 넉넉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자연환경이든, 인간적인 삶이든 하와이가 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경제적인 면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면 그렇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계속 살기 위해 하와이에 온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여행까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 당시처럼 일해서는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달 한 달 생활비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2004년 영주권이 나왔다. 그리고 소피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세라는 4학년이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가족여행을 갈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전세를 주고 온 아파트를 팔았다. 그 돈을 가져와 은행에 넣어두고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져온 돈을 다 쓰더라도 여행의 경험, 추억과 바꾸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4년 가장 가보고 싶었던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그리고 2005년에는 뉴욕에 다녀왔다. 그렇게 매년 다녔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두세 달이 훌쩍 갔다. 그러면 어느새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년에 어디 갈까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해보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한 번씩은 여행을 다녔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뉴욕 센트럴파크, 로스 엔젤레스와 디즈니랜드,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 오레곤 캐논 비치, 캐나다 밴쿠버, 로키 마운틴의 밴프에서 재스퍼 가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팍 웨이, 빅토리아의 부차트 가든, 보스턴의 보스턴 커먼, 필라델피아, 버몬트의 스토,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와 페어뱅크, 라스베이거스, 세도나, 그랜드캐년, 시카고, 자이언캐년, 터키의 이스탄불, 이태리의 베니스, 플로랜스, 로마, 폼페이, 영국 런던,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키츠부헬, 인스브루크,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바르셀로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 여행지에서의 순간순간들이 가끔씩 떠오를 때면 마치 그때 그 장소로 가있는 듯하다.  


05.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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