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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May 25. 2021

한 시간의 산책

하와이 사는 이야기


런던의 하이드파크


다른 날보다 한 10분~ 20분 정도 아침시간이 남았다. 회사 앞을 백 미터 남겨둔 곳에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으면 회사 주차장, 직진하면 와이키키다. 직진했다. 아침 와이키키 거리는 바빴다. 호텔과 상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대형트럭들, 관광객을 태우려고 대기 중인 대형버스들,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난 관광객들, 그 사이로 아침 서핑을 하고 막 바닷물에서 걸어 나오는 싱싱한 서퍼들.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천천히 걸었다. 스타벅스 안과 밖에는 관광객들이 벌써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서프보드 가게에는 오늘 파고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이고,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그만 호텔 안으로 들어가니 액티비티 센터가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엑스피디아. 작년에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 예약했던 인터넷 여행업체다. 엑스피디아 담당 아저씨는 작고 땅딸막한 백인. 스타벅스에서 밴티 컵을 책상에 놓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 옆은 그림을 파는 곳이다. 한국 아니면 중국계 50대 아저씨가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내가 쳐다보니 “굿모닝!” 한다. 답으로 싱긋 한번 웃어주고 시선을 거둔다. 저 아저씨는 아침을 먹고 왔을까? 아침부터 그림을 그리는 그의 마음은 지금 정말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가? 


내가 지금 본 이 와이키키의 아침 풍경은 내 마음이 실제로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뇌가 나를 속이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까? 나는 실제로 이 와이키키 아침 풍경을 본 것이 아닌데 "자 지금부터 본 것으로 하자고"하면서 뇌가 철저하게 나를 속이는 것일까. 아무래도 어제 읽은 소설 '우부메의 여름' 영향이 적지 않는 듯싶다. 뇌가 내 마음을 속이든, 음모를 꾸미든, 나는 이제 한 시간의 아침산책을 끝내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2005.7.30)




하와이의 카피올라니 파크


아침 산책을 좋아한다. 이른 아침 공원을 걷자면 공기가 신선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나무와 풀이 있는 곳을 아침에 걷자면 메말랐던 마음이 촉촉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여행지에서 아침산책이 매력적이다. 처음 가보는 공원에서 주변의 새로운 환경을 보면서 걷다 보면 마음뿐 아니라 머리까지 상쾌해진다. 하와이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여행 중의 아침산책 가운데서 좋았던 곳을 꼽자면 우선 영국의 하이드파크를 들 수 있다. 그때 숙박한 곳이 런던 힐튼 온 더 파크 레인 (London Hilton on the Park Lane)이라 바로 하이드 파크 앞이었다. 도로 하나 건너서 공원으로 들어갔더니 넓은 공원이 나왔다. 싱그러운 나무를 보면서 걷다 보니 큰 호수가 나왔고, 그 호수에는 오리와 백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또 그 한쪽에서는 쌀쌀한 10월의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다람쥐와 새들도 싱그러운 아침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하이드파크 못지않게 좋았던 공원은 버킹검 궁전 옆에 있는 버킹검 궁전 가든이었다. 하이드파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수목은 더욱 무성한 편이었다. 이 공원은 시간이 많았으면 반나절은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독일 뮌헨에서는 숙박한 힐튼 뮌헨 파크 호텔의 바로 뒤쪽이 잉글리시 가든과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원에 가보지 못한 게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그 호텔 숙박은 단 하루뿐이었고, 오후 늦게 도착했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날 프라하로 돌아가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만 아니었더라면 그날 아침에 잉글리시 가든을 가볼 수 있었을 텐데.

보스턴의 보스턴 커먼과 퍼블릭 가든도 아침 산책하기에 좋았다. 영국의 공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함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하와이의 알라모아나 공원은 색다른 맛이다. 한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그 옆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하와이는 대부분 이런 비치공원이다. 알라모아나 공원은 거의 매일 갈 정도로 애용하고 있다.     

그밖에도 밴쿠버의 스탠리 파크, 바르셀로나의 시우타테야 파크, 뉴욕의 센트럴 파크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는 규모가 크고 잔디공간이 넓은 곳보다는 나무가 울창하고 새나 다람쥐 같은 생명체가 간간히 얼굴을 보이는, 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조금씩 길을 열어주는 듯한 그런 공원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05.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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