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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May 26. 2021

가을

하와이 사는 이야기

지난 일요일 다녀온 마키키 트레일


취한다


나도 모르게 가을에 취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취했다. 술을 마시면 머리가 취하는데 가을은 가슴을 취하게 한다. 


(2005. 8.27)




사계절 중에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 나는 봄과 가을을 좋아한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지 굳이 구분하자면 역시 가을 쪽이다. 봄이 좋은 건 기나긴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기 때문이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봄은 너무 짧은 게 흠이다. 가을은 봄보다는 조금 더 길다. 푸르름이 갈색이나 빨강으로 물들어가는 산의 모습은 가슴의 한 구석을 아련하게 만들곤 한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가을이 끝나갈 때쯤 이제 곧 냉혹한 추위가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부담스럽긴 해도 성의 없는 여름옷차림에서 예의와 멋을 갖춘 가을 옷차림으로 바뀌는 거리의 풍경이 보기가 좋았다.  


계절의 변화가 없는 하와이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의 그 확연한 계절의 느낌을 잊어버렸다. 하와이에도 오래 살다 보면 봄의 느낌, 가을과 겨울의 느낌이 다름을 조금씩 알 수는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봄, 가을, 여름, 겨울처럼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햇볕이 뜨거워졌구나 또는 조금 약해졌구나, 비 오는 날이 조금 늘어났구나, 잠잘 때 이불을 걷어차고 자기엔 조금 춥구나 하는 정도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와이에서의 옷차림에는 변함이 없다.  


가을이 되면 미국 동북부가 생각난다. 주로 여름에 여행을 다니는 편이라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단풍시기에 딱 맞춰서 동북부에 가보진 못했다. 하지만 단풍으로 멋진 뉴햄프셔, 버몬트, 노스캐롤라이나 같은 지역을 언젠가는 단풍시즌에 잘 맞춰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블루리지 마운틴, 쉐난도어 리버 같은 지명만 들어도 대자연의 아름다운 단풍이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05.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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