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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n 05. 2021

영어실력

하와이 사는 이야기

최근에 읽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 아주 오래전 한글로 번역된 것을 읽었을 텐데 내용이 새롭다.



미국 생활 10년이 다되어 가면서 가끔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게 된다. 처음에 버스 타고 학교 다닐 때 학교 근처에 내리는 곳을 몰라 허둥지둥 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버거킹, 피자헛에서 주문하는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종업원들이 원망스럽던 때도 있었다. 머릿속에서 할 얘기를 미리 생각해 한 마디씩 말했지만 순차 통역하는 것도 아닌데 그마저도 할 짓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영어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자꾸 그때의 내 모습을 뒤돌아 보게 된다. 


(2006.7.4) 




이제는 하와이에 살기 시작한 지 24년이 지났다. 처음 하와이에 와서 영어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고 재미있다. 당시에는 진땀이 났지만 지나고 나니 추억으로 남았다. 그러면 지금은 영어가 자유로울까? 


영어는 참 평생을 공부해도 어려운 것 같다. 요즘에는 유치원부터 영어를 접한다고도 하지만 내가 영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A, B, C와 I am a boy부터 배웠다. 대학 때는 버케뷰러리와 토플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영어회화 학원에 다녔다.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 와서도 처음에는 랭귀지 코스를 들었다. 대학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듣고, 토론을 했고, 영어로 논문을 썼다.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신문을 꾸준히 읽었고 번역도 했다. 영어 일기도 썼다. 미국 드라마를 봤고, CNN이나, Fox, BBC 뉴스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영어소설을 읽고 영어로 된 오디오북을 듣는다. 참 끈질기게도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럼 지금은 영어가 유창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답일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다. 하지만 큰 불편이 없을 뿐이지 아직도 영어가 어렵다. 극장에서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때 놓치는 표현들이 아주 많다. 영화보다는 낫지만 뉴스를 들을 때도 익숙한 주제가 아니라면 언듯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소설책을 읽어도 여전히 많은 단어를 찾아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나오면 문맥이 난해해진다. 어떤 소설의 경우 쉽게 읽히는 경우도 있지만 똑같은 영어로 쓰인 것인데도 엄청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나마 신문은 쉬운 편이다. 전화를 할 때도 직선적인 대화는 어렵지 않지만 돌려서 하는 말은 언듯 이해가 안 갈 때도 있다. 


영어를 그렇게 오랫동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건 내 어학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물론 영어를  빨리 마스터하려고 죽자 사자 노력한 적은 없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발견하는 즉시 달달 외우거나 계속 써먹지 않은 탓도 있겠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살 때 온 딸이 처음에는 집에서 한국말만 하다가 프리스쿨에 간지 두 달 만에 쉬운 말이지만 영어를 쉽게 말하는 것만 봐도 어학능력 취득에는 나이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고등학교 이후의 나이에 미국에 와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들은 어학능력이 보통은 아닌 것 같다. 나처럼 한국에서 직장생활까지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미국에 온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영어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영어 소설책을 읽을 것이고, 자막 없이 영화와 뉴스를 볼 것이다. 영어로 길게 말할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기회가 있으면 피하지는 않을 것이고, 영어로 쓰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미국에 사는 한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06.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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