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항상 바쁜 시간이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출근을 안 하고 사는 팔자 좋은 사람은 딱히 바쁠 것도 없겠지만. 하긴 출근 안 하는 것이 과연 팔자가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나는 출근을 하면서도 아침에 그다지 바쁜 축에 속하지는 않은 것 같다. 7시쯤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 먹고, 7시 40분쯤 와이프, 아이와 함께 나간다. 아이를 10분 후 학교에 떨구어놓고, 와이프는 20분 후 직장에 모셔다 놓는다. 그러면 8시. 출근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이 남는다. 회사에 보통 8시 30분쯤에 들어가니까 30분이 남는다. 아침 시간 30분의 여유. 나는 이 시간을 생활의 쉼표처럼 즐긴다. 오늘은 와이키키 비치를 지나 180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갔다. 섬 일주 관광객들 무리에 섞여 바라보는 바다. 사연이야 어찌 됐든 나보다 더 아침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서퍼들이 바다에 둥둥 떠 있다. 알로하셔츠를 입은 나는 그렇게 30분간의 짧은 여유를 즐기고 회사로 출근한다.
(2007. 8.10)
"출근을 안 하고 사는 팔자 좋은 사람" "출근 안 하는 것이 과연 팔자가 좋을까"라고 썼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출근을 안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근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4월부터 회사가 셧다운 하면서 길면 한두 달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것이다. 처음에는 주어진 여유의 시간이 참 좋았다. 초기에는 공원도 문을 닫아서 산책을 못 나가는 점이 아쉬웠을 뿐 집에서 편히 지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출근을 안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시간은 보통 6시쯤이다. 본토 시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일하는 세라가 5시에 일어나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면 그전에 눈이 떠지기도 한다. 소피는 7시 20분쯤 출근을 한다. 내가 출근을 할 때는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주었는데 내가 출근을 안 하니 일어나서 샤워만 하고 가는 것 같다. 나는 그때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어나도 그다지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전화기로 이것저것 본다. 뉴스도 보고, 주가도 보고, 유튜브도 본다. 전화기를 보다가 피곤해지면 다시 잠들기도 한다. 9시쯤에는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기가 어렵다. 일어나 30분 정도 요가를 한 후 샤워를 한다. 10시 조금 넘어 늦은 아침을 차려 먹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콘도 풀에서 수영을 한다. 코로나 전에는 20회 왕복을 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혹시 몰라 수영장 물에 얼굴을 담그지 않는다. 그래서 수영장에 가도 뜨거운 자쿠지에 앉아 있다가 풀에서 한두 번 왔다 갔다 한 후 가만히 물속에 있다가 나온다. 데크에 마련된 비치체어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는 시간도 좋다. 바람은 살살 불고 햇살은 따스하다. 하늘은 언제나 그럿듯 맑고 푸르다. 30분~ 1시간 정도 수영 또는 일광욕을 즐기는 날에는 그만큼 아침 식사 시간이 늦어진다.
내가 이렇게 아침 시간을 여유 있게 사용하는 기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에 비해서 그리 긴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한국에서는 그런 시간을 가져본 기억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 진학을 위해, 대학 때는 취업 때문에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늘 바쁘고, 뭔가를 배우고, 무엇이든 준비하며 살았다. 하와이에 와서도 처음에는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 키우느라 바빴다. 처음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본 것은 하와이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회사일만 하면 되니 시간이 많았다. 회사도 한국에서 처럼 야근하거나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것이 아니므로 늦어도 6시면 집에 왔다. 빨리 끝나면 5시, 4시 30분에 끝나기도 했다. 일찍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근처 바닷가에 가서 놀게 하고, 선셋을 구경하다가 들어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은 하와이에 와서 처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번째 회사로 가기 전에 쉬었던 1년이었다. 처음 회사의 일이 힘들거나 어려운 건 아니었는데 15년을 다니다 보니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자의로 그만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도 아니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는데 대책도 없이 그만두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세라는 12학년이라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 이기도 했다. 그렇게 쉬고 있던 상태에서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하니 동부의 비싼 사립대학에 보낸 것이다. 입학 때 가족여행 겸 보스턴에 함께 가서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미 동북부 여행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에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세라를 보스턴에 데려다 놓고 하와이로 돌아온 게 9월이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직장을 알아봤다. 그리고 12월에 두 번째 회사에 취업이 됐다. 딱 1년을 쉰 셈이다.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그 기간 동안 많이 불안해했을 텐데 당시 들었던 생각이 "뭔가 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걱정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걱정한 만큼 고통을 받을 뿐이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2년 전 90세에 돌아가신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가끔 생각난다. "인생, 별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