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생일. 그다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족까지 무심하면 약간은 섭섭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평소와 똑같은 아침 밥상을 받고 괜히 한마디 한다. "이게 뭐야?" 고추와 멸치, 김치, 국, 네 가지다. 한 가지 다른 건 국이다. "미역국 끓였잖아" 소피의 말이다. 그래 미역국... 얻어먹은 것도 다행이지. 암. 옷장을 여니 빨래 한 지가 3일째인데 입고 싶은 옷 다림질이 안돼 있다. "이게 뭐야?" "다려놓은 옷도 있잖아, 여기, 여기, 여기..." 나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싶은데. 그냥 입자. 안 다렸어도 다린 것 같으니까 괜찮다. 뭐. 생일날 아침에 벌어진 일화다. 사실 밥때문에, 옷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한번 해본 소리다. 요새 바지는 링클프리라 안 다려 입어도 다린 것과 차이 없다. 주변을 보면 아침 차려주는 와이프도 별로 없다. 그나마 난 와이프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다니고, 생일날에 미역국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2007. 10.3)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가사를 부부가 나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전에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집안일은 대부분 여자의 몫이었다. 그때도 일하는 여자가 드문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들은 직장생활도 하면서 집에서는 집안일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결혼 초기부터 집안일을 같이 하는데 익숙해진 것 같은데 나이 든 세대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집안일은 여자가 전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것을 연령대별로, 맞벌이 부부와 전업주부일 경우를 각각 조사해보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아무튼 나도 요즘 젊은 부부가 아니어서 결혼 초기부터 집안일은 하지 않았다. 하와이로 이주하고 나서는 나는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소피는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전업주부가 됐다. 아이도 어렸으므로 집에서 돌봐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겼고, 소피도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면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졸업을 하면서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음식이라고는 라면 끓이는 것 밖에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인생이 짧은 듯해도 참 변화가 많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나는 거의 집에 있게 됐고, 소피는 직장에 계속 나가게 됐다. 그래서 아침은 내가 차려먹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보통 반찬은 소피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해놓는다. 국도 3~4일에 한 번씩 끓여놓는다. 나는 그냥 데워서 먹고 설거지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이 아니다. 가끔은 국이 없을 때도 있고, 밥통에 밥이 없을 때도 있다. 국이 없으면 아침밥을 먹기 어렵기 때문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이 없는 게 확인되면 자연스레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이게 됐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좀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가끔은 계란찜을 만들어먹기도 한다. 밥도 쌀을 씻어서 압력밥솥에 넣으면 된다. 청소와 빨래는 청소는 청소기로 한 번 돌리면 끝이고, 빨래도 세탁기에 세제와 소프트너를 넣고 돌린 후 널으면 그만이다. 반찬 만드는 것을 안 해봤으니 잘 모르겠지만 집안일이 그리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저녁은 여전히 소피가 차려준다.
아주 가끔은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본을 배우고 나면 만들어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부럽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입맛을 가졌기에 먹는 것은 한식을 제일 좋아하지만 한식은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만드는 재미는 스페인이나 이태리 음식이 더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지금 20대라면 한국에서 회사에 들어가려고 애쓰느니 일찌감치 스페인이나 이태리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다.
06.1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