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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n 23. 2021

친구는 모두 어디로 갔나

하와이 사는 이야기

노을빛이 고운 알라모아나 공원을 걸으며


알라모아나 비치 공원을 자주 걷는다. 평일 아침 출근하기 전, 따스한 햇살, 파아란 바다, 맥주 거품처럼 시원한 포말. 이런 것들을 눈요기로 보며 천천히 걷는다. 바닷 쪽으로 향한 공원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즐기는 노인들. 아름다운 풍경도 귀찮다는 듯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홈리스. 가슴과 등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남자와 여자. 롱보드에 서서 노를 젓는 사람들. 잔잔한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이들. 오른팔과 왼팔이 스르륵 물밖로 나오며 서서히 나아가는 그들이 쨍한 햇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평화스러운 아침. 그들의 수영하는 속도만큼이나 서서히 걷는 나는 하와이 생활을 생각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만약 그때 이민 오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지 않은 길의 모퉁이에서 헤어진 친구들을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지구의 조그만 나라, 거기서 30년 살면서 내가 만났던 친구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속을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처럼 그 무리에서 뚝 떨어져 나와 여기 혼자서 떠나온 물속을 생각하고 있는 나.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속을 떠났기에 외로운 존재인가? 어차피 인간이란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다. 그다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혼자임을 즐기는 성격임을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나? 이민생활의 단점(또는 장점)중 하나를 들라면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 물론 주변에 한인들은 많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친구처럼 사귀기는 꺼려진다. 내가 너무 좁은 생각으로 친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이 내 마음에 딱 들리 없고 그들의 생각이 나와 다른 것은 당연한데.... 나와 다른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친구 삼아버려도 될 터인데. 내가 친구들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바라겠다고.


(2008. 5.20)




요즘도 알라모아나 공원을 자주 걷는다. 요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 삼아 걷는다. 알라모아나 공원은 아침에는 상쾌한 아침 공기 때문에 좋고, 저녁에는 선셋이나 시원한 바람 때문에 좋다. 이런 공원이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늘 생각한다. 바다와 나무를 보면서 천천히 공원을 걸을 때는 항상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지나간 일도 떠오르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생각한다. 그렇게 1시간 반 정도 걷다가 공원을 나올 때면 어느새 생각이 정리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간 일은 마치 오래된 앨범을 보는 것처럼 다시 꺼내서 가만히 생각해보고 사진을 앨범에 다시 넣듯 차분히 정리가 된다.


노란 숲 속의 두 갈래 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생각하는 프로스트처럼, 나는 가끔 만약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때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것이다. 인생에는 변수가 아주 많기에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때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비추어 보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의 삶이 후회스럽다거나 심히 불만족스럽다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내가 지금의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미 선택한 길은 옳은 선택이든 그른 선택이든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므로 후회를 해봐야 소용도 없다. 선택한 길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동남아, 그리고 여러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이 많이 발전하면서 그런 사람이 전보다 더 많아진 듯하다. 그래서 이민생활을 접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민을 떠나는 것도, 만족하고 사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또 역이민을 가는 것도 모두 이민을 경험한 사람들의 선택일 뿐이다.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고 가 아니다. 이민을 떠나서 그 나라에 잘 정착해서 살게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이민 간 나라에서 만족하며 잘 살다가가 아이들 다 키우고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늦은 나이에 역이민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노후를 이민 간 나라에서 보내며 한국에는 여행으로만 다녀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때로는 이민 간 나라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최선일 수도 있다. 이민 온 것을 평생 후회하며 힘겹게 사느니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빨리 돌이키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든 이민 가서 생활하려면 -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사람들이나 경제적 여력이 있는 은퇴이민이 아니라 그 나라에 가서 일을 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이민이라면 - 이민을 결정할 때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꿈꾸었던 것과 전혀 다른 이민생활이 기다리고 있어 놀랄 것이다. 내가 뿌리내리고 살았던 익숙한 삶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한국에서의 삶보다 이민생활이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의 생활이 내가 누렸던 것을 희생하더라도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만족시켜주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이민은 1세대뿐이 아니라 2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착한 나라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이 그리고 그 후손들이 내가 결정한 이민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까지 생각해볼 수 있을 정도의 신중을 기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06.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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