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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03. 2021

여행을 가야 하는데

하와이 사는 이야기

2018년에 갔던 베니스, 이태리


여름이다. 작년 이맘때는 이미 여행을 다녀왔다. 6월 중순에 이미 캐나다 록키를 헤집고 다녔다. 이맘때는 그렇게 개운해진 마음으로 일 년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올 해는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다. 7월도 중순이 저만치 지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지난 4월에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집을 샀다. 그리고 산 집을 뜯어고치느라 엄청 돈이 들어갔다. 조금만 덜 고치고 남겨서 여행 가는 건데 하는 마음까지 든다. 하긴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갈려면 못 갈 것도 없다. 하지만 다녀와서 꽤나 쪼들릴 것 같아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있다. 리노베이션 비용, 새로 산 가전제품 카드값은 어떻게 맞춰서 낼 수 있다. 문제는 세라 학비다. 작년에 투자로 올린 수입 때문에 총소득이 올라 세라 학비가 두 배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세라가 장학금을 받으니까 투자수입만 없었더라면 지난해 낸 것 정도만 내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 집 수입이 너무 많아서(?) 수입을 감안해 조정된 장학금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준 것이다. 

그래도 엑스피디아(Expedia)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봤다. 얼마나 들까? 저렴하게 다녀오는 방법이 없을까. 올 해는 알래스카나 옐로우스톤에 가고 싶은데 세 명이 다녀오려면 적어도 4,000달러는 써야 한다. 옐로스톤이 알래스카보다 좀 더 싸지만 그게 그거다. 여행비는 어디를 가나 미국 내에서는 비슷하다. 단체여행을 하지 않는 우리는 보통 항공권, 랜트카, 호텔을 따로따로 예약한다. 항공권은 얼마나 멀리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인당 500달러 내외로 잡으면, 세금 등을 합쳐서 2,000달러 정도 한다. 랜트카는 7~8일 정도에 500달러 정도 하지만 (프리미엄의 경우) 나중에 가스비가 한 500달러 정도 나오니까 합치면 1,000달러다. 호텔은 하루에 140달러 X 7 박하면 역시 1,000달러다. 그 외에 먹는 것, 음료, 입장료 등인데 아껴 써도 4~500달러는 잡아야 한다. 그러면 벌써 4,500달러다. 이웃섬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도 7~9일 여행에 이 정도는 든다. 4,500달러, 이 돈을 쓰고 여행의 추억을 얻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지만 올해는 집 다운페이를 하고 나니까 이 돈이 무진장 커 보인다. 

일단 휴가 날짜는 잡았다. 세라가 8월 말에 개학을 하니까 최소한 가족이 휴가를 같이 보내려면 날짜는 맞춰놔야 한다. 그래서 나도 소피도 8월 셋째 주로 휴가를 정해놨다. 가든 못가든, 만약 못 가면 하와이에 휴가 왔다고 생각하고 보내면 그만이다. 그냥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휴가 왔다고 생각하고 여행자의 기분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다. 밥도 여행지에서 먹는 것처럼 먹고, 열심히 돌아다니고, 안 가본 곳 가보고... 14년을 하와이에 살면서 아직 하와이 내에서 안 가본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자만일 것이다. 안 가본 곳, 숨겨진 곳이 아직도 많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그렇다고 올해 여행을 벌써 포기한 건 아니다. 누가 아나? 내 속을. 휴가 며칠 앞두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항공권 끊어서 철없이 떠날지... 


(2010. 7.17)




매년 한 번씩 어디론가 여행을 가다가 못 가게 되면 참 힘들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기운이 떨어진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 여행을 다녀와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싱싱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리고 다음번 여행을 위해서 또 열심히 살게 된다. 


2020년에도 여행을 못 갔다. 순전히 코로나 때문이다. 5월에 콜로라도에 가려고 일정을 잡아놓고 호텔 예약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3월 초부터 코로나가 시작됐다. 지나고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장기간 갈 줄 알았다면 코로나 초창기에 어디론가 미리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더라면 유럽의 어느 도시로 갔을 가능성이 크고 그곳에 갇혀 지냈을 가능성도 있다. 유럽도 코로나 때문에 난리를 겪었고 지금은 상황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때 갔더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항공권을 구해 하와이로 돌아왔을 것 같다. 돌아오지 않고 여행지에 발이 묶여서 일 년간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한편으론 어려우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서는 좋은 경험이든 악몽이든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막연히 장기 여행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생각의 발단은 일단 세라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우리도 아예 일을 쉬고 일 년쯤 여행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약 그런 생활이 만족스러우면 아예 일을 그만하고 여행 다니며 살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게 참 많았다. 몇 년 정도는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 이후가 문제다. 일찌감치 경제적 자유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일단 아예 은퇴하는 것은 배제하고 1~2년 정도만 여행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젊은 부부들처럼 계속해서 돌아다니는 여행은 체력적으로 어려울 테니 유럽의 한 도시에 집을 1년간 발리고 그 주변국을 여행하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다른 곳으로 거점을 옮겨 1년 더 살면서 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다시 하와이로 와서 다시 일을 하는 것이다. 은퇴하면 그동안 봐 두었던 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그곳으로 아예 이주할 수도 있고, 하와이가 제일이라 생각하며 하와이에서 살 수도 있다. 이런 생각으로 주변을 정리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할 일이 많았다. 집은 팔건가 랜트를 주고 갈 건가를 결정해야 하고, 만약 랜트를 주게 되면 남은 모게지와 랜트 관리, 자동차는 팔아야 하나, 의료보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침대, 소파, 식탁 같은 큰 살림살이, 옷, 주방가구,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 인터넷, 전기, 전화....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 참 많기도 하다. 


아예 안 돌아온다면 다 없애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다시 돌아온다면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장만해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대로 두고 다녀오기에는 2년이라는 기간이 조금 길어 보이긴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집도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낫겠지 싶었다. 단점은 2년의 여행지에서 숙박비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렌트비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만 진지하게 해 보고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장기 여행은 고사하고 매년 가던 2주 정도의 여행도 못 간 채 2020년을 보냈다. 그리고 2021년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07.0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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