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는 반면, 운도 참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 항상 그런 것이 아니듯, 운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행운과 불행은 순서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일이 잘 풀린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운이 지지리도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운이라기보다는 사전에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달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은 불행보다는 행운을 만날 기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만으로 막을 수 없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모든 일이 잘 풀리다가 갑작스럽게 작은 불행이라도 만나게 되면 당황스럽다. 이럴 때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걸까?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야 하는 걸까?
내가 지금 현재 불행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좋은 일들이 계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라가 좋은 사립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것, 가족 모두 시민권을 받은 것, 미국 생활 13년 만에 집을 산 것... 이런 것들은 정말 일이 잘 풀린 것이다. 최근 한 두 가지 실망스러운 일이 생긴 것을 불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욕심이 큰 것이다. 수입이 좀 늘어서 장학금이 감소한 것, 집을 사서 모게지를 내다보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런 행동에 옮기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은 사실 불행 축에도 낄 수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그동안 너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당연한 듯 여기던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미국 생활 초기에는 여러 가지로 좀 힘들었던 것 같다. 미국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따지면 시민권을 받기까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부도 쉽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하와이에서 생활하기에 소득이 적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니 불평할 수는 없었다. 당시 소피는 일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었다. 그래서 적은 월급으로 세 식구가 빠듯하게 살아가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잘도 버텼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점을 아직 젊다는 패기와 하와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상쇄해주지 못했다면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다. 계획했던 박사과정까지는 못했지만 시작했던 공부는 무사히 마쳤다. 시민권 받았으니 아무리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어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어졌다. 내 집 샀으니 모게지만 꼬박꼬박 내면 주거 걱정은 크게 없어졌다.
왜 잘 안 풀릴까... 이런 생각이 들 때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인생은 좋은 일, 나쁜 일이 번갈아가면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과거만 돌아봐야 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니 새로운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심기일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0. 8.06)
지금도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싶다. 그런데 50대라는 나이가 자꾸 발목을 잡는다. 발목을 잡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도전해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도전을 꺼리게 된다. 비즈니스 같은 경우 지금 새로운 걸 시작해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조금 격한 운동을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몸을 사리게 한다. 늙어가는 것은 몸인 줄 알았는데 정신이 먼저였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평균수명은 80세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긴 하지만 70세가 넘으면 자의든 타의든 사회활동을 하기 어렵다. 은퇴연령은 50대 후반에서 ~ 6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따지니 50대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시기가 아니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다. 현실적인 생각이 생각을 늙게 만든다.
10년 전에 쓴 글을 지금 읽다 보면 그 지나간 세월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별로 변하지 않음에 놀란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가운데에도 세월의 흔적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그때는 은퇴했을까?)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또 어떤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07.0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