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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ul 02. 2021

테니스 갈등

하와이 사는 이야기

알라모아나 테니스 코트


저녁 7시부터 9시 30분까지 나는 거의 집에 없다. 목요일과 토요일만 빼고 매일 테니스를 치러 간다. 테니스를 친지 1년 6개월 정도 되었고, 중간에 스케줄이 좀 바뀌기도 했지만 요샌 이런 스케줄로 일주일에 다섯 번 테니스를 친다. 아직은 아주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남들과 공을 주고받을 정도는 된다. 매일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느는 기술이 재미있고 운동 후 땀에 흠뻑 젖는 기분이 너무 좋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거의 매일 테니스를 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치고, 수준도 높여놓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피는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내가 테니스 치는 것을 반대했다. 테니스 치는 것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매일 저녁 2~3시간 집을 비우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 시간에 집에 있다 해도 소피에게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소파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집에 있으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소피가 보는 한국 드라마가 책 읽는데 방해가 되니 TV를 꺼달라거나 헤드폰을 끼고 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걸 알았는지 최근에는 소피가 테니스 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소피의 기본 개념은 내가 '놀다가 온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념은 다르다. 테니스를 하는 것은 운동이고 이 운동은 내 체력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맛있는 저녁, 재미있는 영화, 심지어는 회사 일보다 테니스가 현재 나에게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클 수도 있다. 현재 내 삶에서 내가 정말로 즐기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약 테니스를 칠 수 없다면 나는 크게 상심할 것이고 다른 낙을 찾으러 헤멜 것이다. 테니스 때문에 다른 것을 놓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다른 것을 놓치더라도 테니스를 붙잡고 싶다.  만족할 만큼 실력을 높여놓고 싶다. 테니스에 물릴 때까지 치고 싶다. 소피는 내가 테니스 치러 가는 것을 하루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거의 매일 치다 보니 저녁시간에 무슨 일과 겹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내가 항상 테니스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양보하면 안 되냐고 한다. 

하와이는 날씨가 좋아서 대부분 테니스를 칠 수 있지만 가끔 비 오는 날은 칠 수가 없다. 그런 날은 몸이 근질근질하다. 흠뻑 땀을 내야 하는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너무 답답하다. 회사 일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라 저녁에 운동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대부분 사절하고 테니스를 치러 간다. 습관이라 해도 좋고, 중독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래서 소피와 가끔 부딪힌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소피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서 함께 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소피는 운동에 취미가 없다. 세라가 집에 있기 때문에 저녁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저녁시간을 내기도 현재로선 어렵다. 세라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세라도 운동에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도 또 한 번 부딪혔다. 언제까지 부딪혀야 할까. 테니스와 와이프 중 한쪽을 고르라 하면 어느 쪽을 골라야 하나... 


(2009. 1.30)




지금은 테니스를 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시작해 한 8~9년 정도 꾸준하게 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오늘부터 테니스를 치지 말아야지 하고 딱 그만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테니스 실력이 정체되어 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한두 번 빠지다 보니 점차 흥미를 잃게 된 것이다. 다시 치려면 칠 수도 있겠지만 손에 굳은살이 다시 박혀야 하고 안 쓰던 근육을 다시 길들여야 하니 몸이 적응하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테니스 라켓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또 하나 있다. 골프채다. 골프는 테니스 치기 이전에 조금 했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스쿨에서 배운 후 주로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서 연습했다. 알라와이 레인지는 가깝지만 사람이 많았고, 하와이 카이 레인지는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갔다. 산 넘어 카일루아에 있는 베이뷰 레인지에도 일요일에 자주 갔다. 하지만 필드에는 많이 나가진 못했다. 하와이카이와 팔리, 알라와이, 에바 코스 등에 몇 번씩 간 정도다. 소피는 골프를 하지 않으므로 같이 갈만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소피는 내가 주말에 골프 간다고 없어지는 것을 미리 걱정했다. 


한동안은 부기 보드 타기를 즐겼다. 와이키키 방파제 쪽으로 가면 부기 보드 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지만 부기 보드와 핀을 샀고, 일요일 오전에 가끔씩 소피와 함께 갔다. 소피가 비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1시간 정도 파도타기를 즐겼다. 파도가 너무 세면 보드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물에 둥둥 떠서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파도가 없으면 물안경을 쓰고 물고기 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부기 보드와 핀도 창고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지금 창고에 있는 것 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하는 운 좋은 물건은 등산화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세상 구경을 하고 있으니 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 부기 보트와 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러울까? 뭔가를 시작하면 비교적 꾸준히 오래 하는 편이다. 앞으로는 어떤 취미를 갖게 될지 궁금하다. 


07.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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