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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Aug 04. 2021

아침 산책길

하와이 사는 이야기

Fort DeRussy 비치


오전 5시에 눈이 떠졌다. 나를 깨운 건 새소리였다. 새는 참 부지런도 하다. 아침부터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은 걸까. 아니다. 새들은 해가 뜰 때와 질 때 항상 저렇게 떠들어 댄다.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이. 조금 더 잤다. 하지만 또 깼다. 이번엔 또 뭐지? 해다. 밖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새와 해가 나를 차례로 깨운다. 산책이라도 나가볼까. 그러고 보니 지금이 딱 1년 전 그맘때쯤이다. 처음 이사 오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니던. 그런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좀 더 자면 뭐하나. 오전 5시 39분, 집에서 나왔다. 이른 아침 와이키키는 한산하다. 차는 제법 다니고 있다. 워터마크(Water Mark) 콘도를 지나는데 백인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간다. 시큐리티 옷차림이다. 저 할아버지는 지금 일하러 가는 길일까, 아니면 밤새 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일까. 얼굴을 자세히 살피면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남의 얼굴을 빤히 보기가 그렇다. 걸음걸이로 봐서는 밤새 일하고 퇴근하는 듯 힘이 빠져있지만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의 나이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일하러 가는 길이든 퇴근하는 길이든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른 아침잠을 덜자고 나온 내가 지나는 할아버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와이키키 칼라카우아 거리를 조깅하는 사람이 한 두 명 스쳐 지나간다. 할레코아호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름을 모르는 보라, 노랑, 흰색 꽃들이 만발하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조차 누가 일부러 그래 놓은 듯 멋지다. 자연은 그대로가 참 아름답다. 할레코아호텔 입구 계단을 오르는데 군복을 입은 조그만 백인 여자가 군복을 입지 않은 여자와 신나게 떠들며 지나간다. 할레코아는 군인 호텔이다. 저들은 어디서 와서 여기서 묵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로비에는 몇몇 사람들이 이른 아침 어딘가로 가려는지 군데군데 소파에 앉아있다. 군인가족이겠지. 커피숍에는 여자 한 사람이 앉아서 커피를 즐기고 있다. 로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바다 쪽으로 향한다. 


바다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부지런한 사람들. 바다는 여전히 멋있다. 비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쌍이 있다.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구별이 잘 안 간다. 한국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디 한 마디만 들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그들의 근방을 지나갔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간다. 힐튼호텔을 지나오면서 연못 속에서 어슬렁 거리는 코이(koi) 떼, 그 가운데 섬처럼 생긴 돌멩이에 올라 있는 오리 두 마리, 그 옆쪽을 서성거리는  선홍색 플라멩코 두 마리, 막 사람 다니는 통로를 유유히 건너고 있는, 플라멩코처럼 크지만 부리와 몸이 검은색인 큰 새 한 마리 (음, 이름을 잘 모르니 묘사가 어렵군), 그리고 펭귄 대여섯 마리 (무슨 소린가 할 테지만, 여기는 호텔 안에 펭귄이 사는 곳이 정말로 있다)를 보면서 지나왔다. 나오는 길에는 스타벅스를 지나면서 진한 커피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걸으면서 다니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달릴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인생도 그럴까? 달리듯 사는 사람과 걷는 듯 사는 사람. 달릴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걸으면 보이게 될까. 달리면 빠르기야 하겠지. 하지만 빨리 사는 게 좋은 건가. 


(2011. 6.08)




와이키키로 이사온지 11년이 지났다. 하와이에 와서 처음 산 집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참 좋았다. 이사 오고 나서부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했다. 와이키키 초입이라 문을 나서면 바로 와이키키 대로인 칼라카우아 스트릿과 연결되고, 알라와이 운하가 집 앞이라 열심히 노 젓는 카누 행렬도 가끔 볼 수 있다. 알라와이 운하를 따라 위쪽으로 가면 와이키키 쪽이고, 아래쪽으로 가면 알라모아나 공원 쪽이다. 알라모아나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어떤 날은 와이키키 쪽으로 다른 날은 알라모아나 쪽으로 조깅을 다녔다. 와이키키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꺾어져 할레코아 호텔과 힐튼 빌리지가 나오는 방향으로도 자주 갔다. 그렇게 한동안 조깅을 다니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조깅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 이사 온 업된 기분이 날이 가면서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침이나 저녁에 집 주변을 자주 걸어 다녔다. 전에 마키키에 살 때는 거의 걸어 다니지 않은 것 같다. 푸나호우 스쿨 바로 앞이라 학교 트랙에서는 가끔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마땅히 걸어서 갈만한 곳이 없었다. 아니 걸어서 갈 곳은 찾아보면 많았지만 그리 많이 걸어 다니지 않았다. 하와이대학도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고 마키키 산도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걸어가는 길이 주택가이고, 지금 사는 집은 공원이나 바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이 걸어 다니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하와이에 사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고, 온도가 따뜻하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하와이에서는 어디를 가든 이런 점을 실감한다. 한국, 특히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사람과 차는 전보다 많아진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델타 변이가 한창인 요즘도 와이키키에 나가면 관광객이 넘쳐난다. 코스코나 타겟, 월마트에 가도 사람들이 많다. 많은 음식점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서울하고는 그 정도가 다르다.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인 90년대에는 지하철, 버스, 택시 타기가 너무 힘들었다. 출근시간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숨이 차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버스는 서는 곳을 정확히 예측하고 뛰어야 탈 수 있었다. 택시도 경쟁이 너무 심해 타기가 어려웠다. 밤에는 정상요금의 더블을 외쳐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면서는 그런 고생이 좀 없어지긴 했지만 출근하는데 1시간 이상을 긴장해야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뒤쳐지고 노선을 한번 잘못 선택하면 끼어들 수가 없어서 진땀을 뺐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그에 비하면 하와이에서의 운전은 아주 쉽다. 버스는 타는 일이 거의 없고, 지하철은 없다. 현재 카폴레이에서 공항을 지나 알라모아나까지 레일을 건설 중인데 이 레일이 건설되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하와이 주민들 중에 레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와이가 점점 대도시화되고 복잡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란 것이 이해가 된다. 


좀 아쉽게 생각되는 점은 재래시장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심심할 때 방문하던 인천 소래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곳이 없다. 영국 런던에도 Borough Market 이 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도 Boqueria Market 이 있는데 하와이에는 그런 곳이 없다. 그러고 보니 시애틀에도 스타벅스 1호 매장이 있는 Pike Place Market 이 있다. 하와이에도 이런 시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와이키키에도 인터내셔널 마켓 플레이스가 약간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주로 기념품을 파는 카트 위주로 형성되고 푸트코트는 한쪽에 몰려있는 형태로 위에 언급한 그런 재래시장과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지금의 인터내셔널 마켓은 이름은 그대로이지만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시장이나 재래시장에서는 훨씬 더 멀어졌다. 알라모아나 쇼핑몰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졌다. 가끔은 문턱이 낮은 재래시장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도 구경하고, 값싸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지만 하와이에서는 그런 곳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08.03.2021                


Boqueria Market, Barcelona
Borough Market,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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