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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Aug 07. 2021

법원 가는 날

하와이 사는 이야기

샌디 비치 동쪽 바다


살다 보니 참 별일 다 생긴다. 법원에라고는 시민권 선서할 때 빼놓곤 가본 일이 없는데 어쩌다가 법원 갈 일이 생겼고, 바로 오늘 아침에 갔다 왔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하면.... 지난 5월 말. 그날도 저녁을 먹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가는 알라모아나 테니스코트에 갔다. 평소처럼 열심히, 땀 흘리며 테니스를 쳤다. 한 번 가면 테니스 코트에 불이 꺼질 때인 밤 10시 20분쯤까지 치고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10시는 넘은 것 같았고, 이제 촌음을 아쉬워하며 공을 주고받는 데 경찰 두 명이 코트 앞에 차를 턱 세우더니 코트로 저벅저벅 들어오는 게 아닌가. 테니스를 치던 우리 일행 일곱 명은 웬일인가 하고 그저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당당하게 걸어온 경찰 말씀, 밤 10시 이후에는 모두 공원에서 나가야 하는데, 우리가 나가지 않았으니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10시 10분쯤 됐을까. 


경찰은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한참을 걸려 한 명씩, 한 명씩 소환장을 발부했다. 6월 말에 법원으로 오라는 소환장이다. 주민을 위한 공원에서, 저녁 운동삼아, 테니스 친 우리 지극히 선량한 주민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공원을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면서 왜 테니스코트의 조명은 10시 20분에 꺼지도록 해놨단 말인가. 상한 기분으로 테니스코트 옆에 세워둔 차로 갔더니... 차 유리창에도 벌금 고지서가 턱 붙어있다. 50달러 고지서. 밤 10시 넘어까지 테니스 쳤다고 50달러 벌금에 소환장까지 받은 것이다. 그리고 법원 출두 날이 오늘이다. 그날 바깥쪽 코트에 있던 두 명은 경찰이 오는 걸 보고 바로 나갔기 때문에 차에 대한 벌금 50달러만 내면 됐고, 나머지 다섯 명은 법원 소환장을 받고 오늘 출두에 응했다. 


아침 일찍 법원이 있는 다운타운에 주차하기 위해 일찍 서둘렀다. 소피를 회사 앞에 내려주고, 섬머스쿨 중인 세라를 학교에 내려주고, 법원 근처 유료 주차장에 8달러를 내고 두 시간 동안 주차해놓고 법원에 갔다. 일행 중 두 명이 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후에 나머지 두 명이 와 함께 7층으로 올라갔다. 법원은 생각보다 작았다.  체크인하고 들어서니 한 40~50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방이 있었다. 앞에서 법원 사무원들이 판사가 들어오기 전까지 서류를 검토하고, 출석을 체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출석을 체크하던 한 여자가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와서 이름을 말하고 경찰의 사유서를 직원이 읽으면 유죄나, 무죄냐, 노 콘테스트냐를 말하라고 했다. 유죄를 인정하면 50달러 벌금과 30달러 행정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무죄를 주장하면 다시 법원에 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날짜를 준다고 했다.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공원 문 닫는 시간에 남아 있었다거나 무단횡단을 했다거나하는 죄목이었다. 사유는 달라도 벌금은 똑같았다. 


우리는 참새처럼 나란히 앉아서 유죄라고 말할 것이냐, 무죄라고 말할 것이냐를 속삭이며 고민했다. 대부분이 무죄라고 말할 심산이었다. 일행 중 처음 나간 사람이 무죄라고 말하고 재판 날짜를 받고 먼저 나갔다. 그다음이 내 차례였지만 나는 유죄라 할까, 무죄라 할까 이름이 불릴 때까지 고민했다. 그냥 유죄라고 말하고 80달러 내고 끝내버리는 쪽으로 마음이 약간 기울었다. 그런데 막상 나가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판사 앞에서 법원 직원이 경찰이 쓴 소환이유를 귀 기울여 듣던 중에 "intentionally"라는 말이 탁하고 걸렸다. 우리가 고의로 공원에 남아있었다고 경찰이 쓴  것이다. 나는 즉시 "우리가 고의로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냥 테니스를 하다가 시간을 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판사는 그러면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냐고 말해서 그렇다고 했다. 귀찮게 또 와야 한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무죄를 주장했다는 서류와 함께 국선 변호사에 대한 안내서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보니 다섯 명이 모두 한 배를 탔다. 모두 '무죄'라고 말하고 나온 것이다. 먼저 나온 사람이 안내서에 있는 전화번호로 바로 국선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도 모두 국선 변호사와 예약을 하긴 했지만, 국선 변호사가 우리를 변호해줄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다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얼마인지는 그때 가봐야 한다. 우리 다섯 명의 재판 날짜는 모두 달랐다. 골치 아프게 됐다. 내 경우는 국선 변호사와의 예약과 재판 날짜가 같은데 재판시간이 먼저여서 어떻게 하냐고 하니, 국선 변호사 사무소 직원 왈, 일단 법원에 가서 국선 변호사와의 예약이 나중에 있다고 말하라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소한 법원에 두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 테니스 10분 더 쳤다고 이렇게 성가신 일이 생길 줄이야. 


나중에 우리 일행 중의 한 명인 ‘존’이라는 로컬 친구와 통화를 했다. 내가 "그냥 유죄라고 하고 80불 내고 말걸 그랬다"라고 하자 자기는 의학계통이라(현재 박사과정이다) 유죄 기록이 있으면 나중에 곤란하다고 한다. 그 심정이야 안다. 하지만 세상 어느 인간이 유죄 기록 생기는 것 좋아하나... 


(2011. 6.28)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은 기분이 우울했다. 우리가 일부러 시간을 어겨가며 공원에서 테니스를 친 건 아니지만 시당국은 공원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을 밤 10시로 정해놓은 것이고 우리는 그 법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법을 이렇게 과도하게 적용하는 경찰의 처사가 달갑지 않았다. 공원의 폐장시간을 정해놓은 것은 홈리스들이 공원에 모여 노숙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원에서 노숙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시민들에게 그렇게 적용하기보다는 주민들에게 10시까지 나가야 한다고 먼저 경고를 하고 그래도 남아있는 경우에 한해 법을 집행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 아무래도 경찰의 실적을 채우기 위한 과도한 법집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유죄로 결정되고 기록이 오랫동안 남으면 불편한 점이 없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혹시 한국을 왕래할 때 공항에서 이 기록 때문에 출입국 수속이 복잡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후로 우리 일행 중 몇 명은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국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소득이 아니어서 혼자 출두하거나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결국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더니 했더니 법원에 가는 날 신참 변호사를 한 명 보내주었다. 약식 재판에서 내가 유죄라고 했는지 무죄라고 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 벌금을 내고 나왔으니 유죄를 인정한 것인가? 몇 달 후에 기록이 남았는지 법원에 문의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국에서는 경찰들의 권한이 막강한 것 같다. 교통신호 위반이든 뭐든 일단 경찰이 출두하면 시민들은 그들의 말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 반항하거나 거부하면 현장에서 즉시 체포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총을 맞을 수도 있다. 경찰에게 대들거나 경찰출동에도 불구하고 행패를 멈추지 않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이후로는 지나다니는 경찰차를 보면 전혀 친근감이 가지 않았다. 물론 경찰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에 일반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경찰과는 거리를 멀찍이 두면서 살고 싶다. 


08.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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