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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Aug 03. 2021

'정'은 번역이 안된다

하와이 사는 이야기

Tantalus Drive 숲길



여러 종류의 사람들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나는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그들의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쉬운 것은 좋은 사람보다 좋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뭐"하고 평가하는 수준을 대폭 낮춘다면 몰라도,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약간은 까다로운 (?)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일시적인 만남으로는 그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럴 수 있다. 조금만 위장하면 좋은 면만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오랜 기간 알고 지내야 하는 피치 못할 관계라면 그 기간 동안 지내오면서 좋든 싫든 속속들이 그 사람을 알게 되기 때문에 위장전술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요즘 사람들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점 때문에 실망을 하게 되고, 그 사람이 싫어질까. 


(2011. 5.13)




나는 내가 별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철저하게 나를 배제하고 남들의 입장에서 나를 보면 어느 정도 까다로운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면 의심이 먼저 간다. 왜 나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도 너무 깊숙하게 내 생각에 침범하려 하거나 나를 자신의 기준에 의해 간섭하려 든다면 거부감이 든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미국에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간섭을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아주 드문 경우일 것이다 또 있더라도 한국에서보다는 훨씬 정도가 약하다.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친구든 직장 동료든 일단 친하다고 하면 상대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나 동료의 일을 내 일처럼 참견하고 간섭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좋은 점도 없지는 않지만 불편한 점도 많은 것 같다.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이라는 개념이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동시에 가졌다는 말이다.     


한국어의 '정'이라는 말을 영어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미국 생활 초기에는 "이런 매정한 것들 같으니"라든가 "여긴 인정사정없군"이라는 생각을 심심찮게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예스와 노가 확실하다.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닌" 건 없다. 안 되는 건 아무리 아쉬워도 안 되는 것이고, 되는 건 좀 그래도 되나 싶은데도 되는 것이다. 끊고 맺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정이 없고, 정이라는 말을 정확히 표현할만한 말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정이 있는 한국의 정서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정이 없는 미국의 정서가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이라고 했지 그래서 더 낫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정이 있는 한국 정서가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굳이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정을 내릴 생각도 없다. 개개인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 인가 하면...  딱 중간쯤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세월이 더 지나면 어느 쪽으로 기울까 아니면 그대로일까 궁금하다. 


08.0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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