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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Aug 01. 2021

쓰나미

하와이 사는 이야기

카피올라니 공원



며칠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일의 발생 원인은 주로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내부에서 시작된 일이 생활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외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후 그 일이 내부로 들어와 마음의 변화를 이끈다거나, 결심을 하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어떤 일이 외부에서 발생해 주변 환경이 변화되고, 그에 따라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식이다. 그럼 최근에 발생한 일들은 앞으로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건 아무도 무른다. 일단 발생한 일부터 정리해보자. 


가장 큰 일은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센다이 근해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지진으로 일본이 큰 피해를 입었다. 진도 측정 자체도 8.9 했다가 8.8이라고 하더니 다시 9.0 이라며 왔다 갔다 진동했다. 그 이후 쓰나미가 센다이 지역을 휩쓸어 인명피해를 냈다. 인명피해도 처음에는 300명, 1,000명... 그러더니 점차 늘면서 지진이 발생한 지 6일이 지난 지금은 3만~ 4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사망자, 실종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지진도, 쓰나미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발생한 것이다. 피해가 얼마나 크든 이미 지나간 역사다. 지금 진행 중인 것은 방사능 공포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다이이치에 있는 원전 1,2,3,4 호에 화재가 발생하며 무너져내려 방사능이 누출된 것이다. 방사능 공포는 원전이 위치한 후쿠시마는 물론 도쿄까지 번졌다. 또 발생할지 모르는 여진의 공포에 방사능 공포까지 더해지자 도쿄는 엑소더스 현상을 보이고 있다. CNN 기자가 취재한 도쿄의 일부 거리에는 평소에 넘쳐나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쿄가 하루아침에 소도시가 된 듯했다. 


일본에서 3,850마일 떨어진 하와이도 일본발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다. 빅아일랜드의 항구에서는 많은 배와 항구시설이 파괴됐다. 빅아일랜드 카일루아 코나 지역은 호텔의 1층에 입주해 있던 상가가 모두 침수됐다. 피해액은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 쓰나미가 하와이에 도착하던 날 우리도 대피했다. 우리 집은 와이키키에 위치해 있어 대형 쓰나미가 온다면 저층은 침수의 위험이 있다. 소피는 10일 밤 9시 30분 뉴스를 듣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나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냥 집에서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소피는 서성거리며 계속 짐을 꾸리고 잠을 자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이미 쓰나미의 피해를 본 일본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하와이도 저럴 수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10시부터는 쓰나미 경고 사이렌이 씨끄럽게 울려댔다. 새벽 2시, 결국 대피하기로 했다.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나둬야 하나. 여권과 주요 서류, 크레딧카드, 플래시, 앨범 등을 챙겼다. 컴퓨터에 중요한 것은 외장하드에 옮겨 담았다. 우리 짐이 큰 여행 가방으로 하나, 세라 짐이 작은 여행가방으로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높은 지역에 사는 지인의 집으로 갔다. 이제 집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몸은 안전하다. 그곳에서 뉴스를 계속 보다가 세시 넘어 잠들었다. 5시에 깼다. TV를 켜니 쓰나미가 하와이를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주지사는 그러나 "아직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이웨이에는 이미 출근차량들이 달리고 있었다. 6시쯤 자는 세라를 깨워 집으로 향했다. 세라는 학교가 하루 문을 닫는다고 좋아했다. 


(2011. 3.18) 





일본 산리쿠 해역에서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지진은 지금도 생생하다.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집들과 자동차들이 마치 배처럼 떠다니는 충격적인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 여파가 하와이까지 다 달아 새벽에 피난 가던 일까지 있었으니 생생하게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쓰나미 위험 때문에 막상 피난을 가야 할 때 도대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런 일이 생전 처음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만약 집에서 즉시 대피해야 한다면 몸만 빠져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무엇을 챙겨야 할까? 신분증, 여권, 크레딧카드, 시민권 원본, 차키, 차 소유증, 집보험 서류, 차보험 서류, 집 관련 서류, 전화기와 차저, 컴퓨터, 옷 몇 벌...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만약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나왔다면 어떨까? 쓰나미에 모든 것이 떠내려간다면 허무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매우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신분증이나 서류, 크레딧카드 등 대부분 재발급이 가능할 것이다. 


24년 전 하와이에 올 때는 아주 조그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왔는데 어느새 챙겨야 할 것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사람이 한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개인적인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관공서와도 참 많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고 차량등록을 해야 하는 DMV, 여권을 발급해주는 국무부, 소셜 시큐리티 카드를 발급하는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 등이 좋건싫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곳이다. 그 밖에도 돈을 넣어둘 은행이나 투자회사, 카드 사용을 가능케 하는 크레딧카드 회사, 만일의 사태에 건강, 집, 차 등에 보상을 해주는 보험사들과도 인연을 맺어야 한다. 만약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장기체류라도 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오던 기존의 관공서와의 인연을 마감하고 새로운 지역의 유사한 기능을 하는 관공서와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데에는 이처럼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가 따른다.    


07.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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