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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로키 4

코로나 시대의 여행

by Blue Bird
20211025_110511.jpg 콜로라도 역사박물관에 걸려있는 1918년 스페인 플루 사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호텔 바로 앞의 콜로다도 역사 박물관 (Colorado History Museum)이다. 호텔 바로 앞에 있기도 했고, 일단 콜로라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예전에는 도시로 여행 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항상 들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면 경치 좋은 곳,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원에 가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콜로라도 역사박물관은 호텔 바로 앞에 딱 버티고 있으니 그래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볼 것이 많았다. 우연히 둘러보다 눈에 띈 한 장의 사진은 스페인 플루 전염병 당시의 콜로라도였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에 발생한 것으로 지금부터 103년 전에도 이런 세계적인 전염병이 발생했던 것이다. 사진 속의 인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것을 보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콜로라도 덴버는 지금 코비드 19가 한창인데도 실내든 실외든 마스크 쓰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었지만 우리는 실내로 들어가면 무조건 마스크를 쓰던 하와이에서의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썼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스페인 독감을 계기로 매년 독감 예방접종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 코비드 19를 계기로 매년 코비드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박물관에는 인디언들에 관한 자료가 많았고 콜로라도 답게 눈과 스키에 관한 전시물이 많았다.


20211025_131638.jpg 콜로라도주 청사 상원 의사당

박물관을 나와 주청사 쪽으로 걸었다. 주청사 주변의 나무들이 노란 단풍을 한창 뽐내고 있었다. 10월 말이라 높은 산 쪽은 이미 단풍의 절정이 지나간 시점인데 비해 덴버 도심에는 지금 단풍이 최고조에 달한 듯했다. 주청사에 들어갔다. 주 청사는 관공서답게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다. 건물 내부가 상당히 멋있었다. 주 상원과 하원 회의가 열리는 의사당도 볼 수 있었다. 법안은 이렇게 화려한 곳에서 만들어져야 잘 만들어지는 걸까? 콜로라도주의 자부심을 한껏 나타내고 싶은 건축물인 듯싶다. 의사당을 나와서는 천천히 유니언역 쪽으로 걸었다. 추울 줄 알았는데 덴버의 10월 마지막 주 한낮은 오히려 더웠다. 땀을 흘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껴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다운타운을 관통해 유니언역까지 걷기는 먼듯했다. 유니언역에서 16th 스트릿몰까지는 무료버스가 운행되고 있어서 그걸 타기로 했다. 버스 타기 전에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땀을 식혔다.


무료로 운행되는 버스 MallRide는 실망이었다. 버스 자체는 괜찮은데 무료로 운행되다 보니 거리의 껄렁껄렁한 홈리스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떠들고 다녔다. 목적지가 있어서 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탔다가 한 정류장 가서 내리고 또 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사람이 뜸한 곳에서는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콜로라도가 미 전국에서도 마리화나를 처음으로 허용한 곳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것 같았다. 다운타운 거리를 걸으면서도 마리화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마리화나를 허용한 것은 주 수입원 마련을 위해서이고, 그렇게 결정한 것은 조금 전 갔었던 의사당에서였을 것이다. 그 멋진 의사당에서 내린 한순간의 결정으로 인해 거리의 모습이 이렇게 된 것이다.


유니언역은 고풍스러운 모습이 남아 있는 콜로라도 교통의 허브였다. 열차뿐만이 아니라 각 지역을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지하로 연결된 유니언역의 모습은 깔끔한데 여기도 곳곳에 홈리스가 있었고,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했다. 역사로 들어가 잠시 앉았다가 MallRide를 타는 곳으로 갔다.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기사는 버스 안에 홈리스가 누워있든 마리화나 냄새가 나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니니 상관할 바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다운타운들이 점점 더 어글리 해지고 있는 듯했다.


다운타운 한복판에 내려서 뭐하나 살게 있어서 월그린에도 들어가 봤다. 매장 안의 모습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에 비하면 하와이의 월그린이 훨씬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된 편이다. 종일 걸어나녔더니 피곤해서 일찍 호텔로 들어갔다. 저녁은 우버이트로 태국 음식을 시켰다. 호텔 바로 앞에 리커스토어가 있길래 맥주도 몇 개 사 호텔방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내일도 차를 빌리지 않고 덴버 시내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걸어 다니며 보는 시내는 너무 제한적이고 생각보다 갈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차를 모레부터 랜트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변경했다. 내일은 차를 랜트해서 다녀야겠다. 차가 없으니 기동력이 떨어지고 힘들다. 내일은 야생동물을 보러 야생동물보호지역 (Rocky Mountain Arsenal Wildlife Refuge)와 레드락 원형극장 (Red Rock Amphitheatre)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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