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여행
어제저녁에 인터넷으로 랜트카 예약을 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엔터프라이즈가 있었다. 차를 예약한 후 받은 이메일을 보니 픽업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얼른 전화해 내일 아침 7시 15분에 호텔로 픽업 와 달라고 했다. 눈을 뜬 건 새벽 5시였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잠이 일찍 깬다. 침대에 누워서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일정을 짰다. 그러다 보니 랜트카 직원이 픽업 오는 시간에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얼른 일어나 샤워하고 준비하니 7시 10분쯤 픽업 시간 확인 전화가 왔다. 서둘러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 한참 서있는데 픽업 온다던 랜트카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10분쯤 더 기다리다 전화해봤다. 이미 오고 있다고 한다. 차로 5분 거린데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 10분쯤 더 기다리니 직원이 왔다. 로비에서 20분 이상 기다렸다고 하자 미안하다며 트래픽이 있어서 늦었다고 한다. 픽업 온 직원은 젊은 백인 남자인데 스패니쉬 계통 같기도 했다. 그는 자신도 아직 덴버 지리에 익숙지 않다며 자신이 일하는 랜트카 회사에 가는 데에도 열심히 구글맵을 보고 있었다. 플로리다에서 오래 살았고 여자 친구와 함께 덴버로 이사온지 채 몇 개월도 안된다고 한다.
엔터프라이즈에 도착해보니 픽업만 해주는 직원인 줄 알았는데 차 랜트도 직접 해주는 직원이었다. 이번에는 승용차를 빌렸고 랜트카 회사에서 권유하는 보험은 거부하고 내 것으로 하겠다고 했는다. 이 직원은 차가 골프공만 한 흠집이 나도 비용을 청구한다며 은근히 랜트카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을 들기를 권했다. 하지만 랜트카 회사의 보험을 거부해야 내 보험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 직원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흠집 크기 재는 조그만 도구가 눈에 거슬렸다. 보통 공항에서 차를 빌릴 때는 흠집에 관한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시내라서 다른가. 아무튼 차를 빌렸고 시내를 빠져나왔다. 선택한 차는 니산 알티마. GPS를 맞춘 곳은 야생동물보호구역 (rocky mountain arsenal national wildlife refuge)이다. 시내에서 덴버공항 가는 방향에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넓은 지역이라 그냥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맞추어놓고 갔더니 GPS는 인적이 아주 뜸한 휑한 곳으로 안내했다. 아니다 싶어 오늘 새벽에 봐 둔 라도라 호수 (Lake Ladora)로 다시 맞췄다. 이곳도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차들이 몇 대 주차해 있었다. 차를 세우고 호수 주변을 걸었다. 멀리 눈 덮인 로키산이 보였고 주변은 호수와 목초지로 경관이 좋았다. 하지만 동물은 아직 하나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참에 목초지에서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한참 보더니 가까이 가자 천천히 달아났다. 호수를 빙 둘러 걷다가 또 다른 사슴 한 가족이 나무 아래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런데 왜 바이슨(bison) 은 안 보이는 걸까. 차로 돌아와 보호구역을 좀 더 드라이브하다가 나가려고 하는데 멀리 한 무리의 바이슨 떼가 보였다. 언덕 쪽으로 가니 한 20~ 30마리 정도 되는 더 많은 바이슨이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아주 멀어 자세히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먼발치에서 바이슨은 만나고 야생동물보호구역을 빠져나왔다.
여기서 레드락 원형극장 (Red Rocks Park and Amphitheatre) 까지는 40분 거리다. 레드락 원형극장은 주로 주말에 공연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평일이라 공연은 없고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구경온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붉은 바위로 둘러싸인 원형경기장 모습이 웅장하고 멋졌다. 비지터센터에 가보니 여기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공연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얼핏 보니 비틀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아침을 먹지 못했다. 라테를 두 잔 픽업해 벤치에서 마시려니 바람이 쌀쌀하다. 차에 둔 비스킷 등 간단한 요깃거리가 생각나 차에서 간단히 아침을 대신했다. 레드락까지 구경을 했는데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늘 새벽에 봐 둔 골든 (Golden)에 가보기로 했다. 골든은 쿠어스맥주 브류어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쿠어스 맥주 브류어리 견학은 현재 중지된 것으로 되어 있다. 코로나 때문인지 코로나로 인해 공사를 하는 건지 아무튼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브류어리 주차장까지 가서 문 닫은 걸 확인하고 골든 타운의 공용주차장에 주차했다. 노란 단풍이 예쁜 마을,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타운은 아주 조그맣고 음식점과 선물가게 등이 즐비했다. 날씨가 쌀쌀하니 수프 같은 것을 먹고 싶었는데 맥주집에 들어가니 수프는 더 추워져야 시작한다고 한다. 조금 더 걸으니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카레 고구마 수프와 브레드, 스무디를 시켰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는 커플과 개 한 마리가 여기도 관광지일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살아가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10월 말 덴버는 6시쯤 해가 진다. 길이 익숙지 않으니 해지기 전에 차를 반납하고 싶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 시내의 City Park에 갔다. 공원은 내가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공원에 자주 가는 편이다. 공원이라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지만 각 도시마다 특색이 있다. 런던의 하이드 공원과 버킹엄 궁전 근방의 세인트 제임스 공원, 뉴욕의 센트럴 팍, 그리고 내가 거의 매일 가는 하와이의 알라모아나 팍. 공원에 가면 자연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덴버의 시티 팍도 운치가 있었다. 특히 노란 단풍이 절정에 있기에 더욱 그랬다. 호수 주변을 조금 걸으며 가을을 만끽했다. 가을이 없는 하와이에 살고 있기에 이런 가을 정취가 더욱 반가웠다. 흠집 하나 없이 차를 반납했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멀지 않지만 호텔까지는 우버를 타고 갔다. 해가 지니 추워졌고 비도 조금씩 내렸다. 저녁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연어구이를 픽업해 방에서 어제 사둔 맥주로 해결했다. 오늘이 벌써 이 호텔에서 3박째다. The Art Hotel. 여행잡지 Conde Nast Traveler 등으로부터 올해 덴버의 넘버원 호텔로 선정됐다고 자랑하는 호텔이다. 별 4개로 럭셔리까지는 아니지만 인테리어에 많이 신경쓴 흔적이 보이고 서비스도 괜찮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체크아웃, 다시 랜트카를 해서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갈 예정이다. 이제 덴버는 비행기 탈 때 거쳐야 하는 덴버공항을 제외하면 마지막 밤이다. 덴버에 또 올 기회가 있을까?